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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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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역사문화 여행지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강화는 역사의 섬이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단군의 참성대, 고려, 조선의 역사를 한가슴에 다 품고 있다. 강화고려역사문화재단이 추천하는 강화 역사문화 여행지 10선을 소개한다. 짙어가는 가을, 더 깊은 역사의 향기를 따라 길을 나선다. 


마니산 참성단(사적 제136호)

마니산은 우리나라의 영산 한라산과 백두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전해 받은 한반도의 배꼽이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만든 참성단이 있다. 제단은 아래에 둥근 돌을 쌓고 위에 네모반듯한 돌을 올려 만들었다. 둥근 하단은 하늘을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 그러한 뜻이 오늘에도 이어져, 참성단에서는 해마다 개천절 제천행사를 열고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한다. 

위치 :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산42-1 





강화고려궁지(사적 제133호)

고려는 몽골의 말발굽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항쟁에 들어간다. 1234년 급히 궁궐을 세우고 왕을 모신 곳이 고려궁지다. 궁터를 돌아보면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았을 국난의 역사에 마음이 짠해진다. 궁궐과 성은 39년 동안 사용하다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었다. 이후 조선 인조 9년에 행궁을 지었다 병자호란 때 함락되고, 그후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 만이 남았다. 

위치 :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743-1





강화산성 북문(사적 제132호)

강화산성은 고종이 몽골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다.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1천200m로 지은 내성이 지금의 강화성이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소가 있고 암문이 4개소, 수문이 2개소 있었다. ‘진송루’ 현판이 걸린 북문은, 특히 가을이 아름답다. 성문 옆에 수문장처럼 빨간 단풍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문 누각에 올라 북녘 땅을 바라보면, 바로 앞에 남한의 평야가 멀리 북한 개풍군 산야가 시야를 가득 메운다. 

위치 :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일원 





고인돌공원 강화지석묘(사적 제137호)

강화는 지붕 없는 박물관. 역사의 편린을 쫓아 구석구석을 훑으며 시간여행을 한다. 고인돌공원에는 세계문화유산인 강화지석묘가 있다. 강화지석묘는 큰 탁자식 고인돌로 전체높이 2.6m에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기나긴 세월 묵묵히 쌓인 고대문명의 현장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공원 한 편에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강화역사박물관이 있다. 구석기시대의 주먹찌르개, 청동기시대에 흙으로 만든 그물추와 돌칼, 화살촉 등 선사시대의 자취가 묵은 먼지를 털고 우리 앞에 섰다. 

위치 :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17





강화 평화전망대

짧은 물길 하나 건너면 가깝고도 먼 북녘 땅이다. 양사면 철산리는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 들어가려면 해병대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강화 평화전망대는 그 마을 야산 중턱에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 서서 북한과 마주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인다. 왼편으로는 예성강이 흐르고 오른편으로는 서해로 내려가기 전 임진강과 한강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푸른 물결이 욕심도 이념도 다 부질없다는 듯 햇살 아래 넘실거린다. 

위치 :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 산6-1





전등사 삼랑성(사적 제130호)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서린 삼랑성.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만들어진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성곽이 쌓여진 모습이 삼국시대 성의 구조로 그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고종 3년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온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강화의 대표적인 축제로 발돋움한 삼랑성 역사문화축제가 열린다. 

위치 :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41 일원





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

서양 기독교문명과 한국 전통문화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1900년 역사를 시작했다.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고 쓰여진 현판, 단청으로 처리된 서까래, 팔작지붕에 올라앉은 용머리 등 한국 전통문화의 요소가 곳곳에 스며있다. 성당임을 보여주는 것은 지붕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 뿐이다. 강화성당은 1910년대까지 강화지역 선교의 중심이었으며, 성공회 신학교가 이곳에 설립된 이후 성공회 한국선교의 중심역할을 했다. 

위치 :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250 





고종 홍릉(사적 224호)

고려산을 오르다보면 고려 23대 임금인 고종의 무덤 홍릉이 나온다. 몽골의 침입으로 국토는 초토화되고, 문화유산의 손실 또한 매우 컸다. 고종은 어려움 속에서도 고려대장경을 만드는 등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무덤 모서리에 짐승을 조각한 돌이 1개씩 배치되어 있었으나 없어지고, 현재는 사람 모양의 돌조각 2구가 남아있다. 입구에 제사를 준비하던 재실로 쓰인 한옥 건물이 하나 있다. 

위치 :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180





광성보(사적 제227호)

강화는 아픈 땅이다. 5진 7보 53돈대는 상처의 흔적.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치른 투쟁의 자국이다.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진진, 제물진, 월곶진 등과 함께 강화 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1233년부터 1270년까지 바닷길을 따라 길게 외성을 쌓았다. 이후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지은 후 효종 9년에 광성보가 처음 세워졌고,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다. 

위치 :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연미정(인천 유형문화재 제24호) 

선인이 자연 안에서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배우던 정자 연미정(燕尾亭), 제비꼬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물의 끝점과 바다의 시작점이 만나는 절묘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이 안에서의 달맞이는 강화팔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절경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이면에는 아픈 역사가 흐르고 있다. 연미정은 인조 5년 정묘호란 때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지금은 남과 북을 가로막는 민간인 통제선 안에 외로이 있다. 역사의 상처가 아름다운 풍경과 교차되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위치 :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242 





글 정경숙 굿모닝편집위원  사진  정정호 자유사진가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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