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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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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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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그릇[陶器], 옹기, 오자기(烏瓷器), 유색토기(戾色土器),질그릇 , 오지 , 도기, 오자기(烏瓷器)

    붉은 진흙으로 만...배기·동이·옹배기·뚝배기·화로·단지·약탕관 등이 있다. 이들은 도기 · 옹기그릇 · 질그릇 · 오지 등으로 불리며, 오지의 어원은 알 수 없으나 한자로는 ‘오지(烏只)’ 또는 ‘어지(於芝)’ 등으로 표기한다오지그릇의 ‘오지’는 오자기(烏瓷器)의 준말로 검은빛을 띤 고화도로 구워진 그릇을 칭하는 말이다. 자연유약인 잿물이 입혀진 오지그릇은 가야시대와 신라 초기에 이미 나타나는데 조선시대의 것과 유약 및 강도가 비슷하여서 그 역사가 오램을 알 수 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와기전(瓦器典)이라는 직제를 두었다고 하니 오지그릇을 굽는 전문적인 장인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서울과 지방에 100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고 한다.오지그릇은 표면에 유약처리를 하여 구우므로 방수성이 질그릇보다 우수하다. 따라서 간장이나 술 등을 담아두는 저장용기로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1) 제조방법 먼저 진흙을 땅두멍에 넣고 물을 타서 수비(水飛)시켜 불순물을 제거한다. 고운 앙금을 받아 햇볕과 비바람에 맡겨 삭혀둔 뒤에 떠다가 몇 군데의 것을 섞어 적당히 건조되면 밟고 메로 쳐서 다진다. 이것을 알맞은 굵기로 만들어 1∼2m 길이로 자른다.이 진흙을 가지고 물레를 이용하여 그릇을 빚어낸다. 빚어진 그릇은 송침 건조장에 보내지고 햇볕에 약간 말려 잿물을 입힌다. 잿물은 보통 철분약토와 나뭇재를 1 : 1로 섞어서 체에 걸러내어 쓴다. 유약을 먹인 다음에는 손가락으로 무늬를 넣기도 한다.표면이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옹기를 '오지그릇'이라한다. 오지그릇은 붉은 진흙으로 모양을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워요. 그리고 표면에 도자기를 구울 때 쓰는 약품을 바르는데 이것을 '잿물' 혹은 '오짓물'이라고 한답니다. 이렇게 '잿물'을 바르고 다시 구우면 표면이 매끄러운 오지그릇이 만들어져요. 무늬를 넣어 완성된 그릇은 가마에 넣고 불을 때게 된다. 연료는 상수리나무나 소나무로 만든 장작을 주로쓴다. 처음 3일은 약하게 불을 때고 6, 7일째는 철야로 불을 때며, 8일째는 군불처럼 느슨하게 땐다. 그 뒤에 사흘 동안은 식도록 그냥 놔두었다가 꺼낸다. 가마는 20∼30°의 경사진 나지막한 언덕에 만든다.요즈음은 연료비를 절감하고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하여 저화도에서 잘 녹는 망간과 연단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그릇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려 오지그릇 고유의 자연스러운 광택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연단의 납성분은 인체에 해를 끼칠 우려도 있다.(2) 종 류 오지그릇은 투박한 맛은 있으나 그 견고성과 방수성으로 주로 저장기와 주방용구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살림그릇으로 이용된 오지그릇의 종류① 항아리 : 아래위가 좁고 배가 몹시 부른 형태이다.② 독 : 운두가 높고 중배가 부르며 전이 달린 형태이다. ③ 중두리 : 독보다 조금 작고 배가 부른 형태이다.④ 바탱 : 중두리보다 배가 부르고 키가 작다.⑤ 소래기 : 굽 없는 접시 모양의 넓은 그릇으로 독의 뚜껑으로도 쓰인다.⑥ 자배기 :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짝 벌어져 있다.⑦ 버치 : 자배기보다 조금 깊고 크다.⑧ 두멍 : 물을 길어 붓고 쓰는 큰 동이.⑨ 동이 : 몸이 둥글고 아가리가 넓으며 양옆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⑩ 옹자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⑪ 푼주 : 아래는 뾰족하고 위는 짝 바라졌다.⑫ 밥소라 : 위가 좀 벌쭉하고 밑에 높직한 굽이 달려 있으며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⑬ 귀때동이 : 귀가 달린 그릇.⑭ 동방구리 : 동이보다 배가 부른 그릇.⑮ 단지 : 자그마한 항아리로 배가 부르고 목이 짧다.⑯ 소줏고리 : 동이의 밑쪽을 마주 붙이고 꼭지를 달아 소주를 내리게 만든 그릇.⑰ 귀때 : 간장·기름 등을 병에 옮겨 부을 때 쓴다.오지그릇은 부엌용구 외에 필통·연적·벼루·문진·등잔·등잔대·촛대·재떨이·담배통·연초함·화분·수반·화로·풍로·요강 등의 문방구를 비롯한 실내용구들도 있다. 이와 같이 널리 이용되었던 오지그릇은 생활양식이 변하고, 또한 플라스틱·스테인리스 스틸·유리 등의 식기 재료의 발달로 그 쓰임새가 극히 제한되고 있다.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통칭, 옹기(甕器) 옹기에 관한  일반설명옹기는 질그릇(진흙만으로 반죽해 구운 후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나지 않는 그릇)과 오지그릇(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구워 윤이 나고 단단한 그릇) 을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옹기장은 옹기를 만드는 기술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옹기는 상고시대부터 관·제기·식기·솥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와기전(瓦器典)이라 하여 옹기의 생산을 담당하는 기관을 두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서울과 지방에 100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 옹기점의 시설로는 수비장(질 좋은 흙을 얻기 위한 시설), 움(작업장), 물레(그릇제작용 받침틀), 송침(건조시설), 찬간(저장시설), 가마(그릇 굽는 시설) 등이 있으며 가마의 형태는 경사진 곳  옹기에 관한 전문설명옹기를 만드는 기술을 옹기장이라고도 하며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匠人) 또는 도공(陶工)을 일컬어 옹기장이라 하기도 한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현존하는 옹기점(甕器店)은 광범한 도토공업(陶土工業) 분야 중 가장 최근까지 널리 보급되어 전래되어 온 우리나라의 유일한 전통적인 요업(窯業) 중의 하나이다. 옹기는 상고시대 때부터 관용제기(祭器)식기솥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와기전(瓦器典)이라 하여 도기류(陶器類)의 생산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는데 경덕왕 때 잠시 도등국(陶登局)으로 고친 일이 있으며, 소속관원으로는 간(干) 1인과 사(史) 6인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초기의 『경국대전 』공전(工典) 경공장조(京工匠條)에 보면 공장의 직종 중 사기장(沙器匠)이 가장 많은 386인으로 사옹원(司饔院) 소속에 380인, 내수사(內需司)에 6인이 종사하였는데, 옹장은 본조(本曹)봉상시(奉常寺) 등 14개 기관에 104인이 종사하였으며 각도·각읍에 공장의 명색이 있으나 18세기의 『대전통편 大典通編 』공전(工典)에는 외공장 의 성적(成籍)을 각도에 비장(備藏)하는 법규가 없어지고 관부에 사역이 있으면 사공(私工)을 임용하도록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경상도 초계군(草係郡)과 진주목(晋州牧)에 황옹(黃甕) 진상품관련근거오지그릇[陶器]은 경기도(광주목, 안성군, 연천현, 이천도호부, 적성현, 죽산현, 지평현, 통진현) 충청도(청주목, 연기현, 임천군, 청안군) 경상도(동래현(부산)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고사촬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다. 옹기의 과학적 특성800도 이상의 온도로 오랫동안 구우면 옹기 벽에 루사이트 현상이 일어난다. 루사이트란 백류석이라고 하는 일종의 화산암이며 옹기벽에 루사이트의구멍이 뚫리는 현상을 루사이트 현상이라고 한다. 옹기 재료에 포함된 결정수가 열을 받아 빠져 나오면서 미세한 구멍을 남기는 것이다. 산소보가 크고 물방울보다는 작은 구멍이다. ‘옹기는 숨을 쉰다’는 속설은 이 때문이다. 물보다 작고 산소보다 큰 소금이나 설탕이 옹기 표면으로 흘러나와 맺힌다. 이를 ‘옹기가 땀을 낸다’는 속설은 이 때문이다.간장 독이나 된장 독에 허옇게 소금기가 서리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간장, 된장 등은 소금기가 너무 빠져 나가면 안 된다. 이때는 질 그롯 대신 오지 그릇을 사용한다. 오지그릇은 약토와 재를 섞어 만든 유약을 입혀 구우면 표면이 매끄러워지고 바람은 통해도 물은 통하지 않는다. 광명단은 산화된 납이 주요 성분인 유약이다. 이 유약 칠을 하면 옹기가 숨 쉴 수 없고 맑지 않은 울림과 깨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옹기가 붉은 색을 띠고 매끈하며 지나치게 광택을 낼 때는 광명단을 사용한 것이다. 천연 유약이 좋다. 옹기의 지혜마지막 굽는 단계에서 특별한 과정. 가마에 소나무 가지를 넣고 불을 땐다. 그와 동시에 진흙으로 가마 구멍을 막아 연기나 공기가 새나가지 못하게 한다. 소나무 가지가 불완전 연소하면서 생긴 연기와 그을음이 옹기에 스며 들게 한다. 그을음이 스며들어 까맣게 된 옹기는 꺼먹이 그롯. 그을음이 정화 효과 및 벌레 퇴치 효과. 살균 낙용이 있다. 꺼먹이 독은 물 항아리와 쌀독으로 사용한다. 쌀 벌레가 생기지 않고 물을 정화시켜 물 맛이 좋아지고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장독대가 높은 것은 벌레의 접근을 차단하는 목적이다. 옹기의 형태옹기의 배불뚝이 형태는 햇볕을 골고루 받아 옹기의 상하 부위 온도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여러 개를 붙여놓아도 아래 부분에 빈 공간이 생겨 통풍이 쉽다.옹기 형태는 지방 마다 약간 차이가 있다.날씨가 추운 이북 지역 옹기는 비교적 훌쭉한 형태로 키가 크고 입구가 넓다. 복사열이 비교적 적어 입구와 바닥이 좁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부지역의 옹기는 배가 불룩하고 입구가 좁다. 기후가 따뜻해 태양 복사열과 지구 표면에서 반사된 복사열의 양이 많아 중간 부위를 배부르게 만들면이 복사열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구와 바닥의 지름을 작게 만든다. 또한 배불뚝이 형태는 용량을 최대화하기 위한 목적이다.오늘날의 플라스틱 용기는 환경 호르몬의 온상이다. 전자 레인지, 뜨거운 물로 조리하거나 뜨거운 기름을 부을 때 환경 호르몬이 용출된다. 환경 호르몬은 지용성이다.6개월 이상 물을 저장하거나 거친 수세미로 용기를 닦아낼 때도 용출된다. PVC(폴리염화 비닐)가 가장 유해하고 PC(폴리카보네이트), PE(폴리에틸렌), PP( 폴리프로필렌) 순서로 해롭다.옹기는 살균효과, 정수 효과, 냉장고 역할을 한다. 장맛. 된장 찌게는 뚝배기에 끓여야 제 맛이 난다. 열 전도율이 낮아 천천히 데우고 잘 식지 않기 때문이다. 한옥 구들장과 비슷한 원리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사람을 뚝배기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옹기의 역사약토(藥土)라는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질그릇의 총칭. 옹(甕,瓮)은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독은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져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시신을 넣는 관으로도 사용되어 왔고,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생활에 더욱 긴요하게 사용되어 고구려의 안악 3호분 고분벽화에 크고 작은 독을 늘어놓은 장면이 있으며, 백제와 신라에서는 쌀이나 술, 기름과 간장, 젓갈 등을 저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려시대에는 12세기 전반에 송(宋)나라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따르면, 쌀과 장을 저장하는 용기로 큰 독을 사용하였으며, 과일이나 식초, 식수 저장용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경국대전에는 봉상시(奉常寺) 등 14개 기관에 옹장(甕匠)이 104명 있고, 각기 조역(助役) 2인이 있다 하였다.옹기는 단순히 그릇의 형태로 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질그릇을 총칭하는 개념으로서 독을 비롯하여 소래기?단지?식초병?시루? 거름통?약탕기 등 황갈색의 유약(柚藥)을 입힌 생활용기들을 말하는 것으로, 형태로서의 독과 구분된다.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옹기는 현재까지 15, 16세기의 분청자?백자 가마터에서 발견된 바 없으나 17세기의 철화백자(鐵畵白磁) 가마터인 담양 용연리, 대전 정생동 요지에서 발견되고 있어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새로운 사회변화에 따라 종래의 질그릇(도기) 표면에 약토를 입힌 옹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옹기는 18, 19세기를 거치면서 당시 사회의 요구에 따라 국민들의 생활에 급속하게 확산되어 일상생활에 긴요하게 쓰였으며, 지역에 따라 형태나 무늬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이러한 모습은 19세기 후반 김준근(金俊根)의 풍속도에 그려진 가마가 있는 옹기점과 제작 모습, 파는 모습 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에 광명단(光明丹: 산화연)이 옹기에 쓰이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1960년대 이후 옹기 제작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렇듯 오랜 역사성을 가진 옹기는 현대에 이르러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라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옹기의 특성옹기의 특성으로는 통기성?저장성?발효성?경제성, 그리고 쓰임새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①통기성:높은 온도로 가열됨에 따라 옹기(甕器)의 기벽에 함유되었던 결정수가 빠져나가면서 기공이 생성되어 옹기의 외부와 내부 사이로 공기가 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옹기는 예부터 숨쉬는 그릇으로 인식되었다.②저장성:옹기 기벽의 기공이 내면에 형성된 불순물을 밀어내는 작용을 하게 되어 내용물이 부패하지 않고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뛰어난 저장능력을 갖고 있다.③발효성:우리 나라 식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발효식품이라는 점인데, 발효식품은 대부분 옹기 안에서 발효 숙성하게 된다. 술독이나 촛병, 젓독 등은 발효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용기이다.④경제성:옹기제작에 사용되는 옹기토나 땔감, 유약 등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옹기는 일반 서민들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이러한 경제성으로 인해 옹기는 오래도록 우리의 생활용기로서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⑤쓰임새의 다양성:옹기 제품은 식생활 용기가 주류를 이루나, 등잔?화로?요강?재떨이?연적?벼루 등 주생활 용구와 장군?소매귀댕이?병아리물병?쭈꾸미잡이단지 등의 생업용구, 향로?옹관?명기 등의 의례용구, 그리고 타악기의 일종인 부(缶)?옹장구?무르기 등의 악기류에도 쓰였고, 옹기로 기와를 만들어 지붕을 잇기도 하였다. 옹기장의 미래가치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여온 옹기의 역사성과 한국전통문화를 대변하는 문화적 가치는 한민족문화의 정체성 정립에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중요한 자산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전통가치가 세계인이 공감하고 필요로 하는 가치 일 때는 바로 미래가치가 될 것이다. 도자기 역사상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의 옹기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발효음식 제조용기로서의 가치와 생명의 근원인 흙을 보존하는 자연환경 보존적인 가치, 세계 속 에서 한국문화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공감대를 확대하여 가는 한류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음으로 이는 오늘과 미래에서 우리 생활 문화를 보다 건강하고 윤택하게 하는 미래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사람 키 만 한 독을 지어내고 빠른 속도로 장식무늬를 새겨 넣는 놀라운 옹기장의 솜씨는 전통도자공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간색조의 단순한 형태미는 현대가 추구하는 단순미와 상통하는 예술성이 강하여 십 수 년을 수련하여야 장인이 될 수 있는 옹기장의 작품은 세계인이 공감하는 예술품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즉 한국의 옹기는 전통수공예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 되어지는 현대사회에서 미래 자산 일수 밖에 없음으로 지금 당장 옹기의 활용도가 낮다 하여도 옹기장의 기능과 역사는 보존 되어야만 한다. 전통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옹기(甕器)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통칭으로서, 보통 가정에서 쓰는 옹기로는 독·항아리·뚝배기·자배기·푼주·동이·방구리 등이 있다.  전통 옹기의 특징 옛부터 전해오는 옹기는 순수한 천연유약과, 맥반석을 사용함으로써, 적당한 습도와 공기의 통풍으로 기물 자체가 숨을 쉬며, 독을 빨아들이거나 정제하는 방부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음식물을 자연발효시켜 맛과 신선도를 장기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최상의 기물로서의 특징이 있습니다.옹기는 1,200℃의 고온에서 생성된 수없이  많은 미세한 구멍들을 통해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이기도 하고 내부의 습기 등을 선택적으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옹기는 일명 '숨쉬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자연적인 발효가 이루어져야 제맛을 내는 김치는 물론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은 우리의 옹기만이 그 맛과 신선도를 유지합니다. 언제부터 옹기제품을 사용했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1520년경의 ?濟州風土錄?에 의하면 목통(木桶)에 물을 담아 짊어지고 다녔음이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옹기 제품의 이용은 그 다음 어느 때부터라고 보인다. 옹기 그릇의 쓰임새옹기의 쓰임새는 다양하다.장독-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담아둠젓독- 젓갈을 담아 둠쌀독- 쌀이나 여러가지 곡식을 넣어 저장약탕관- 약을 달일떄 사용시루- 떡을 찔때사용  음식의 발효를 도와주는 숨쉬는 그릇,  옹기간장, 된장, 김치 등을 담는 커다란 독이나 시루는 물론 굴뚝, 촛병, 등잔, 기와, 장군 등 다양한 용도로도 사용된 생활용품  옹기 는, 금이 가거나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에 가까운 그릇입니다.옹기 의 특징은 바로 그 ‘저장력’에 있다. ‘곰삭은 맛’으로 표현되는 우리나라 음식은 대부분이 발효식품입니다. 그 음식을 저장하는 그릇은 음식의 발효를 도와주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찰흙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릇에 미세한 공기 구멍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옹기 의 안과 밖으로 공기를 통하게 해서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오랫동안 보존해 줍니다다. 된장, 간장, 김치, 젓갈 같은 발효 음식의 저장 그릇으로  옹기 가 많이 사용되어 온 것도 이러한  옹기 의 특성 때문입니다.쌀이나 보리, 씨앗 등도  옹기 에 넣어 두면 다음 해까지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이는  옹기 를 가마 안에 넣고 구울 때, 나무가 타면서 생기는 검댕이  옹기 의 안과 밖을 휘감으면서 방부성 물질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항아리와 옹기는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지혜이며 문화입니다. 옹기 숨구멍의 비밀.옹기는 숨을 쉰다고 한다. 옹기 표면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그 비밀은 옹기제작의 주원료인 점토에 있다. 옹기는 찰흙 60%, 모래 20%, 백토 20%의 비율로 혼합해 사용한다.숨구멍은 찰흙과 모래의 조화속에서 만들어진다. 먼저 점토를 이용해 옹기형체를 만들어 말리게 되면 찰흙은 13~15%가량 수축하지만 모래는 변함없어 모래알이 울퉁불퉁 불거진다. 이 상태의 옹기에 유약을 발라 섭씨 1250도로 가열하면 찰흙은 또 수축하지만 모래는 이 때도 거의 변화가 없다.이 때 옹기 표면에 땀구멍과 같은 미세한 숨구멍이 나타난다. 청자나 백자는 모래를 완전히 제거해 찰흙만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숨구멍이 없는 것과 비교된다. 옹기의 숨구멍은 워낙 작아서 음식물이 흘러나오지는 않지만 그 사이로 공기는 소통하게 된다.  지역마다 다른 옹기의 종류, *항아리항아리 등으로 불려지는 이 저장용 용기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일반적으로 큰 옹기를 가리킨다. 모든 옹기 제품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항아리는 대, 중, 소로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임진강을 경계로 북부, 경기, 충청의 중부, 그리고 경상, 전라, 제주가 포함되는 남부 등 셋으로 구별할 수 있으며, 각 지방별 특징을 갖는다.이중 고려조의 고기기법이 고스란히 전승, 활용되었던 개성을 중심으로 하는 웅진, 연백지방의 도자들은 우리 나라 어느 지역 못지 않게 수준이 높았던 것을 추정해 볼 수 있고 오늘날 남아 있는 유품으로 보아 북부 지역을 대변할 수 있는 기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이물이나 곡식을 보관하거나 이동하는데 주로 사용하였던 생활용기가 동이이다.동이의 종류로는 전체적으로 원형에 가까운 `수박동이`, 그리고 구연부에 귀를 붙인 `귀때동이` 등이 있다. 어린이들의 시신을 땅에 묻을 때에도 동이가 사용되었는데 이때는 동이의 밑부분 중앙에 한 개의 구멍을 뚫어서 사용하였다. *양념단지, 뚝배기, 자배기, 푼주, 방구리.양념이란 음식의 맛과 향을 돋구기 위하여 사용하는 재료를 총칭하는 말로써 일명 조미료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담아서 사용하거나 보관하는 용기를 양념단지라고 한다. 양념이 지니는 좋은 향기나 맛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데는 담는 용기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다르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옹기로 만들어진 그릇을 생활도구로 사용하여 왔는데 그 중에서 양념단지로 보이는 용기로는 기원후 8세기의 쌍단지가 있다. 소금, 깨, 고춧가루, 마늘쪽 등 수분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양념을 주로 넣어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던 양념단지는 일단지, 이단지, 삼단지, 사단지, 오단지, 육단지 등 그 규모가 크고 작은 것들이 있으며 보통은 옹기제품이 대부분이고, 오지, 질 등의 순서로 제품들이 있다. 옹기가 발효식히는 음식들 - 청국장, 식혜, 된장, 간장, 김치 등. 옹기 제작 방법철분이 많은 질흙으로 만드는데, 먼저 그릇 만들 흙을 물 속에 넣고 휘저어 모래나 불순물을 가려낸다. 그런 다음 받아둔 고운 앙금에서 물이 빠지면 그릇을 빚어 햇볕에 말린다. 말린 날그릇을 다시 햇볕에 말리고 잿물을 먹인 다음, 또 한 번 말린다. 날 그릇에 바르는 유약은 잿물 통에 철분이 섞인 흙과 나뭇재를 비슷하게 섞어 넣고 고루 저은 다음, 체에 쳐서 걸러낸다. 날 그릇에 유약을 먹인 다음에는 몸통에 난초나 풀 무늬를 그려 충분히 말린 다음, 가마에서 구워 완성한다.옹기의 아름다운 점이나 슬기로운 점1.  환경 호르몬 걱정이 없다.2.  중금속 해독 작용을 탁월하게 해 준다.3.  유산균이 살아있는 김치를 만들어 준다.4.  향수를 자극하는 독특한 멋이 있다.5.  자연 환원현상을 일으켜 환경보호에 좋다.6.  판촉물이나 집들이 선물에도 품위를 지켜준다 참고문헌삼국사기(三國史記), 경국대전(經國大典), (식품과학기술대사전, 2008.4.10, 광일문화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증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경국대전, 대전통편, 고사촬요

  • 이로운 소금은 대부도에 위치한 동주염전의 옹기판 천일염을 사용하며 청와대에도 소금을 공급하는 우수한 소금입니다.

    이로운 소금은 대부도에 위치한 동주염전의 옹기판 천일염을 사용하며 청와대에도 소금을 공급하는 우수한 소금입니다. 동주염전은 국내에서 가장 낮은 염도와 가장 많은 미네랄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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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기의 역사성과 미래적 가치

    옹기는 한국인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생활용기이다. 집집마다 적게는 십 여 개, 많게는 수십 개씩 갖추어졌었던 도자기로서 한국도자기 역사상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과 계층의 구분 없이 가장 널리 쓰여 왔다. 한국인의 삶의 역사 자료로서 한국도기의 전통으로서, 한국도자기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옹기의 개념 옹기는 가장 생산량이 많았던 전통도자기의 하나로 요업 공학적 분류로는 도기이다. 그러나 옹기는 한국인의 삶의 역사와 함께 하였고 한국인의 생활공간의 일부분처럼 한국전통생활에 밀착되어 있었던 존재이어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 같이 한국전통도자기로서의 역사성이나 예술성, 또는 전통가치가 크게 주목되지 못하였다. 단지 한국인의 고유한 생활정서와 민속을 대표하는 민속자료로서만 그 전통가치가 인식되어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옹기는 그 성형기법, 태도, 장식문양, 쓰임새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긴 전통을 이어 온 한국인의 삶의 역사 자료라 할 수 있다. 옹기는 일반적으로 도기와 자기의 분류개념보다는 일반적으로 붉게 반짝이는 유약이 입혀진 질그릇 독을 특정하여 지칭하고 있다. 발효음식을 즐기는 우리민족이 삼국시대는 물론 그 이전부터 발효용기를 저장용기로 도기陶器항아리를 사용하여 왔는데 술과 장의 발효용기로 도기가 가장 효과적인 용기이었다. 그 발효용기의 필요에 의하여 한국에서는 도기 항아리의 제작이 지속적으로 발달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도기항아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옛 문헌에서는 옹甕이 사용된다. 고려시대의 일상생활 모습을 기록한 서금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事高麗圖經」에도 물을 저장하는 물항아리의 표현을 옹甕이라고 기재하고 있으며 쌀의 저장용기로 “대옹大甕”을, 과일과 식초의 저장용기로 “도기항아리를 땅에 묻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주술·기록들은 큰 독 을 옹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보면. 옹은 고려시대까지 도기항아리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토산품조에도 도기소와 자기소로 그 생산지를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8세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徑濟志」에서도 도기 가운데 가장 큰 것,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 발효용, 저장용을 옹앵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옹甕은 도기항아리를 지칭하던 것이다. 넓은 의미의 옹기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푸레독, 유약을 입힌 옻그릇, 유약을 입히지 않았으나 고온소성으로 표면이 반짝이는 반오지가 있다. 그 종류는 모두 선사시대 이래 현대까지 지속되어온 한국토기·도기전통에 있다. 푸레독과 반오지는 삼국시대 이래 크게 발전하였던 회색결질도기의 전통이며 옻그릇은 도기에 유약을 입힌 고급도기라고 할 수 있는 시유도기의 전통이다. 따라서 옹기의 개념은 도기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것이며 대체로 도기항아리를 뜻 한다. 그리고 도기항아리를 가르키는 “옹”이 근대에 와서 큰독이 옹기로 불리워지게 된 것이다. 옹기甕器의 역사성 옹기의 역사는 선사시대 토기에서 부터이다. 자기와는 별도로 전통 토기의 제작기법과 기능, 특성을 계승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기로 큰 독을 만들어 온 매우 강한 전통이다. 옹기에서 볼 수 있는 성형기법, 태토, 유약, 형태, 소성방법 에서 옹기의 연원을 탐색하여 보면 선사시대 이래 태토, 성형기법은 선사시대 토기로부터, 형태와 문양은 청동기 시대, 무문도기항아리, 손잡이가 있는 자배기와 고구려시대 시루, 손잡이동이, 둥근 독 에서 그 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옹기의 성형기법과 장식문양 옹기의 성형은 선사토기 제작기법과 같이 바닥판을 만든 후 또아리 쌓기로 타래성형을 하는 방법(권상법 捲上法)과 바닥판 위에 넓은 흙판을 붙여 올리는 채바퀴 타렴 성형 방법(윤적법 輪積法) 두 가지기법을 전승하고 있다. 이와같은 성형방법은 삼국시대 경질회색도기, 고려·조선의 회색도기, 도기에 유약을 입힌 고려시대의 녹갈유 도기, 흑갈유 도기의 입 넓은 병, 항아리 등 시유도기를 포함하는 모든 도기의 성형기법이 옹기에 계승되고 있다. 옹기의 성형 후 표면을 장식하는 주요 장식무늬도 흙띠붙임의 돌대장식은 신석기시대 토기에서 옹기까지 이어지는 전통이며 유약을 손가락으로 훑어내며 그려 넣는 무늬 가운데 파상문도 삼국시대 고구려·백제토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던 패턴이며, 손가락 마디로 눌러 찍은 무늬와 돌대를 등간격으로 눌러 찍는 돌대장식도 신석기시대 토기와 마한의 옹관 등 고대토기의 장식에 쓰인 방법과 형태이다. 이 같은 표면장식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 같은 자기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장식기법이다. 성형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옹기의 장식기법도 고대 토기에서 부터의 기법으로 오늘날의 옹기장은 그 전통기법을 계승하고 있다. 형태의 기원 및 유약도기의 개발 현존하는 옹기항아리의 기본 형태는 목이 없는 넓은 입에 어깨부터 배가 불러 풍만한 몸체의 바닥이 편평한 둥근 항아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항아리에서부터 유래한다.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무문토기 항아리의 기본 형태는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 토기에서도 볼 수있다. 옹기의 형태와 같은 고구려 도기는 1998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구리시의 구의동, 아차산성 고구려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구의동, 아차산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도기에는 오늘의 장독대에서도 볼 수 있는 옆으로 붙인 넓은 띠 손잡이가 단지 양쪽에 붙어 있는 물동이, 시루, 자배기와 같고 윗면이 편평한 쟁반모양의 항아리 뚜껑은 오늘날 옹기와 형태가 똑같다. 또한 A.D. 3세기의 안악 제3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시루, 항아리들이 지금의 옹기와 같은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도기에 유약을 입히는 기술은 표면이 반짝이는 고급도기의 개발을 가져와서 근대에 와서는 시유된 옹기가 더욱 많이 제작되게 되었다. 옹기에 시유된 유약은 철분 함량이 높은 붉은 흙에 잿물에 섞은 잿물유약, 즉 회유灰釉계통이다. 1,200년전 구림도기의 유약과 유색이 후대에 고려시대로 계승되면서 녹갈유·흑갈유·흑유도기로 점차 개발되어갔고 흙물과 잿물을 섞어서 만드는 잿물을 친다는 옹기의 유약으로 계승된 것이다. 조선시대 시유도기의 생산의 흔적은 「조선실록지리지」의 초계군草溪郡과 진주목晉州牧 도기소에서 황옹黃瓮을 굽는다는 기록과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외공장조工典外工匠條에 충청남도 임천에도 황옹장黃瓮匠이 한사람 있다고 하는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185개소의 도기소가운데 불과 2개소의 황옹과와 104명의 옹장甕匠가운데 1명의 황옹장을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도 시유도기는 고급도기로서 그 생산이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말 1883~1885년 외국인 조류학자 피에르Pierre Louis Jouy의 조선도자기에 관한 기록에도 “갈색과 흑색의 유약이 안팎으로 칠해져 있고 물결무늬가 있다”라고 한 기록을 보아도 19세기 말에 조선의 옹기는 대부분 다갈색의 시유도기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역사는 1200년의 전통인 것이다. 옹기장의 미래가치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여온 옹기의 역사성과 한국전통문화를 대변하는 문화적 가치는 한민족문화의 정체성 정립에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중요한 자산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전통가치가 세계인이 공감하고 필요로 하는 가치 일 때는 바로 미래가치가 될 것이다. 도자기 역사상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의 옹기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발효음식 제조용기로서의 가치와 생명의 근원인 흙을 보존하는 자연환경 보존적인 가치, 세계 속 에서 한국문화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공감대를 확대하여 가는 한류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음으로 이는 오늘과 미래에서 우리 생활 문화를 보다 건강하고 윤택하게 하는 미래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사람 키 만 한 독을 지어내고 빠른 속도로 장식무늬를 새겨 넣는 놀라운 옹기장의 솜씨는 전통도자공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간색조의 단순한 형태미는 현대가 추구하는 단순미와 상통하는 예술성이 강하여 십 수 년을 수련하여야 장인이 될 수 있는 옹기장의 작품은 세계인이 공감하는 예술품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즉 한국의 옹기는 전통수공예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 되어지는 현대사회에서 미래 자산 일수 밖에 없음으로 지금 당장 옹기의 활용도가 낮다 하여도 옹기장의 기능과 역사는 보존 되어야만 한다. 전통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사진 | 나선화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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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도 옹기전에서 보이는 다양한 옹기들

    옹기는 언제부터 우리가 사용을 했을까?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誌 魏志 東夷傳)』 고구려조에 보면 「집집마다 작은 창고를 갖추고 있는데, 이를 부경(浮京)이라 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매우 청결하여 저장을 잘하며, 발효된 음식을 먹기를 즐겨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경우에는 제31대 신문왕조에 왕이 왕비를 맞이하는데, 왕비의 집에 보내는 예물품목이 쌀, 술, 기름, 간장, 포와 젓갈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통일 이전부터 저장구인 옹기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선화봉사 고려도경』에는 수옹도기라는 단어가 나오며, 규모가 높이 6자 너비 4자 5치, 용량이 3섬 2되가 든다고 했다. 이는 고려시대에는 이미 옹기를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늘에 걸린 <조선옹기 특별전시장>의 간판과 옹기를 둘러보는 사람들 서민들과 함께 한 옹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많은 기록에서 옹기가 나타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경상도 초계군과 진주목 세 곳에서 황옹을 굽는 가마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국대전』공정 외공장조에 보면 충청도 임주에 황옹장이 한 사람이 있으며, 공전 경공장조에는 본조 봉상시 등 14개 기관에 옹장이 104명에 각각 뒷일꾼 2명씩을 배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와 같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진 옹기는, 시대가 지나면서 더 많은 종류의 옹기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은 서민 생활에서 꼭 필요한 그릇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건너편으로 30m 정도를 이목대 쪽으로 가면 팔도 옹기전을 열고 있다. 여기저기 널린 다양한 옹기들을 관람 할 수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매매도 이루어진다. 팔도옹기전에 보이는 옹기들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옹기들을 둘러본다. 다양한 형태의 옹기들 '술독'이다. 술을 빚은 날짜와 몇번 째 슬독인지, 누가 담구었는지를 적게 되어있다. 높이는 5자 정도이며 길고 위가 불룩하게 생긴 것이 특징이다.  맨위는 '청수단지'다. 청수단지란 이른 아침에 주부들이 깨끗한 물을 길어 부어놓고, 집안의 안과태평을 빌 때 사용을 하는 옹기이다. 가운데 것은 '좀도리'라고 하는 옹기이다. 좀도리란 매일 밥을 할 때마다 조금씩 쌀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옹기항아리다.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공동체를 볼 수 있는 그릇이다. 아래 항아리는 '물두멍'으로 물을 많이 담아주기 위한 항아리다. 물두멍은 키는 낮고 배가 불룩하며 주둥이가 넓어 편하게 물을 퍼담을 수 있다. 위에 것은 '시루'라고 부른다. 흔히 떡을 찔 때 사용하는 것이다. 가운데는 '자배기'라고 하며 물건을 담아두거나 물을 담아 두기도 한다. 장독을 덮을 때도 사용을 했으며, 집안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옹기 중 하나이다. 맨 아랫 것은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높이는 85cm, 둘레는 295cm로 곡식, 물, 김치 등을 담아둔다.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사용했으며, 배둘레가 크고 키가 작아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맨 위에 것은 '간장통'이다. 중간에 꼭지가 있어 간장을 따르기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가운데는 '소줏고리'라고 부른다. 좌측은 경상도 소줏고리이며 우측은 전라도 소줏고리이다. 소줏고리는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용기이다. 아랫것은 조선조 말에 만들어진 '똥 항아리'이다. 높이는 135cm, 둘레는 395cm이다.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똥통으로 땅에 묻어 사용을 했다. 위에 것은 '앵병'이라 부르는 옹기이다. 짠지를 담아두기도 하고 청주나 막걸리를 담아 두기도 한다. 가운데는 '씨앗항아리'다. 각종 씨앗을 담아두는 용기로 사용을 했다. 맨 아래는 '장군'이라 부르며, 누여 사용하고 보관은 세워둔다. 어떤 액체를 담느냐에 따라서 물장군, 술장군, 오줌장군, 똥장군 등으로 부른다. 이 옹기는 '귀때단지'라고 부르는 물을 담는 용기이다. 둘레의 한편에 주둥이가 달려 물을 따르는데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옹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전부터 민초들이 즐겨 사용하던 옹기. 옹기는 숨을 쉰다고 하여 음식을 담아 놓으면 오래도록 상하지가 않는다고 한다. 선조들이 어떤 그릇을 사용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그래서 재미있다. 출처 : http://rja49.tistory.com/

  • 전통공예의 현대적 자화상 옹기

    장독은 부엌에 가깝... 돌단을 높직하게 쌓아 공터를 만든 뒤 위에 놓았다. 예전에는 장독대의 옹기 개수로 그 집 살림살이의 규모를 가늠하기도 했고, 장독대의 관리 상태로 그 집 여인들의 살림 솜씨를 판단하기도 했다. 부잣집이나 솜씨 좋은 안주인의 장독은 윤기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 장독으로 쓰는 옹기를 반질반질 깨끗하게 닦는 것은 그저 눈을 즐겁게 하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먼지 때문에 옹기의 숨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여자들은 틈날 때마다 옹기를 닦았다. 숨구멍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공을 들였는가 싶겠지만, 김치며, 젓갈이며, 장이며 갖가지 발효 식품이 썩지 않고 발효되는 비밀이 바로 이 숨구멍에 있다. 옹기에는 미세한 숨구멍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옹기 조각의 단면을 전자 현미경을 사용하여 1500배 이상 확대하여 살펴보면 미세한 숨구멍을 볼 수 있다. 흙 속의 모래성분에 의하여 표면에 유약이 함몰되거나 밖으로 튀어나온 사이로 생겨난 작은 구멍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작은 숨구멍들을 통해 산소와 햇빛이 들어가기 때문에 젖산균을 비롯한 좋은 균들이 숨을 쉴 수 있다. 균들의 활약으로 김치, 젓갈, 장 등이 맛있게, 영양 있게 숙성된다. 숨구멍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이런 식품들을 옹기가 아닌 자기에 보관하면 발효는 커녕 그냥 썩어버리기 십상이다.   옹기는 숨을 쉬는 과정에서 잡물을 빨아들여 기벽에 붙게 하거나 바닥에 가라앉게 만들어 물을 맑게 한다. 기공이 숭숭 나 있는 몸체는 수분을 빨아들여 밖으로 기화시키면서 열을 발산하여 그 속에 담겨 있는 물을 항상 시원하게 해준다. 실제로 내용물의 온도는 바깥 온도보다 약 5도에서 10도 낮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결국 청자나 백자와 같은 단단하고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 자기질에 비하여, 약하지만 물을 잘 흡수하는 질그릇이 물을 보관하는 데에는 더 유리하며, 물이 오랫동안 썩지 않게 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러한 이유로 예전에 좋은 물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골에서는 옹기에 물을 넣어 일주일 정도 놓아두어 물속의 불순물을 옹기 벽에 달라붙게 한 뒤 맑은 물만 걸러 먹었다. 첫눈을 받아 담가 먹었다던 설안주(雪眼酒) 역시도 눈을 옹기에 넣어 눈 속의 불순물을 정제해서 만든 술이다. 예전에 새 옹기를 사면 먼저 된장 독으로 사용한 뒤 한두 해가지나고 나서야 장독으로 사용했던 것도 숨구멍 때문이다. 새 옹기에 간장을 넣었다간 꽤 곤란한 경우가 생기는데, 숨구멍을 통해 간장이 스멀스멀 스며나와 옹기 표면에 땀이 맺히듯이 간장이 맺히는 것이다. 이렇게 없어지는 간장의 양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예전에는 된장을 새 옹기에 넣어 된장의 염분 등이 구멍을 어느 정도 메우도록 했다. 이렇게 1~2년 정도 된장 독으로 쓰고 나면 간장과 같은 액체는 새지 않으면서도 공기는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숨구멍들만 남았다. 숨구멍의 비밀숨구멍의 비밀 중 하나는 옹기를 빚을 때 쓰는 흙에 있다. 자갈과 모래가 들어 있는 거친 흙으로 옹기를 빚어 가마에서 1100도 이상으로 구우면 고온에 모래 알갱이 등이 녹으면서 기포가 만들어지고, 이때 생긴 미세한 공간들이 옹기의 숨구멍이 된다. 그런데 흙을 정제하지 않은 채 쓰기 때문에 옹기장이들이 물레를 찰 때 손을 베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이다. 옹기는 900도 이상으로 굽고 잿물을 바르지 않아 윤기가 없는 질그릇과 1100도 이상으로 굽고 잿물을 발라 윤기가 있는 오지그릇, 두 가지로 나뉜다. 질그릇으로는 기와나 시루, 오지그릇으로는 항아리, 뚝배기, 약탕기 등이 있다. 가마에 굽기 전에 바르는 잿물 유약도 중요하다. 빨간색이나 짙은 갈색 같은 진한 색의 유약을 발라 햇빛을 잘 흡수하고 공기가 잘 순환되도록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이 잿물 유약 대신 광명단 이라는 화학 성분 유약이 맹위를 떨치면서 전통 옹기가 고사할 뻔한 적이 있다. 표면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데다 잘 깨어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값이 쌌기 때문에 광명단 옹기는 근대에 들어와 장독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광명단 옹기는 가짜다. 인체에 유해한 납 성분이 유약성분에 포함되어 있어 인체에 치명적이며 숨구멍 같은 건 기대도 못하니 발효에 도움이 될 리도 없다. 다행히도 1980년대부터 잿물 유약을 바른 전통 옹기가 부활했지만, 지금도 광명단 옹기들이 화려하면서도 값싼 매력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으니 옹기를 살 때에는 광명단 옹기인지 전통 옹기인지 정도는 구별할 줄 알아야겠다.    우리나라 옹기의 우수성은 다양한 용도나 단순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옹기를 제작하는 기술적인 면에서 나타난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독이 생산되기는 하지만 만드는 방식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외국의 도예가들은 그토록 짧은 시간에 커다란 옹기를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옹기 기술에 대하여 상당히 놀라워한다. 동시에 우리나라 옹기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만의 독특한 기술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옹기 제작 기술이나 유약, 굽는 방법에도 첨단 기술을 방불케 하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우리 옹기 여기저기에 담겨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다재다능한 옹기가 요즘엔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 같다. 어느 집에나 한 대씩 갖고 있는 김치냉장고 덕분에 김치를 독에 넣는 대신 플라스틱 통에 넣게 되었고, 된장이나 간장도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넣어두는 집이 한둘이 아니다. 도시 주택이나 아파트 등의 현대 주거 공간에서는 전과 달리 장독대 설치가 쉽지 않고, 옹기보다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간편하기 때문에 옹기 문화가 사라지는 실정이다. 그러나 옹기는 조형성만으로도 물질문명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고향의 장맛 같은 향수를 일깨워주기도 하며 우리 밥상의 주인공은 여전히 발효식품인 만큼 옹기를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 발효식품의 영양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옹기만 한 게 없으니 말이다. 좋은 옹기 마련해 놓고 뿌듯해하며 아침저녁으로 옹기를 닦던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 안에 건강의 비밀이 숨어 있었음을 상기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최웅철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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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다큐 숨 옹기정수기 항아리정수기 무쇠절구 쌀뒤주 주방명품 김한상 구미 주물공장 사괘맞춤 뒤주

     옹기 정수기 오늘 리얼다큐 숨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서 만들어 낸 주방명품에 대해서 방송을 한다. 옹기의 원리를 그래도 이용해서 현대적인 정수기로 만들어 낸 옹기 정수기. 옹기 필터가 맑고 건강한 물을 우리에게 선사를 하고 있다. 또한 주부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절구, 이 절구가 무쇠로 만들어져 더욱 편리하게 사용을 할 수 있다. 쌀을 건강하게 보관하는 전통 비법의 뒤주는 원터치 서랍이 부착돼 쌀을 손쉽게 거낼 수 있게 만들어 냈다. 우리가 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중에 한가지가 바로 정수기다.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 있는 특별한 정수기가 있다. 생긴 모양이 장독애 항아리를 꼭 닮았고 그 속에는 흙으로 집은 옹기 필터가 있고 수도꼬기까지 달고 있다. 옹기의 숨 쉬는 효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향균과 향취 작용을 한다. 광물질고 흙의 배합 비율에 옹기 필터 정수기 비법이 숨어 있는 것이다. 김한상 씨는 30년 동안 실패는 반복하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옹기 필터 정수기를 만드는 공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 진다. 하루에도 수만 번 흙을 만지다 보니 손가락은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라고. 옹기 필터 정수기를 처음 빚을 때는 원하는 크기보다 20% 정도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불에 구웠을 때 수문이 날아가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초벌을 한 후 유약을 바르는데.. 물 흐르는 자국을 방지하기 위해 한 번에 넣었다 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숙련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정수기의 핵심인 옹기 필터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불에 굽는다. 물이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다. 땅속 깊은 곳 지하수가 암반수를 통과하며 건강한 물이 되듯, 단단하게 구운 옹기 필터로 물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사용한 정수기와 옹기 필터는 끓는 물에 삶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데, 최소 10년은 거뜬하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옹기를 이용해 건강한 정수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뜨거운 불가마 앞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땀 냄새 가득한 이야기 들어본다.   ▶ 무쇠 절구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 때, 주부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또 하나의 손이 있다. 바로 절구인데, 과거 나무절구의 건강한 기능과, 현대 플라스틱 절구의 편리함을 동시에 갖춘 무쇠 절구가 눈길을 끌고 있다. 크기는 줄이되, 무쇠를 재료로 이용해 견고함을 더한 것이다. 구미의 한 주물공장에선 전통 기법 그대로 20년 동안 무쇠 절구를 제작하고 있다. 절구의 틀이 되는 거푸집은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흙으로 일일이 만들어 본을 뜬다. 무쇠 절구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쇠는 1,300℃까지 올라가면 용암처럼 끓어오르는데, 이때 거푸집에 쇳물을 붓는 작업이 시작된다. 무쇠 절구를 만드는 공정 중 가장 위험천만한 순간, 옷에 튀면 살까지 녹아내릴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거푸집에 쇳물을 넣고 굳힌 후 흙을 털어내면 무쇠 절구의 형태가 만들어지지만, 주방에 투입되려면 까다로운 마무리 공정을 거쳐야 한다. 무쇠 절구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그라인더로 세심하게 갈아내 매끈하게 만들어준 뒤, 들기름을 여러 번 발라줘야 비로소 완성! 무쇠는 녹이 슬기 쉽기 때문에, 들기름으로 길을 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전통 절구를 현대에 새롭게 재현하기 위해, 1,000℃가 넘는 쇳물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그 뜨거운 현장을 소개한다.   ▶쌀뒤주 과거 집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던 재산은 바로 쌀이었다. 그리고 그 쌀을 보관하던 뒤주는 광에 모셔두고, 그 열쇠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관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쌀이 더 이상 귀하지 않고, 소비량도 크게 줄어든 요즘은 뒤주를 보기 어려워졌다. 사라져가는 뒤주를 현대적인 아이디어로 부활시킨 사람들이 있다. 한 말씩 들어가던 뒤주의 크기를 쌀 20kg 정도 들어갈 정도로 줄이고, 쌀을 편리하게 꺼낼 수 있도록 원터치 방식의 서랍을 장착한 것! 과거에는 오동나무를 최고로 쳤지만, 요즘엔 소나무로 기둥을 세워 견고함을 더하고 오동나무 뚜껑을 달아 방습, 방충의 기능은 지키고 있다. 이렇듯 현대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졌지만, 예전과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짜 맞춤 기법인 사괘 맞춤으로 만든다는 것. 사괘 맞춤은 십자 모양의 홈에 끼워 맞추는 방법으로, 나무가 주변 환경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뒤틀리지 않는다고 한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최근에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라고 한다. 조상들이 지혜와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만들어진 쌀뒤주, 뒤주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한 사람들을 리얼다큐 숨에서 찾아가 본다. http://wisdom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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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옹기축제

    행사소개 는 전통옹기를 테마로 직접 옹기를 체험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축제이다. 옹기는 숨쉬는 그릇으로 보관한 음식이 썩지 않으며 서민층에서 생활용품에서부터 신앙용, 의료용품, 악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던 용기로서 특히 외고산 옹기는 장작을 이용하는 가마로 만들기 때문에 재질이 우수하고 독성이 없다. 또한 외고산 옹기는 전국 최대의 옹기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어 전통유산인 옹기기술의 발전과 계승을 위해 2000년 제1회 옹기축제를 개최하여 옹기의 변천및 제작과정을 소개하는 등 옹기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널리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축제가 열리는 외고산 옹기마을은 한국에서 최대 규모로 전통 옹기를 제작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국 각 지역에서 옹기 장인들이 모여 들어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해외로까지 수출하고 있다. 행사기간2014.10.24 ~ 2014.10.26 위치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길 23 행사장소울산 울주군 외고산옹기마을

  • 제주옹기굴제 2015

        제주옹기 작업장과 제주옹기박물관을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작년부터 그곳에 새로 축조한 노랑굴에서 큰 볼때기를 한다. 바로 그 자리에 故고흥수 선생의 전수자가 새로 노랑굴을 쌓고 제주옹기의 맥이 뜨겁게 이어지도록 첫 불을 때는 자리이다.    5회를 맞이하는 <2015 제주옹기굴제>는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개최되며, 노랑굴 불때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뿐만 아니라 옹기를 주제로 한 옹기 관련 체험도 다양하게 마련될 예정이다.     행사내용 - 제주전통가마 노랑굴 큰불때기- 굴할망제와 굴밥나눔- 무형문화재 제주옹기장 시연 및 작품전- 제주전통옹기 체험 및 기능대회- 향토명품 25선 전시(타지역 장인, 작가 참여)- 제주옹기에 담아내는 제주전통음식마당- 제주옹기장터- 다양한 체험과 전통놀이마당     행사기간 2015.10.29 ~ 2015.11.01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영로254번길 13 (대정읍) 행사장소 고바치노랑굴 일대 연 락 처 1899-4008

  • 울산옹기축제 2016

    울산옹기축제 2016 국내 최대 규모의 옹기집산지이자 7명의 옹기장인들이 전통방식의 옹기제작기술로 옹기를 제작하고 있는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옹기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지역 대표 특산물인‘옹기’에 대한 홍보 및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생활옹기로써의 보급과 전통산업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한다. 프로그램 - 6개분야 60여개 프로그램 (나만의 옹기만들기 대회, 옹기생활 전시관, 장인공방 체험전 등 다양한 체험과 문화예술 공연) 부대행사 - 전국청소년 예술제 및 문화원 연계 행사- 먹거리 장터 및 세계 풍물관, 어린이 놀이시설 등 행사기간 2016.05.05 ~ 2016.05.08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길 23 행사장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 일원 연 락 처 052-227-4960~1 홈페이지 http://www.ulsanonggi.or.kr

  • 울산옹기축제 2019

        국내 최대 규모의 옹기집산지이자 7명의 옹기장인들이 전통방식의 옹기제작기술로 옹기를 제작하고 있는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옹기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지역 대표 특산물인‘옹기’에 대한 홍보 및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생활옹기로써의 보급과 전통산업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한다.   시작일 2019.05.03. - 2019.05.06 전화번호 052-227-4960~1 홈페이지 http://www.ulsanonggi.or.kr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길 23 주최 울산옹기축제추진위원회 이용요금 체험별 가격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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