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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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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수한 품질로 인정받은 곡성 돌실나이삼배

    돌실나이 삼배 곡성돌실나이 (Gokseong Dosilnai) - 석곡면 죽산길/중요무형문화재 제32호 1918. 8. 2~2004. 12. 19 | 보유자 인정: 1970년 7월 22일 스무 살 때 시집 온 뒤 삼베 짜는 일에 평생을 바쳐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재래식 베짜기는 곡성에서 전해오고 있다. 곡성 삼베는 공이 많이 드는 세포이며, 곱기가 또한 모시같이 청결하여 다른 길쌈보다 더 공이 많이 든다. 이곳 아낙네들은 그들의 정성을 바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왔다. 그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아 일찍이 나라님의 진상품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이 곳은 섬진강과 보성강이 삼면으로 흐르는 물 맑은 지방으로서 외부와는 번잡한 접촉이 없어 예로부터 가내공업으로 전해오는 베짜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 곡성 돌실나이의 특성은 지금도 예와 같은 세포로 질이 변함이 없다. 포의 폭 역시 옛날 그대로 35cm이며 한 필의 길이도 40자의 옛 규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 곳에서 돌실나이 전통을 재래적으로, 기술적으로 가장 잘 고수하고 있는 사람이 故 김점순 선생이었다. 김 선생은 스무 살 때 시집 온 뒤 초막 같은 집에서 오직 삼베 짜는 일로 평생을 사셨다. 그 일로 한량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들과 딸을 교육시키며 지내 온 억척스런 ‘한국의 어머니’였다. 친정어머니가 “아야, 돈 되는 굵은 베여야 돼”라고 하며 열심히 농포를 만들라고 했지만, “엄니 난 한 필을 팔아도 목돈 되는 것을 만들라요”라고 하며 고급삼베만 고집스럽게 짰다. 그 고집스러움이 돌실나이의 명맥을 이어가는 마지막 솜씨가 되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1970년 지정)로 지정되었다. 김점순 선생은 농포(4~5새로 농부들이 입는 옷감이나 장례식 때 사용하는 상포용), 중포(6~7새로 보토 선비들이 입던 모시적삼이나 두루마기용), 세포(9~12새로 제일 고급 베로 임금이나 고위관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의 옷감) 짜기에 두루 능했다. 그 중에서도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하여 짜야하는 세포 짜기에는 그 솜씨를 따를 자가 없었다. 물론 김 선생은 삼베 외에도 목화에서 베를 짜는 무명이나 누에고치 실을 뽑아내는 명주 베 등 안 짜본 것이 없었다.   우수한 품질로 인정받은 곡성 돌실나이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해 삼베의 대명사로 불리는 돌실나이는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인간문화재 김점순 할머니와 그 제자들에 의해 제작기법이 고유명사가 되어 명맥을 유지했으며, 2008년 김점순 할머니의 별세로 현재 석곡면 죽산리의 양남숙 씨와 소수의 전수자에 의해 농포(4~5새), 중포(6~7새), 세포(9~12새)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곡성 돌실나이의 제작과정은 삼의 재배와 수확-껍질 벗기기-톱질작업-째기 작업-삼 삼기-베 날기-베 매기-도투마리 감기-베 짜기-세탁과 색 내기 단계를 거치게 된다. 삼은 초복 무렵인 7월초 다 자란 삼을 베어 잎을 제거한 뒤 삼대를 삼굿에 넣고 수증기로 쪄낸다. 쪄낸 삼대껍질을 벗겨 내어 그 줄기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줄에 말린다. 말린 삼을 상·중·하로 구분하고 짚을 태워 만든 양잿물에 담가 표백한다. 삼을 가늘게 찢어서 무릎 위에 놓고 가볍게 비벼가며 실을 만든다. 실과 실을 잇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광주리에 원형을 그리며 담는다. 물레로 자아내어 질긴 실이 되도록 한다. 베 한필 길이와 새의 수에 따라 날줄을 만들고 베매기를 한다. 베매기는 날줄을 바디(베의 날을 고르게 하는 도구)에 끼우고 바디쪽, 실끝을 도투마리에 메고 다른 끝은 긴싱개에 맨 다음, 적당한 습도 유지와 날실 표면에 생긴 잔털에 풀을 먹인 후 도투마리에 감는다. 날실이 가득 담긴 도투마리를 얹고 비로소 평직에 의한 베 짜기를 통해 한 올 한 올 짜여지는 돌실나이 세포(細布)가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습기의 공급이 부족하면 실이 끊어질 우려가 있어 과거 움집이나 습한 지역에 베틀방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원인이 기능 전수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길쌈을 하며 삶의 애환과 피로함을 달래고 능률을 올리기 위한 길쌈노래가 있는데, 이는 품앗이를 하는 공동 작업에 의한 공동체 정신의 표상이라 여겨진다. 최근 문화재청에서 중요무형문화재를 살리기 위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무형문화재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 활용가치를 인정받을 때 계승 발전될 수 있다는 문화 자각이 필요하다. 과거 생활 속에서 고유한 독자성을 지니며 그 시대 의류 제품의 다양성과 삼베의 질을 높여주었던 무형문화재로서의 전통기법과 가치성의 의미를 보존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양식의 문화 경향에 적합한 현대적 해석에 의한 디자인을 융합해 생활, 문화 속에서 곡성 돌실나이의 전통과 정신을 전해주어야 할 지속가능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삼베 관련이야기 삼나무에서 삼베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겨 불리던 것이 '길쌈노래'이다. 이 노래는 길쌈을 할 때 무료함을 달래고 피로를 덜어주면서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던 것으로 내용은 일정치 않으며 삶의 고달픔과 시집살이에 관한 애환을 풀면서 매우 소박함을 보여준다. 길쌈은 품앗이를 하는 공동작업으로 삼째기, 삼삼기, 물레 돌리기, 실것올리기, 베날기, 베메기, 베짜기 등 8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길쌈 노래는 1975년 제7회 남도문화제에 출품하여 최고상을 받은 바 있다. “(…)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 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넘 늦게 알 된 것일까 (…)”                   - 조용미 詩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중에서   고대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미 사용되어 왔고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예맥전(濊貊傳)]에도 마포의 생산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한시대에도 종마(種痲)가 있었다고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는 부여의 험한 산중에서 마포가 산출된다고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보편적으로 삼국이 다 마포를 생산하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산간지방에서 많이 산출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세마포의 직조기술이 더 발달되어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이때 마포 역시 문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상품정보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길쌈)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삼베는 ‘베’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마·마포·포 라고도 한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여 삼베의 대명사로 불렸다. 삼베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 조개더미에서 뼈로 만든 바늘에 실이 감겨 있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문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면의 재배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어들었다. 삼베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개는 과정을 거친 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잇는다. 그런 다음 베 한 필의 길이와 삼베에 따라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짠다.   오늘날 삼베의 폭은 30∼35㎝ 정도로 돌실나이가 9승, 안동포가 12승이 짜지고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섬세한 포가 된다. 예전에는 북포(함경도 육진), 강포(강원도), 영포(경상도), 안동포(경북 안동)가 유명하였으나 서양문물의 유입에 따라 가내수공업으로 전락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전라남도 곡성군의 삼베 짜기를 말한다. 석곡의 원래 이름이 ‘돌실’이며, ‘나이’는 길쌈을 뜻하는 말이다. 삼베는 전국적으로 생산되었으며, 길주(吉州), 명천(明川), 안동(安東) 등이 유명했다.   삼은 음력 삼월 하순에 파종하여 소서가 지나서 찐다. 냇가에서 삼솥에 넣어 삼을 찌고 냉수를 끼얹어 식혀서 삼껍질을 벗기고 상·하품(上·下品)을 골라서 따로 묶어둔다. 햇볕에 말린 삼껍질은 다시 물에 적셔 삼을 짼다. 짼 삼은 삼톱으로 훑어서 외피를 제거한다. 그런 다음 손톱으로 모시보다 굵게 다시 쪼개어 삼뿌리와 가지 끝을 서로 무릎에 대고 손으로 비벼서 잇는다. 이은 실은 채 또는 소쿠리에 둘레둘레 담았다가 이것을 다시 물에 적셔 물레에 걸어 자은 다음 돌곳에 올려 실컷(타래)을 만들어서 햇볕에 말린다. 실컷은 다시 물에 적셔 짚재에 버무려서 따뜻한 방에서 일주일 동안 띄운다. 띄운 실은 솥에 넣고 삶아낸 다음 깨끗이 빨아 2, 3일 동안 담가 놓는다. 이것을 잿물에 다시 삶아 햇볕에 말리면 희게 바래진다. 희게 바래진 실컷은 쌀뜨물에 치자물을 넣고 5∼6시간 담갔다가 건져내어 말린 다음 손으로 비벼 다시 말린다. 완전히 말린 실컷을 돌곳에 내려 실떡을 만든다. 실떡 1,800g(3근)이면 한 필을 짤 수 있다. 새와 날실의 길이를 결정하여 실을 마름질하는 과정을 베날기라 하며, 베날기가 끝난 실을 바디에 끼우고 베틀을 사용하여 베를 짠다. 베를 짜는 동안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삼베는 삼올의 굵기에 따라서 새가 정해진다.   가장 거친 상복용(喪服用)으로는 4새 두 번 걸이를 쓰고, 일을 할 때 입는 옷에는 5새 두 번 걸이, 5새 세 번 걸이 또는 6새를 사용한다. 7새만 되어도 고운편에 속한다. 최고 30새까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9새가 제일 촘촘한 편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 죽산리의 삼베 짜기. 내용 중요무형문화재 제32호. 석곡의 원래 이름이 ‘돌실’이어서 ‘돌실나이’라고 하며, 돌실은 ‘도실’이라고도 한다. 조사된 재배·수확·제직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재배와 수확 음력 3월 하순 한식 무렵에 파종한다. 삼의 키가 2∼2. 5m 자라난 소서(小暑) 후 베어 수확한다. 삼칼 또는 탈곡기로 삼잎을 훑어 단으로 묶는다. (2) 삼 껍질 벗기기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긴다. 삼굿은 냇가 가까운 곳에 삼단이 들어갈 구덩이를 파서 아궁이를 만들고, 물돌로 삼굿돌을 쌓아 만든 것이다. 삼굿의 바닥에 통나무를 깔고 벽에도 나무를 세운 다음, 그 사이에 삼단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어, 삼굿돌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흙을 덮고 물을 부어 김이 골을 통하여 들어가서 삼이 쪄지게 된다. 이 과정이 잘 되어야 좋은 삼이 얻어진다. 마을 공동 작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굿에서 꺼낸 삼피는 등급 지어 분리하여 즉시 껍질을 벗겨 단으로 묶는다. 벗긴 삼껍질의 단을 물에 담가 때를 빼고 햇볕에 말린다. (3) 삼 째기 삼 껍질 묶음을 물에 적셔서 왼손 엄지에 감아쥐고 오른손톱으로 끝을 쪼개어 손가락을 넣어 손바닥으로 훑어 끝까지 짼다. 짼 삼을 왼손에 모아 쥐고 도마에 얹어 삼톱으로 삼는다. (4) 삼 삼기 삼 째기에서 짼 삼을 등급별로 나누어 전지에 걸어놓고 한 올 한 올 빼어 짧은 실을 길게 잇는 과정이다. 삼 삼기는 삼의 한 끝을 가르고 갈라진 한 끝에 이을 삼의 끝을 나란히 붙여서 허벅다리 위에 놓고 침칠을 하여 비비고, 붙여진 두 올의 실 중 한 실 끝을 반대로 펴서 다시 비벼 실을 잇는다. 실 끝과 끝을 맞겹쳐 비벼서 잇기도 한다. 이은 실은 채 또는 소쿠리에 둘레둘레 담았다가 이것을 다시 물에 적셔 물레에 걸어 자아서 가연하여 돌꼇에 올려 실꼇(타래)을 만들어서 햇볕에 말린다. 실꼇은 다시 물에 적셔 짚재에 버무려서 35℃ 정도의 온도가 유지되는 방안에서 일주일간 띄운다. 띄운 실을 꺼내어 재를 털고 솥에 실꼇이 잠기게 물을 붓고 푹 삶는다. 삶은 실꼇을 냇가에서 방망이질하여 깨끗이 빨아 2, 3일간 물에 적시며 햇볕에 바랜 뒤 쌀뜨물에 담가 반나절을 두었다가 그대로 짜서 말려 돌꼇에 메워 내린다. 이 과정은 색을 곱게 내기 위한 과정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치자물을 들이기도 한다. 내린 실꼇은 다듬어서 고르게 하여 소쿠리 또는 채에 담아 실떡(삼떡)을 만들어 볏짚으로 열십자로 맨다. 실떡 3근이 한필거리이다. (5) 베날기 한 필의 길이와 삼베의 승수(升數)에 따라 고무래의 10개의 구멍을 통과하여 나온 베실을 모아 날틀과 겉틀을 사용하여 날실로 난다. (6) 베메기 베날기가 끝난 실을 바디에 끼운다. 바디쪽 실끝은 도투마리에 매고 다른 끝은 끄싱개에 매어 날실을 두리두리 끄싱게에 맨다. 도투마리와 끄싱개를 적당한 거리로 긴장시킨 다음, 도투마리쪽에 겻불을 뭉근하게 피우고 긴장시킨 날실에 껍질 채로 가루낸 모밀가루풀에 치자물을 타서 풀 먹이고 말려 도투마리에 감는다. 이 과정을 연속적으로 하여 날실이 도투마리에 다 감기면 끝난다. 날실이 우수와 기수 사이에 사침대를 넣어 날실끼리 붙지 않도록 하며 말려 감는다. (7) 베짜기 베틀로 베를 짠다. 도투마리를 베틀에 올리고 고랑의 잉아에 날실을 기수·우수 순으로 끼우고 바디에 끼워 홍두깨에 감아 매어 날실을 일정장력으로 긴장시키고 쇠꼬리끈을 발로 잡아당겨 개구한다. 그 다음, 오른손에 잡고 있던 북을 날실 사이의 북길에 투입하고 왼손으로 북을 받아, 북구멍에서 빠져 나온 씨실을 팽팽하게 하는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바딧집을 잡아당겨 씨실을 알맞게 쳐서 삼베를 짠다. 제직 중 습도를 적당히 조절하여야 한다. 오늘날 짜고 있는 삼베의 베폭은 약 30∼32㎝인데 넓어야 35㎝ 정도이다. 기능보유자는 김점순(金點順)이다.   말린 삼은 가는 실로 째서 무릎 위에 놓고 손으로 비벼 고른 실로 만들어 한 줄로 이으며 이 실을 물레로 자아서 질긴 실로 되게끔 한다. 다시 실것에 상하로 구분지어 올린 다음 잿물로 원색을 빼어낸다. 흰색으로 변한 삼베를 나른 후 치잣물로 베를 메고 이런 복잡한 작업을 통해 베틀에 올라가면 잘 짜는 사람은 새벽부터 시작하여 밤중까지 하루 1필(20자)를 짠다고 한다. 현재 전수관이 건립되어 돌실나이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양남숙씨와 몇몇 전수자가 그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삼나무에서 삼베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겨 불리워지던 것이 '길쌈노래'이다.   이 노래는 길쌈을 할 때 무료함을 달래고 피로를 덜어주면서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던 것으로 내용은 일정치 않으며 삶의 고달픔과 시집살이에 관한 애환을 풀면서 매우 소박함을 보여준다. 길쌈은 품앗이를 하는 공동작업으로 삼째기, 삼삼기, 물레돌리기, 실것올리기, 베날기, 베메기, 베짜기 등 8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길쌈 노래는 1975년 제7회 남도문화제에 출품하여 최고상을 받은 바 있다.   찾아가는길 광주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석곡IC를 빠져나와 석곡면 소재지를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석곡초등학교 너머에 자그마한 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 위치해 있다. 문의:362-3407 양남숙(석곡 죽산길)   관련근거 및 출처  중요무형문화재지정보고서,(문화재관리국), 구희경(한양여자대학교 섬유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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