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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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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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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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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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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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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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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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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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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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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녹용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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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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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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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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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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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
도마뱀
도미
도자기
돈육
돈차
돌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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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파전
동백기름
동충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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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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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마뿌리
만화석
막걸리
망둥어
매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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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
맨드라미
머루
머루주
메밀차
멸치
명란젓
명설차
명태
모과
모란
모래무지
모시
모자
목기
목화
무명
무우
문배주
문어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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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주
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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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
백랍
백련잎차
백렴
백미
백반
백부자
백조어
백하수오
백합
밴댕이
뱅어
벼루
병어
법주
보골지
보리
복령
복분자
복숭아
복어
부들
부자
부채
부추
붉나무
붕어
비빔밥
비자
뽕나무
사과
사슴
산나물
산삼
삼림욕
산수유
살구
삼릉
삼배
삼치
상합
상황버섯
새우
새우젓
생강
석결명
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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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
석이버섯
석청
석창포
소금
소라
소주
속새
송어
송이버섯
송화가루
수달
수박
수정
숙주
순채
숭어
승검초
식해
안동포
안식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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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콘
야콘잎차
약쑥
양귀비
어란
어리굴젓
어육장
엄나무
연밥
연어
연엽주
열목어
염전
엽삭젓
오가피
오미자
오곡
오골계
오정주
오죽
오징어
옥돔
옥로주
옹기
옻칠
왕골
용문석
우무
우황
울금
웅어
위어
유기
유자
유자차
유황
육포
은어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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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지
익모초
인삼
인삼주
잉어
자단향
자두
자라
자라돔
자연동
자하젓
작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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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풀
장아찌
전모
전복
전어
전어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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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조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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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어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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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첩선(白貼扇), 흰부채,백반 첩선,흑칠사첩선,칠첩선(漆貼扇)

    백첩선(白貼扇)은 부챗살과 부채 면에 아무런 장식이나 그림을 넣지 않은 흰 부채   진상품관련근거백첩선(白貼扇)은 경상도(진주,통영) 전라도(고산현(완주),곡성,광양,광주,구례,나주,남평,능주,무장,무주,순창,순천,옥과,옥구(군산시),용안,운봉,임피,장성,장수,전주(완주),창평,태인,흥덕)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여지도서에 기록되어있다.   성종 129권, 12년(1481 신축 / 명 성화(成化) 17년) 5월 16일(경인) 3번째기사 중국 사신과 만나서 여러 물품을 하사하고, 치사를 받다 아청 목면 단원령(雅靑木綿單圓領) 각각 1개, 초록주 겹답호(草綠紬裌褡胡) 각각 1개, 대홍주 남요선 겹철릭(大紅紬藍腰線裌帖裏) 각각 1개, 백저포 철릭[白紵布帖裏] 각각 1개, 백초 삼아(白綃衫兒) 각각 1개, 백초 단고(白綃單袴) 각각 1개, 백록피 협금 기자화(白鹿皮挾金起子靴)·전정 흑사피 투혜구(氈精黑斜皮套鞋具) 각각 1개, 흑초립(黑草笠) 각각 1개, 백첩선(白貼扇) 각각 30파(把), 안구마(鞍具馬) 각각 1필(匹)씩이었는데, 두 사신이 모두 꿇어앉아 받고 치사(致謝)하였다. 성종 156권, 14년(1483 계묘 / 명 성화(成化) 19년) 7월 2일(임진) 2번째기사  태평관에 거둥하여 하마연을 베풀다.두 사신이 몸소 어좌(御座)를 들어 북쪽 가까운 곳으로 옮겨놓고, 또 먼저 주정(酒停)13720) 에 가서 잔을 들고 말하기를, “청컨대 전하께서 정면하여 서소서. 우리가 마땅히 먼저 술을 바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여기는 공관(公館)인데,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겠소?”하자, 상사(上使)가 말하기를, “우리는 본토(本土)의 백성이므로 이 예(禮)를 행하려 하니, 원컨대 가엾이 여겨 주소서.” 하니, 임금이 마지못하여 그대로 따랐다. 상사가 먼저 쌍배(雙杯)를 바치고, 임금도 쌍배로 답하였으며, 부사(副使)도 그렇게 하였다. 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가 술을 돌릴 때에 상사가 ‘전하께서 먼저 받으소서.’라고 청하므로 임금이 사양하였으나, 두 사신이 굳이 청하므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두 사신이 일어나 중문(中門)까지 나와서 공경히 전송하였고, 임금이 도승지(都承旨) 이세좌(李世佐)에게 명하여 남아서 두 사신에게 인정(人情)13721) 을 주게 하였는데, 각각 아청 목면 원령(鴉靑木綿圓領) 1개, 초록주 겹탑호(草綠紬裌搭胡) 1개, 대홍주 남요선 겹철릭(大紅紬藍腰線裌帖裏) 1개, 백저포 철릭(白苧布帖裏) 1개, 백초 삼아(白綃衫兒) 1개, 백초 단고(白綃單袴) 1개, 흑초립(黑草笠) 1개, 백첩선(白疊扇) 30자루[柄], 안구마(案具馬) 1필(匹), 사장부 유석(四張付油席) 4장(張), 인삼(人蔘) 20근(斤), 호초(胡椒) 12근이고, 두목(頭目) 41인에게는 각각 유청주 단철릭(柳靑紬單帖裏) 1개, 흑초립 1개, 백첩선 5자루이었다. 선조 162권, 36년(1603 계묘 / 명 만력(萬曆) 31년) 5월 25일(경진) 4번째기사  예조에서 단오에 진상할 물품에 대해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를, “단오(端午)에 진상할 물건에 대해 호조에서 보내온 횡간(橫看)을 고찰해 보고 낱낱이 단자(單子)에 등서해 입계합니다. 지난해 5월 승전(承傅)한 내용에 ‘사의(蓑衣)를 봉진하는 도(道)가 있을 텐데 빠졌으니, 소급해 준비하여 봉진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었는데, 횡간 안에 사의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그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감히 아룁니다.”하니, 전교하기를, “평소에 사의 봉진을 어느어느 도가 했었는지 모르겠다. 각도에 물어보거나, 이에 대한 규정이 강무도(講武圖)에 있을 듯하니, 다시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리고 전라도의 백첩선(白疊扇)을 3년 동안은 3백 파(把)로 줄이고, 각도에서 봉진할 원래의 수효 중에서 절반은 올해의 예대로 백첩선 1파 대신에 유선(油扇) 2파를 봉진하게 하라.”하였다. 【양남(兩南) 감사의 장계에 ‘민간에서 백첩선 1파를 만드는 대나무의 값이 쌀 24∼25말이다.’고 하였으므로 이 분부가 있은 것이다. 】    공조에서 진상하는 단오진선의 숫자에 대해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財用篇)에는 대전(大殿)에 오십죽 백반 첩선(五十竹白斑貼扇) 한 자루, 사십죽 백반 첩선(四十竹白斑貼扇) 두 자루, 사십죽 백첩선(四十竹白貼扇) 백 자루, 식선(食扇) 두 자루이며, 중궁전에 오십죽 주반사 첩선(五十竹朱斑紗貼扇) 한 자루, 사십죽 백반 첩선 두 자루, 사십죽 백첩선 사십 자루, 식선 두 자루이다. 왕대비전에는 오십죽 주반사 첩선 한 자루, 사십죽 백반 첩선 두 자루, 사십죽 백첩선 팔십 자루, 식선 두 자루이며, 혜경궁(惠慶宮: 사도세자 빈 홍씨의 궁호, 정조의 어머니)에는 오십죽 주반사 첩선 한 자루, 사십죽 백반 첩선 두 자루, 사십죽 백첩선 팔십 자루, 식선(食扇) 두 자루이고, 가순궁(嘉順宮; 유빈 박씨의 궁호. 순조의 사친)에는 오십죽 주반사 첩선 한 자루, 사십죽 백반 첩선 두 자루, 사십죽 백첩선 오십 자루, 식선 두 자루로 기록되어 있다.   『만기요람』보다 늦은 고종 때 편찬된 『육전조례(六典條例)』 공전(工典) 진상(進上)의 단오진상에 “오십죽 백반 첩선은 각 전궁에 한 자루로 하되 내전에는 주반사 첩선, 순화궁(順和宮: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에는 흑칠사첩선(黑漆紗貼扇)으로 한다. 사십죽 백반 첩선은 각 궁전에 두 자루로 한다. 사십죽 백첩선은 대전에 백 자루, 자전에 각 팔십 자루, 중궁전 사십 자루, 순화궁에 열 자루로 한다. 식선은 각 전에 두 자루, 순화궁에 한 자루로 한다.”라는 기록이 있어 공조에서 각 궁에 진상하는 단오선의 숫자는 조선 초기부터 위의 기록과 동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왕이 하사한 부채 중에는 흰 댓살이 40개 내지 50개나 되는 매우 큰 것이 있는데, 이것은 백첩선(白貼扇)이라고 하며 옻칠을 한 부채는 칠첩선(漆貼扇)이라고 했다. 이것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흰 종이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그려 넣는다.≪통문관지 通文館志≫에는 조선시대에 우리 나라 사신 세 사람이 일본에 갔을 때에도 국교품으로서 부채를 가져갔다. 선물처와 수량을 적어보면, 대마도 관계로는 부채 215자루와 대첩선(大貼扇) 3자루, 대판(大阪)·경도(京都) 관계로는 부채 215자루, 에도(江戶 : 지금의 東京) 관계로는 부채 60자루, 백첩선(白貼扇) 8자루, 첩선(貼扇) 36자루이다.이와 같이 일본에도 상당한 수량의 부채가 우리 나라에서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 도쿠가와시대(德川時代)에는 우리 나라의 부채를 모방하여 만들었으니 그들의 ‘조선골선(朝鮮骨扇)’이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조 162권, 36년(1603 계묘 / 명 만력(萬曆) 31년) 5월 25일(경진) 4번째기사 예조에서 단오에 진상할 물품에 대해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를, “단오(端午)에 진상할 물건에 대해 호조에서 보내온 횡간(橫看)을 고찰해 보고 낱낱이 단자(單子)에 등서해 입계합니다. 지난해 5월 승전(承傅)한 내용에 ‘사의(蓑衣)를 봉진하는 도(道)가 있을 텐데 빠졌으니, 소급해 준비하여 봉진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었는데, 횡간 안에 사의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그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감히 아룁니다.”하니, 전교하기를, “평소에 사의 봉진을 어느어느 도가 했었는지 모르겠다. 각도에 물어보거나, 이에 대한 규정이 강무도(講武圖)에 있을 듯하니, 다시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리고 전라도의 백첩선(白疊扇)을 3년 동안은 3백 파(把)로 줄이고, 각도에서 봉진할 원래의 수효 중에서 절반은 올해의 예대로 백첩선 1파 대신에 유선(油扇) 2파를 봉진하게 하라.” 성종 129권, 12년(1481 신축 / 명 성화(成化) 17년) 5월 16일(경인) 3번째기사 중국 사신과 만나서 여러 물품을 하사하고, 치사를 받다 아청 목면 단원령(雅靑木綿單圓領) 각각 1개, 초록주 겹답호(草綠紬裌褡胡) 각각 1개, 대홍주 남요선 겹철릭(大紅紬藍腰線裌帖裏) 각각 1개, 백저포 철릭[白紵布帖裏] 각각 1개, 백초 삼아(白綃衫兒) 각각 1개, 백초 단고(白綃單袴) 각각 1개, 백록피 협금 기자화(白鹿皮挾金起子靴)·전정 흑사피 투혜구(氈精黑斜皮套鞋具) 각각 1개, 흑초립(黑草笠) 각각 1개, 백첩선(白貼扇) 각각 30파(把), 안구마(鞍具馬) 각각 1필(匹)씩이었는데, 두 사신이 모두 꿇어앉아 받고 치사(致謝)하였다. 중종 92권, 35년(1540 경자 / 명 가정(嘉靖) 19년) 1월 20일(계축) 2번째기사 중국 사신에게 보낼 물품을 전하다 전교하기를, “화(華)·설(薛) 두 중국 사신에게는 각각 벼루 2면(面), 여섯 폭 유석(油席) 3장(張), 견면지(繭綿紙) 60장, 백첩선(白貼扇) 50파(把), 입모(乏帽) 30매(枚)를 보내라. 공 사신(龔使臣)에게는 큰 벼루 3면, 여섯 폭 유석 3장, 견면지 1백장, 백첩선 1백파, 입모 50매를 보내라. 화 사신에게 따로 소세양(蘇世讓)이 회봉(回奉)19257) 할 벼루가 있기 때문에 앞서 정한 숫자에서 1면을 감한 것이다.”하고, 또 전교하였다. 참고문헌여지도서, 조선왕도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 군위범부채, 사간, 붓꽃, 경상도(예천, 군위)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여지도서에 기록되어있다.

    군위 범부채, 사간 범부채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의 산과 들판을 비롯해서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흔하게 자주 볼 수 있는 풀은 아니다. 범부채는 꽃에 호랑이무늬 같은 반점이 있고, 잎이 부채를 펼쳐 놓은 것처럼 생겨서 범부채라고 부르는데 요즘은 관상용으로 재배하고, 그 뿌리줄기는 사간(射干)이라 부르는 한약재로 사용하고 있다. 범부채의 학명은 Belamcanda chinensis이다. 진상품관련근거 사간(射干)은 경상도(예천, 군위)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여지도서에 기록되어있다.   범부채, 사간 의 특성 범부채의 키 높이는 50∼100cm에 이르고, 뿌리줄기는 짧고 굵게 옆으로 뻗고 줄기는 곧게 서며 윗부분에서 가지를 낸다. 잎은 칼 모양이며 좌우로 납작하고 녹색 바탕에 약간 흰빛을 띠는데, 잎의 길이가 30∼50cm, 나비가 2∼4cm정도 된다. 7월에서 8월에 걸쳐 노란빛을 띤 빨간색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는 꽃을 피운다. 열매는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으로 9월에서 10월에 익으며, 검은 빛의 공모양이다.   사간, 범부채의 성분 뿌리줄기 속에 벨람칸딘(Belamcandin)이라는 배당체와 이리딘, 텍토리딘, 텍토리제닌이라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고, 꽃과 잎에는 마그니페린이 들어 있으며, 특수한 향기가 나고 매운맛을 지니고 있다.   사간, 범부채의 약리작용 사간은 항미생물작용과 타액분비촉진작용을 한다. 사간 달인물은 시험관내에서 피부 사상균에 대해 억제작용이 있고, 독감과 인후질환을 일으키는 몇가지 바이러스에 대해 억제나 지연작용을 한다. 또한 사간의 물추출물은 토끼의 침분비를 촉진하는데 택토리딘이 이런 작용을 하며, 여성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하기도 한다. 아래 사진은 한약재로 사용하는 범부채의 뿌리다.   사간, 범부채의 효능 사간은 몸속의 화(火)를 내리고 뭉친 피를 흩어주고 가래를 삭이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목구멍이 붓고 아플 때나 가래가 심하면서 기침을 할 때, 편도선염, 생리불순, 입에서 냄새가 날 때, 악성종기에도 사용한다.    사간, 범부채의 부작용 사간은 성질이 차고 어혈을 풀어주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이나 맥이 약한 사람, 몸에 열이 없는 사람,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 임신부는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본초강목]에서는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간, 범부채 사용시의 주의사항 사간은 한번에 2그램에서 4그램을 달여서 복용하거나 가루약 형태로 먹고, 신선한 것을 짓찧어서 즙을 먹기도 한다. 인후통이나 피부염에는 가루내어 불어 넣거나 개어서 붙이기도 한다. 다만 이 약은 오랫동안 먹는 약은 아니며, 만약 장복하면 몸이 허약해지게 된다. 아래 사진은 [동의보감] 탕액편의 사간 항목이다.                                              출처 및 관련문헌: 김달래 한의원 체질박사, 동의보감, 본초강목,   

  • 전주부채 전주합죽선, 태극선(太極扇), 단오진상(端午進上), 승두선(僧頭扇, 단오진선(端午進扇)

    전주부채전라북도 전주시 의 토산품으로 생산되는 부채부채살에 종이 또는 깁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로 합죽선은 수예품으로 전수되어오고 있는데 40개로 된 부챗살을 만드는 골선방, 합죽한 부채에 인두로 무늬를 새겨 넣는 낙죽방, 때를 빼내고 빛이 나게 하는 광방, 선지에 산수나 화조를 그려넣는 그림방, 부채에 선지를 바르는 도배방, 부채의 목을 묶는 사북방 등의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합죽선은 양반의 장신구로 사용되어왔으며 합죽선을 들지 않으면 양반축에 들지 못하고 합죽선 뒤에 그려진 시화(詩畫畵)의 그윽한 묵향을 음미하지 못하였다고 한다.단오 때 진상되었던 전주의 태극선(太極扇)은 대나무와 태극무늬의 비단헝겊, 사북장식 등을 재료로 사용하며 일곱가지 공정을 거친다.대나무를 일정한 굵기로 쪼개어 납작하게 만드는 절죽작업, 선지 위에 풀을 칠한 뒤 살을 알맞게 배열하는 살놓기, 살 위에 풀칠을 한 뒤 선지와 살을 밀착시키기, 태극선 문양을 선면에 붙이기, 선면을 부채의 형태대로 재단하는 과정 등을 거쳐 태극선이 완성되는데 합죽선과 태극선은 전주의 상징적인 대명사이다.특히 조선시대에는 전주감영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진공용 부채를 생산, 관리하였다. 한편, 부채는 우리 민족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사용되고 발전되어 왔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에어콘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였다.일반적으로 접부채가 단죽을 이용한 것이라면 합죽선은 겉대를 합하여 만들었기에 ‘합죽선’이라고 한다. 접부채는 접선(摺扇)이라고 하며, 그 기원을 고려에 두는 설과 일본에 두는 두 설이 있다.고려 기원설의 증거로는 조선시대 헌종 때 성명 미상의 학자가 필사본으로 남긴 재물보 才物譜에서 접선은 시출고려(始出高麗)라 하여 고려시대의 발명품이라 한 구절이다. 청나라의 대학자인 조익(趙翼)도 접선은 고려로부터 조공이 들어와 영락연간(永樂年間)에 황제가 이를 모방하여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또 그 위에 격언을 써서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민간에 퍼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일본 기원설로는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熱河日記≫에 “우리 나라의 기물로서 일본의 것을 모방한 것이 많은데, 접는 부채도 고려는 일본에서 배웠고 중국은 고려에서 배워갔다.”는 내용이 있다.열하일기에 의하면 접선이 일본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중국으로 전파된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더 정확한 전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부채의 사치는 부챗살을 모아 고정시키는 사북을 금이나 은으로 만들면서 시작되었다.세종 때에 왕이 공조에 명하여 단오진상(端午進上)의 접부채에 금·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잘 이행되지 않은 듯하다. 성종 때에 부채의 가격이 면포 8, 9동의 값에 이른다는 기사가 있다.이와 같은 부채는 상부관청에 대한 중요한 증여품목이 되었고, 따라서 대밭을 가진 백성들에게 공출을 강요하는 폐단을 낳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을 분기점으로 한 조선 후기부터 부채는 점점 대형화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다.영조 때에 유행한 승두선(僧頭扇)은 길이 1척 정도의 살에 옻칠을 하고 두꺼운 종이를 붙여 파란선으로 장식한 사치스럽고 견고한 부채였다. 승두선이라는 명칭은 군안, 즉 부채의 목 아래 부분이 중의 머리같이 둥글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수요의 증가와 함께 합죽선과 같은 재료가 많이 드는 새로운 형태의 부채가 생산되면서 산지에서는 대밭이 고갈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정조 때의 암행어사 서유문(徐有聞)은 전라남도 고흥의 단오진선(端午進扇)에 따른 대밭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부챗살의 수가 많고 과다하게 큰 부채, 변죽에 각을 댄 것, 부챗살을 합죽한 것, 선면에 칠한 것 등은 일체 엄금하고 선제(扇制)는 견박하게만 하자고 하였다.이에 동조한 좌의정 김이소(金履素)는 부챗살의 수는 20, 길이는 6, 7촌을 넘지 못하게 하여 1795년부터 시중에서 매매되는 것을 적발하는 대로 엄벌하기로 하였다.이러한 의결이 있은 직후인 1805년대 당시 전라감사였던 심상규(沈象奎)도 길이 5, 6촌 정도의 소선(小扇)을 만들어, 사람들은 이 부채를 심선(沈扇)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으며 일시 유행하였다.그러나 부챗살의 수 50, 길이 1척 이상의 대형부채들은 오십죽별선(五十竹別扇)이라는 명칭하에 여전히 만들어져 공납에 충당되어 특수층에 전용되었다. 접부채는 재료와 형태에 따라서 명칭이 여러 가지로 불린다. 즉, 소선(素扇)·반죽선(斑竹扇)·내각선(內角扇)·외각선·화각선·화초선·승두선·용두선·유지선(油紙扇) 등이 다 접부채인데, 재료와 형태·빛깔에 따라 달리 불리고 있을 뿐이다.합죽선의 유래와 역사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의창군 다호리 고분에서 출토되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부채가 있는데, 이는 서기 3세기경의 가야 권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벽화에서도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이러한 유물과 변화의 그림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우리선조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부채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합죽선은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도화견문지에는 “고려에서 들어오는 접첩선을 사용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의 접첩선은 쥘부채의 일종인 합죽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123년에 송나라 서긍이 고려에 와서 보고들은 바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고려도경”에는“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하는 신기한 것이다” 고 감탄한 내용이 있다. 이로써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뿐만이 아닌 여러 용도로 쓰였음을 알수 있다.   부챗살에 종이를 붙여 접었다 펴서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우리 고유의 합죽선은 당시 중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부채를 만드는 솜씨는 더욱 발달하였는데, 고유의 쥘부채와 방구부채는 외국과의 주요 교역 품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10년4월에 왕은 명나라 사신에게 쥘부채 100자루를 주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통문관지”에 따르면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신이 일본에 갔을 때 국교품으로 부채를 상당수량 가져가 전달하였다. 조선시대의 부채는 단순히 생활용품에서 나아가 의례용품이나 예술품으로 발전하였다. 광복이후 오늘날에는 전라북도 전주에서만 합죽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부채』(임동권, 국립민속박물관, 1983),「부채의 기원과 변천」(金三代子, 『미술자료』 36, 1985),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10호 선자장 김동식

  • 거창부채 단오선, 우리 나라 부채는 국교품(國交品)으로서 일찍이 사절편에 중국을 비롯하여 몽고·일본 등 여러 나라에 진출되었다.

    거창부채 단오선   부채를 하사하는 연원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명나라 사람 이후(李詡)가 쓴계암만필(戒菴漫筆)에 “단오에 임금이 서울 관리들에게 궁중 부채를 하사하는데, 그 부채는 댓살에 종이를 바르고 새나 짐승을 그리며, 오색 천으로 애호(艾虎)를 감는다. 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서울의 옛 풍속에 “단오의 부채는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주고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친다. 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공조(工曹)에서 부채를 만들어 바치면 임금은 이것을 각 궁(宮)에 속한 재상과 시종들에게 하사했다.조선왕조실록에는 단오진선(端午進扇)과 단오사선(端午賜扇)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단오진선이란 주로 단오날 왕이 하사하기 위하여 부채의 명산지인 경상도와 전라도의 방백(方伯)들에게 명하여 궁중에 바치는 부채를 말한다. 광해군 8년 5월에 왕이 명하여 단오진선의 유선(油扇)을 경상도·전라도의 감사에게 올리게 하였다. 단오사선이란 단오날 궁중에서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부채를 말한다. 선조 37년 5월 단오절에 승정원(承政院)·홍문관(弘文館)·실록교정청(實錄校正廳)의 관원들에게 주찬(酒饌)과 부채를 하사했으며, 인조 15년 5월에는 왕이 안주(安州)의 군병들에게 부채 370자루를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나무 생산지인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사와 통제사는 임금에게 명절 부채를 진상하고 예절에 따라 조정의 대신들과 친척, 친우들에게 선사한다. 부채를 만드는 고을의 수령들도 역시 임금에게 진상하고 친우들에게 선사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왕이 하사한 부채 중에는 흰 댓살이 40개 내지 50개나 되는 매우 큰 것이 있는데, 이것은 백첩선(白貼扇)이라고 하며 옷칠을 한 부채는 칠첩선(漆貼扇)이라고 했다. 이것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흰 종이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그려 넣는다.   부채(夫菜)는 경기도 에서 대전, 왕대비전, 혜경궁, 중궁전, 세자궁에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공선정례에 기록되어있다.   우리 나라에는 10세기(고려 초)에 이미 부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공작선을 보냈다는 이 기록은 고려사에도 보인다. 공작선은 남방의 여러 나라에서도 공작의 깃으로 둥근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견훤이 하례품으로 주었던 공작선도 둥근 부채(방구부채)였다고 보인다.    접는 부채(접부채)가 우리 나라에 있은 기록은 송나라 사람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 圖畫見聞志에 고려사신 최사훈(崔思訓)이 1076년 신종 희녕 병진년(문종 30)에 접는 부채[摺疊扇]를 사용하였다고 한 것을 보아, 접는부채가 11세기 중엽에는 우리 나라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들로 볼 때 방구 부채는 중국이 그 역사가 오래고, 접는 부채는 일본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접는 부채는 일본 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우리 나라 사람이 그를 모방하여 우리의 재료로써 우리 식대로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나라 부채는 국교품(國交品)으로서 일찍이 사절편에 중국을 비롯하여 몽고·일본 등 여러 나라에 진출되었다. 이에 대하여서는 고려사,고려도경 高麗圖經,조선왕조실록,임하필기林下筆記,열하일기, 오주연문장전산고,지봉유설,주영편 晝永編,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 계림지 鷄林志등에 보인다. 또 화계 畫繼,춘풍당수필 春風堂隨筆,남산묵담 南山墨談,장해동집 張海東集 등 여러 문헌에도 보인다. 고려사에는 1232년(고종 19) 4월에 상장군 조숙창(趙叔昌) 등을 원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을 때, 헌물(獻物) 중에 화입선(畫入扇)을 보낸 일이 있다. 장해동집에 의하면 중국에는 옛날에 접부채가 없었다 하였다. 유원경(劉元卿)의 현혁편 賢奕編에는 접부채는 일명 살선(撒扇)이라고 하니, 살선은 영락연간에 조선국이 살선을 진상한 데서 비롯되었다. 봉창속록 蓬窓續錄에는 접부채를 영락연간에 조선에서 진상하므로 나라 안에 성히 사용되었다 한다. 이러한 기록은 명나라 사람 육심(陸深)의 춘풍당수필과 방이지(方以智)의 통아 通雅등에도 보인다. 청나라 사람 고사기(高士奇)의 천록식여 天祿識餘에는 청나라 때에 와서는 우리 나라의 접부채가 크게 유행되어 중국의 방구 부채[團扇]는 그 당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10년 4월에 왕은 명나라 사신에게 흰 접부채 100자루를 주었고, 세종 2년 4월에도 명나라 사신에게 흰 접부채 100자루를 주었다고 한다. 세종 8년 5월에는 명나라 사신이 부채를 구하므로 왕은 방구부채 10자루, 접부채 88자루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또 단종 즉위년(1452) 11월에 명나라 사신 김유(金宥)에게 접부채 50자루를 회사품(回賜品)으로 보냈고, 세조 14년 4월에는 왕이 명나라 사신에게 접부채 103자루와 깃부채[羽扇]를 주었다. 광해군 14년(1622) 4월에도 명나라 사신 및 수행원들에게 흰 부채[白扇] 224자루, 기름먹인 부채[油扇] 1,830자루와 흰 부채 1,800자루, 기름먹인 부채 9,000자루를 여러 차례에 걸쳐 증답(贈答)의 명목으로 보냈다는 것이 보인다. 특히 우리 나라 접부채는 중국 송나라 때부터 비롯하여 원·명·청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국교품으로서 많은 수량이 진출되었다. 통문관지 通文館志에는 조선시대에 우리 나라 사신 세 사람이 일본에 갔을 때에도 국교품으로서 부채를 가져갔다. 선물처와 수량을 적어보면, 대마도 관계로는 부채 215자루와 대첩선(大貼扇) 3자루, 대판(大阪)·경도(京都) 관계로는 부채 215자루, 에도(江戶 : 지금의 東京) 관계로는 부채 60자루, 백첩선(白貼扇) 8자루, 첩선(貼扇) 36자루이다.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3년(1421) 7월에 부채 20자루가 다이라노(平滿景)로부터, 1426년에는 접부채100자루가 이시시로관사(石城管事) 쇼카네(宗金)로부터 세종에게 보내왔다. 1434년에는 갑선(匣扇) 1백자루가 아시카가(足利義敎)로부터, 1440년 12월에는 채화선(彩花扇) 100자루를 역시 아시카가가 세종에게 보내왔고, 성종 5년(1474)에는 부채 100자루를 아시카가(足利義政)가, 1475년 8월에는 부채 1백자루가 아시카가(足利義尙)로부터 성종에게 보내왔다. 선조 40년(1607)에는 부채 100자루가 도쿠가와(德川秀忠)로부터 선조에게 보내왔다. 그리고 인조 14년(1636) 3월에는 금은선(金銀扇) 200자루를 일본의 봉행(奉行)으로부터 조선 사신에게 보내왔다. 또,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10년 윤4월조에는 왜선(倭扇) 400자루를 전라도로부터 봉진(封進)하게 하였다는 기사도 보인다. 이와 같이 일본 부채 또한 상당한 수량이 우리 나라에 들어왔던 것이다.   진상품 관련이야기 •㉠군기를 강화부의 별고에 저장하고 나서 유수에게 하유하기를, “…단오선 1천 병…목환자 1만 개 등을 신축년 별치조의 명목으로 특별히 차정한 별군직 신응주가 표신을 받들고 겸하여 물건을 영수해 내려가니, 경은 숫자를 대조하여 영수하고, 별군직과 입회하여 별고에 저장한 다음 그 형지를 장계로 아뢰라.” 하였다. ; 藏儲軍器于江華府別庫 諭留守曰…端午扇一千柄…木槵子一萬箇等 名以辛丑別置條 別定別軍職申應周奉標信 兼領物件下去 卿其照數領受 與別軍職眼同 藏于別庫後 形止狀聞 [정조실록 권제12, 78장 앞쪽~뒤쪽, 정조 5년 12월 19일(정해)] ㉡공조에서는 단오부채를 만들어 진상한다. 그러면 임금은 그 부채를 각 궁가와 재상, 시종신들에게 나누어 준다. 부채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대나무로 만든 살의 폭이 화살 크기만 한데, 40개 내지 50개나 된다. 이것을 백첩이라 하고, 옻칠을 한 것을 칠첩이라 한다. 이 부채를 받은 사람은 대부분 부채에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그림을 그리며, 혹은 기생이나 무녀들이 갖는 부채에는 근래의 풍속에 복사꽃•연꽃•나비꽃•은어•백로 등의 그림들을 즐겨 그렸다. ; 工曹造進端午扇 頒于宮掖宰執侍從 扇之絶大者 竹幅白矢滿五十四十 名曰白貼着漆者名曰漆貼 得此者 多畫金剛一萬二千峯 或爲倡巫所把 近俗喜寫折技桃花芙蓉 蝴蝶銀鯽鷺鶿 [동국세시기 5월 단오]   상품정보   단오선 한자: 端午扇 분야: 생활/민속·인류 성격: 부채 재질: 종이|대나무|칠(漆)|구슬 용도: 단오날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한 물품 부채는 축재 또는 뇌물로서도 효용이 컸다. 성종 24년 10월 대사헌 허침이 임금에게 사치를 경계토록 하는 상주에 “부채 값이 무명 8~9동에 이르고 있다.”라는 대목이 있다. 무명 1동이 50필이므로 400~500필이나 되는 고가의 부채가 있었다는 것이다.수령이나 무관 등은 반드시 부채를 휴대했는데 이는 더위를 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가락 대신 지시, 지휘하기 위한 도구였다. 부채를 내리침으로써 응징 또는 견책을 표하고, 접었다 폈다 함으로써 아랫사람에게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즉위하자, 견훤이 하신(賀臣 : 축하의 뜻을 전하는 신하)을 보내 축하하고 왕 3년에는 공작선을 바쳤다. 이는 견훤이 고려 태조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부챗살은 10골에서 60골까지 다양하다. 단옷날을 앞두고 임금에게 부채가 진상되면 임금은 그 부채를 신하들에게 하사했는데, 벼슬의 품수에 따라 부챗살의 골수를 맞추어 냈다. 따라서 부챗살이 촘촘하고 성긴 정도로 벼슬과 신분을 어림할 수 있었다.   정선 「도서여가」의 일부한 선비가 부채를 들고 마루에 앉아 꽃을 보고 있다. 부챗살의 골수뿐 아니라 부채 끝에 다는 패물로도 신분을 식별했다. 비취나 호박, 서각(犀角) 등을 단 것은 품수가 높고, 옥이나 쇠뿔이면 중간, 쇠붙이면 낮은 신분이었다. 또 3품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하사하는 부채에는 내의원에서 만든 옥주단에 구멍을 뚫어 다는데, 가지고 다니다가 복통이나 곽란 등이 생기면 이 선초(扇貂)의 옥주단을 긁어 타 마심으로써 응급 처치를 하였다.민요에 “가을에 곡식 팔아 첩을 사고 오뉴월이 되니 첩을 팔아 부채 산다.”라는 가사가 있다. 여름에는 무엇보다 부채가 제일임을 표현한 것이다.   부체의 변천과정 임하필기 각양선자조(各樣扇子條)에는 영조 때의 부채 가운데에 승두선(僧頭扇)이라는 부채가 있었는데, 대개 그 살에 옻칠을 하고 두꺼운 종이로 붙인 뒤 파란 줄로 선을 둘렀으며, 길이가 한자 남짓하며, 그 모양이 사치스럽고도 견고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부채도 시속에 따라 그 모양이 새로 만들어지고, 얼마간 계속되다가는 폐하여 없어지고 하여, 변천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 공전(工典)에 의하면 경공장(京工匠)에는 첩선장(貼扇匠) 네 사람, 전라도에는 선자장(扇子匠) 두 사람, 경상도에는 선자장 여섯 사람을 두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전라도에서보다 경상도에서 부채 만드는 일이 성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부채는 그 외양이나 품질에 있어서 전라도의 남평과 전주에서 나오는 것을 제일로 쳐주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팔로이병(八路利病) 변증설 중에는 감영과 병영에서 만든 부채 외에 남평의 부채를 제일로 친다 하였고, 동국세시기 5월 단오조에도 전주와 남평에서 만든 것이 가장 좋다 하였다. 그러므로 그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어, 오늘날에도 그 지방에서는 적지않은 부채가 생산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그 품질에 있어서는 예전 것만 못하다. 동국선제변증설 東國扇制辨證說에는 선추는 중국 송나라 때부터 전하여 내려온 것이라 하였다. 명나라 사람 사조제(謝肇淛)의 오잡조 五雜俎에는 선추가 당대(唐代) 이전부터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송나라 고종이 신하들과 더불어 잔치할 때 장순왕(張循王)의 부채를 보았는데 그 부채에 선추가 있었다 하여, 송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2년 2월조에는 왕은 공조에 명하여 이제부터는 단오진상의 접부채에는 금·은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 기사가 있다. 이는 부채고리 또는 선추에 사용되는 금·은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성종 24년 10월조에는 당시 부채 한 자루 값이 목면 400필이라 하였으니 부채가 대단한 사치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부채 자체의 값보다도 그 부채에 달린 선추의 장식품값에서 기인되었던 것이다. 그 장식에 금·은·주옥 등을 사용하여 실용품 또는 기완품(奇玩品)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축재의 뜻을 가졌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당시 선추가 발달되었던 까닭은 이러한 데 있었던 것 같다.   관련근거 및 출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홍석모 지음, 정승모 풀어씀, 풀빛, 2009),『한국 부채의 연구』(최상수한국기념도서출판협회,1972),한국민속대백과,두산백과, (한국고전용어사전,2001.3.30,세종대왕기념사업회),『계암만필(戒菴漫筆)』『조선왕조실록』『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공선정례,≪고려사≫ ≪도화견문지 圖畫見聞志≫≪고려사≫ ≪장해동집≫ ≪현혁편 賢奕編≫.≪봉창속록 蓬窓續錄≫ ≪춘풍당수필≫ ≪천록식여 天祿識餘≫ ≪조선왕조실록≫≪통문관지 通文館志≫

  • 예천 범부채, 사간(射干)은 경상도(예천, 군위)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여지도서에 기록되어있다

    예천 범부채, 사간 사간(射干)은 경상도(예천, 군위)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여지도서에 기록되어있다. 범부채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의 산과 들판을 비롯해서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흔하게 자주 볼 수 있는 풀은 아니다. 범부채는 꽃에 호랑이무늬 같은 반점이 있고, 잎이 부채를 펼쳐 놓은 것처럼 생겨서 범부채라고 부르는데 요즘은 관상용으로 재배하고, 그 뿌리줄기는 사간(射干)이라 부르는 한약재로 사용하고 있다. 범부채의 학명은 Belamcanda chinensis이다.   범부채, 사간 의 특성 범부채의 키 높이는 50∼100cm에 이르고, 뿌리줄기는 짧고 굵게 옆으로 뻗고 줄기는 곧게 서며 윗부분에서 가지를 낸다. 잎은 칼 모양이며 좌우로 납작하고 녹색 바탕에 약간 흰빛을 띠는데, 잎의 길이가 30∼50cm, 나비가 2∼4cm정도 된다. 7월에서 8월에 걸쳐 노란빛을 띤 빨간색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는 꽃을 피운다. 열매는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으로 9월에서 10월에 익으며, 검은 빛의 공모양이다.   사간, 범부채의 성분 뿌리줄기 속에 벨람칸딘(Belamcandin)이라는 배당체와 이리딘, 텍토리딘, 텍토리제닌이라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고, 꽃과 잎에는 마그니페린이 들어 있으며, 특수한 향기가 나고 매운맛을 지니고 있다.   사간, 범부채의 약리작용 사간은 항미생물작용과 타액분비촉진작용을 한다. 사간 달인물은 시험관내에서 피부 사상균에 대해 억제작용이 있고, 독감과 인후질환을 일으키는 몇가지 바이러스에 대해 억제나 지연작용을 한다. 또한 사간의 물추출물은 토끼의 침분비를 촉진하는데 택토리딘이 이런 작용을 하며, 여성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하기도 한다. 아래 사진은 한약재로 사용하는 범부채의 뿌리다.   사간, 범부채의 효능 사간은 몸속의 화(火)를 내리고 뭉친 피를 흩어주고 가래를 삭이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목구멍이 붓고 아플 때나 가래가 심하면서 기침을 할 때, 편도선염, 생리불순, 입에서 냄새가 날 때, 악성종기에도 사용한다.    사간, 범부채의 부작용 사간은 성질이 차고 어혈을 풀어주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이나 맥이 약한 사람, 몸에 열이 없는 사람,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 임신부는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본초강목]에서는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간, 범부채 사용시의 주의사항 사간은 한번에 2그램에서 4그램을 달여서 복용하거나 가루약 형태로 먹고, 신선한 것을 짓찧어서 즙을 먹기도 한다. 인후통이나 피부염에는 가루내어 불어 넣거나 개어서 붙이기도 한다. 다만 이 약은 오랫동안 먹는 약은 아니며, 만약 장복하면 몸이 허약해지게 된다. 아래 사진은 [동의보감] 탕액편의 사간 항목이다.   출처 및 관련문헌 : 김달래 한의원 체질박사, 동의보감, 본초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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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간, 범부채(붓꽃과)

    부채(붓꽃과) 이 사간은 한방에서 중요시하는 한약재의 하나로 지금부터 1천8백여 년 전에 쓰인 신농본초경에도 올라있다. 인후염이나 후두염 또는 기타 해열이 요구될 때 이것을 쓴다. 여자의 유방암에도 사용한다 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학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약용식물로서 신농씨의 전설이 기록된 신농본초경에 처음으로 언급 되었다. 한방에서는 이것의 근경(根莖)을 사간(射干)이라고 한다. 잎모양이 마치 새 날개를 펴놓은 것 과 같아서 오선(烏扇)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에 보낸 제수잇 선교단이 이 씨를 가지고 가 1730년대에 유럽에 전했으며 18세기에 린네가 Ixia chinensis라고 식물학적으로 처음 분류하였다. 그리고 1802년에 현재의 학명인 Belamcanda chinensis로 분류, 명명되었으며 영국에는 1759년에, 미국에는 1825년에 전해졌다. 이것은 해열․항박테리아․항진균․항바이러스 효과를 갖고 있다. 신농씨에 의하면 후두암 이나 편도선 염 치료에도 쓰였다. 농부들이 논밭에서 일할 때 간혹 피부병을 일으키는 독이 있는 풀이며 임신 중에 는 사용하지 않는다. 산과 들에 나며 7~8월 황적색의 6판화가 핀다. 씨는 검으며 딸기처럼 생겼다. 근경은 인후염이나 편 도선염에 사용하며 완화제로도 쓰인다. 맛은 쓰지만 성질은 평온하고 독이 약간 있다. 목구멍이 아파 서 음식물을 잘 넘기지 못하는 것을 낫게 해주며 말을 할 때 냄새가 나는 것을 낫게 하고 멍울이 진 것 을 삭여준다. 뿌리에는 잔털이 많으며 껍질은 청흑색이다. 둥근 여섯잎의 꽃잎에 호랑이 얼룩무늬가 있고 잎이 부채처럼 넓어서 범부채라는 이름이 붙여졌으 며 키가 0.5~1m 가량으로 자란다. 사간(射干)이라는 말은 방패라는 뜻. 그러니까 꽃잎이 마치 방패처 럼 생긴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뿌리를 캐어 햇볕에 말렸다가 쌀뜨물에 담갔다가 쓴다. 뿌리와 줄기는 소염 및 해열작용이 있으며 기 타 폐염에도 사용하고 해열작용도 있다. 그러나 사용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로서는 아마츄어적인 사 용은 하지 말아야 한다. 붓꽃과인 만큼 이파리는 마치 붓꽃과 거의 똑같이 생겼으며, 뿌리는 황백색이다. 뿌리를 캐어 말린 뒤 잘게 썰어 한약재로 사용한다. 9~10월에 마치 벽오동 씨앗만한 크기의 열매가 열린다. 다 익으면 까맣게 변한다.  

  • 식물의효능 51~60 약용 및 약재 (부들,범부채,석류나무,반하,모란,쇠비름,납가세,으름덩쿨,꼭두서니,승검초)

      ...월경)포항 7g-10g을 ㅁ불에 달여 마시면 된다. 52 사간 범부채   -별이 보이거나 침침한 안질에 말린씨 1알을 1회분으로 잘 달여눈을 씻거나 먹으면 눈에 별이 생기는 것이 없어진다고 한다. 백내장 증세 초기예방, 목구멍이 부었을 때 통증, 편도선염. 53 석류근피 석류나무   -기생충 제거 54 반하 반하 끼무릇 -구투, 진정, 진통제, 설사 *독성이 있다. 55 목단피 모란 부귀화 -경련을 멈추는 진통 약 56 마치현 쇠비름 씨엄씨풀 -입술이 터졌을 때 달인즙으로 씻고 유종, 소아 습진에는 생즙을 바르면 좋다. 벌어나 지네에 물렸을 때 짠즙을 바르면 부기와 통증이 없어지는 등 외용으로 쓴다. 57 자, 질러 납가세   -사기를 쫓고 만병을 물리친다. 지혈, 장의수축, 혈관의 수축, 심장기능 촉진, 부기를 낮추고 이뇨, 해열에도 좋다. 고혈압, 변비, 간장약, 토혈, 혈변, 생리불순, 설사, 이질등 *하루 10g-15g을 달여 마신다. 58 목통, 통초 으름덩쿨 으름나무 -이뇨, 소염, 비위한 열을 없에고 혈맥, 관절을 좋게하고 임질, 소변 불순등을 고친다. 신장병, 부기, 각기에 좋다. *임산부가 많이 사용하면 유산된다고 약 처방에 되어 있다. 59 천초 꼭두서니 가삼자리 -빨간색 염료의 기원은 이풀의 뿌리이다. *부인의 경수가 잘 나오지 않을 때 이 풀의 열매을 달여 마시면 반드시 효과가 있다. 이뿌리는 이뇨에 좋고 코피를 멈춘다. 구내염, 편도선염, 잇몸염, 통경제, 하열제 위장카다르 60 당귀(토당귀, 일당귀, 갯당귀) 승검초 참당귀, 개당귀, 갯당귀 -부인의 혈도, 냉증, 혈색 불량, 산전 산후, 월경 불순, 자궁불성장, 변비 *설사하는 사람에게는 삼가 하는 것이 좋다. 당귀 10g을 물 300cc로 반이 되게 달여 복용한다.

  • 부채마,붉나무,붉은토끼풀,뻐꾹채,뽕나무,비단풀의 효능

    부채마의 효능방사선 피해,동맥경화,심장병,뇌경색진해, 거담, 천식 억제, 심혈관질환, 만성기관지염, 급성 화농성 골관절염, 갑상선종 및 갑상선 기능 항진증, 혈액순환, 이뇨, 부스럼, 소화불량, 말라리아에 효험 우리나라에서는 단풍마, 부채마, 국화마를 성분이 비슷하여 모두 천산룡(穿山龍)이라고 하여 함께 약용한다.산비탈의 숲 주변, 관목림 혹은 골짜기 냇가 근처에서 자란다.[맛과 성질]1,맛은 쓰고 성질은 평하다.2,맛은 달고 쓰며 성질은 따뜻하다.부채마는 피를 잘 순환하게 하고 근육을 느슨하게 하며 식체를 제거하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하며 담을 없애고 학질의 주기적 발작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 풍한습비, 만성 기관지염, 소화불량, 피로에 의한 손상과 염좌, 말라리아, 부스럼을 치료한다.채취는 가을에 뿌리줄기를 캐어 가는 뿌리를 제거하고 코르크껍질을 벗겨내어 햇볕에 말린다.하루 20~40그램 신선한 것은 40~80그램을 물로 달이거나 술에 담가 복용한다. 외용시 신선한 것을 찧어서 바른다. 붉나무의 효능     건위,위장장애붉나무 껍질과 잎은 급성이나 만성 장염에 특효약이라 할만하다.붉나무 열매에 붙은 가루를 모아서 소금 대신 썼다. 붉나무 열매에 붙어 있는 소금은 소금의 독성이 완전히 제거된 가장 이상적인 소금이라 할 수 있다.제일 맛있는 두부를 만들려면 붉나무 열매에 붙은 가루를 간수 대신 써야 한다. 잎에 달린 울퉁불퉁하고 울긋불긋하게 생긴 벌레집을 오배자라고 하여 옛날부터 피를 멎게 하거나 염증을 치료하는 데 널리 썼다. 붉나무잎에 10배쯤 물을 붓고 1시간 동안 센 불로 달여서 1차 추출액을 얻고 남은 찌꺼기에 5배의 물을 붓고 달여 2차 추출액을 얻는다.두 가지 액을 합쳐 졸여서 물엿처럼 될 때까지 졸인다.한편 붉나무 잎을 가루로 만든다.그런 다음 붉나무 엑기스 60퍼센트, 붉나무잎가루 40퍼센트의 비례로 반죽하여 녹두알 만하게 알약을 만든다.이 알약을 한 번에 4-5그램씩 하루 3번 빈속에 먹는다.붉나무 잎은 8월에 채취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 다음에는 9월에 채취한것이 좋다.   붉은토끼풀의 효능      동맥경화증,감기,학질,눈병의 염증,목안의 아픈 염증,악성 종양,건위약,가래약꽃의 알콜 추출액은 이뇨약, 진통약, 소화건위약, 가래약으로 달여서 먹는다.고약 또는 우림약으로 만들어 악성종양에 외용하기도 한다.민간에서는 전초를 가래약으로, 염증약, 또는 땀내기 약으로 감기, 학질에 달여 먹는다.염증약으로는 눈염증, 목안의 염증에 달임물로 씻어내며 여러 가지 출혈에 지혈약으로 쓴다.동맥경화증을 가볍게 하며 뚜렷한 진경 진정 작용이 있다.잎과 꽃의 추출물을 기침과 폐결핵,천식에 쓴다.전초와 씨를 진해약,이뇨약으로 쓰며, 전초를 황달, 부기, 위장병에도 쓴다.독풀이약, 진정약으로도 쓴다.   뻐꾹채의 효능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유즙을 분비하고 항노화에 신효♣야생화로 출하한다. ♣봄에 굵은 싹이 나올 때 어린 순을 따서 나물용으로 이용하도록 생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어린 순은 향기롭고 싸근한 맛이 구미를 돋우는데 삶아서 우렸다가 나물로 무쳐도 좋고 기름에 볶아서 먹어도 좋다. 큰 꽃봉오리는 채 피기 전에 따서 까실까실한 갈색의 비늘을 벗겨 버리고 살짝 데쳐 썰어서 샐러드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볶아도 맛있다. ♣뻐꾹채/큰절굿대/절굿대의 根(근)은 漏蘆(누로), 花序(화서)는 追骨風(추골풍)이라 하며 약용한다.⑴漏蘆(누로)①가을에 줄기와 수염뿌리를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다.②성분 : 뻐꾹채의 뿌리는 精油(정유)를 함유하고 큰절굿대의 rhktlfdmsechinorine을 함유하고 종자는 echinopsine과 echinine을 함유한다.③약효 : 淸熱(청열), 해독, 消腫(소종), 背痛(배통), 下乳(하유), 筋脈疏通(근맥소통)의 효능이 있다. 癰疽發背(옹저발배-등에 생긴 腫瘍(종양)), 乳房(유방)의 腫痛(종통), 乳汁不通(유즙불통), 나력악창, 濕痺筋脈拘攣(습비근맥구련), 骨節疼痛(골절동통), 熱毒血痢(열독혈리), 痔瘡出血(치창출혈)을 치료한다. <외용> 달인 液(액)으로 씻던가 또는 가루를 만들어 고루 바른다.⑵追骨風(추골풍) - 活血(활혈), 發散(발산)의 효능이 있다. 술에 담가서 복용하면 타박상을 치료한다. 뽕나무의 효능    자양강장,영양식,당뇨병,고혈압,중풍,근골통,신경통, 부종, 기관지염,보혈,불로장수약현대의학에서도 밝힌 바에 의하면 오디에는 비타민 B1, B2, C 등이 있어 동맥경화의 예방과 치료도 할 수 있는 리놀레인산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맛은 달고 성질은 차다. 심경, 간경, 신경에 작용한다. 음혈을 보해주고 진액을 불려주며 소변이 잘 나오게 한다. 또한 대변을 무르게 하고 머리칼을 검어지게 한다. 하루 9~30그램을 달이거나 말려서 먹는다. 뽕잎의 맛은 쓰고 달며 성질은 서늘하다. 폐경, 간경에 작용한다. 풍열을 없애고 혈열을 내리며 출혈을 멈추고 눈병을 낫게한다. 고혈압등에도 사용한다. 하루 6~12그램을 달여서 먹는다.뽕나무가지도 맛은 쓰고 성질은 평하다. 간경에 작용한다. 비증, 팔이 쑤리는데, 사지경련, 각기, 부종, 고혈압, 사지마비, 류머티즘성 관절염 등에 쓴다. 하루 10~15그램을 달여먹는다.뽕나무뿌리껍질은 맛은 달고 성질은 차다. 폐경에 작용한다. 폐열로 기침이 나고 숨이 찬데, 혈담, 부종, 소변불리, 고혈압, 기관지천식, 기관지염 등에 쓴다. 하루 6~12그램을 달이거나 가루내어 환으로 지어 먹는다. 외용시는 탕액으로 씻는다."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노화를 방지하는 물질인 항산화 색소 안토시아닌이 포도의 23배,검정콩의9배, 흑미의4배 정도이며,유해산소(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력이 토코페롤의7배 정도입니다 ♣ 혈압을 낯추는 성분이 뽕잎과 같은 수준이며,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루틴성분이 메밀보다 많습니다. ♣ 혈당을 낮추는 성분이 대단히 풍부하여 동의보감에서는 당뇨병에 이롭다 하였습니다.또한 뽕나무의 정령이 모두 모인 곳이라 하여 오래먹으면 눈과귀가 밝아지고 늙지 않는 다 하였습니다. ♣ 철분은 복분자의 9배 비타민C는 사과의14배, 비타민B는 70배, 칼슘은 포도의 11배 정도이니 과연 과일 중의 과일 과일의 황제라 할수있겠지요,.   비단풀의 효능    항암작용, 해독작용,항균작용,진정작용비단풀은 항암작용과 해독작용, 항균작용, 진정작용 등이 뛰어나서 특히 말기 췌장암이나 손쓰기 힘든 뇌종양 치료에 특효라 할 만하고, 갖가지 암, 염증, 천식, 당뇨병, 심장병, 신장질환, 악성 두통, 정신불안증 등에 부루 쓸 수 있다.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고 피가 나는 것을 멈추며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작용도 있다.세균성 설사, 장염, 기침으로 목에서 피가 넘어 올 때, 혈변, 자궁출혈, 외상으로 인한 출혈, 습열로 인한 황달, 젖이 잘 안 나오는 데, 종기, 종창, 타박상으로 붓고 아픈 것 등을 치료한다. 종기와 악창, 위가 거북하고 배에 가스가 차는 것, 두통, 비염, 치질에도 효과가 좋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통증을 멎게 하는 작용이 있으면 독성은 전혀 없다.비단풀 전초를 달인 물이나 신선한 즙액, 알코올 추출물 등은 뚜렷한 항균작용이 있다.즙액은 황색 포도상구균, 초록색 연쇄상구균, 용혈성 연쇄상구균, 폐렴쌩구균, 카타르균, 디프테리아균, 대장균, 녹농균, 장티프스균, 파라티푸스균, 이질균, 변형균, 백일해 간균 등을 죽이거나 억제한다. 비단풀을 달인 물이나 말린 가루 등은 진정, 진통, 최면 등의 작용이 있고 독성은 전혀 없다. 두통에도 잘 듣는다. 진통작용과 진정작용이 뛰어나 어떤 두통이든지 효험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동에 써 보았더니 모두 효과가 좋았다. 두통에 천마 못지 않은 치료 효능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신작용, 곧 새살을 잘 돋아나게 하는 작용이 뛰어나 고약 원료로도 쓸 수 있다.항암작용이 뛰어나므로 갖가지 암 치료에도 쓸 수 있다. 몹시 심한 뇌종양과 직장암을 비단풀 가루만 복용하게 하여 완치된 사례가 있다.비단풀은 항암작용작용이 뛰어나다.특히 뇌종양,췌장암,골수암,위암,직장암에 효과가크다.암세포만 골라죽이고 암으로 인한 여러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빨리 돋아나게 하고 기력을 크게 늘인다.비단풀은 단방으로 쓰는 것이 좋으며 복용법도 쉽고 간단하다.말린 것은 하루에 5~12그램을 달여서 하루에 두세 번 나누어 복용하고 날 것은 30~80그램을 달여서 복용한다.그늘에 말려 가루 내어 복용할 수 있다. 외용으로 쓸 때는 날 것을 짓찧어 붙이거나 가루 내어 뿌린다.비단풀은 질병치료에 이용하는 방법을 몇 가지 적는다. ♣이질·설사그늘에서 말려 하루5~10그램을 미음과 함께 먹는다. 또는 말려서 가루 내어 한 번에 5~10그램씩 빈속에 미음과 함께 먹는다. ♣ 위염·대장염날 것으로 40~80그램을 달여서 복용한다. 급성이나 만성장염으로 치료하는 효력이 매우 뛰어나다. 장염이 심하면 하루에 날 것으로 100그램이상, 말린 것으로 50그램 이상을 달여 먹거나 내어 먹는다.95퍼센트 이상이 치유되거나 호전된다. ♣ 감기로 인한 기침·혈변·토혈·자궁출혈·혈뇨신산한 비단풀 40그램을 달여서 먹거나 그늘에서 말려 꿀로 알약을 지어 먹는다. ♣ 자궁출혈날 것을 풀 쪄서 참기름, 생강, 소금 한 숟가락과 함께 먹는다. 또는 그늘에서 말린 것 5~10그램을 생각과 함께 먹는다. 또는 비단풀 두군을 달여서 찌꺼기를 버리고 졸여서 고약처럼 되게 하여 한 번에 5그램씩 하루 두 번 증류주 반 잔과 함께 복용한다. ♣ 상처의 출혈이 멎지 않을 때날 것을 짓찧어 붙이면 곧 피가 멎는다. ♣ 잇몸염증달인 물로 양치질을 하고 입을 헹군다.3~10일미녀 낫는다. ♣ 대상포진날 것을 짓?어 식초와 섞어 붙이거나 말린 것을 가루 내어 들기름이나 참기름에 개어 바른다. ♣ 임후염날 것 30그램을 즙을 짜서 꿀에 담근 후 하루 세 번에 나누어 복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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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전통 부채 오죽선 친필화 공예명가 할인

      &n...bsp;   현재 공예명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제품 한국 전통 부채 오죽선 친필화입니다. 질 좋은 오죽선 나무로 만들었고 한지 위에 직접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전통 부채 오죽선 친필화 입니다. 현재 공예명가에서는 10가지의 오죽선 친필화 제품이 있습니다.     19,000원 → 12,000원으로 할인하고 있습니다. 부채를 피고 닫을때 소리와 감도 아주 좋구요 한지이기 때문에 더욱 시원함까지 느껴지는 한국 전통 부채 오죽선 친필화입니다.     우리나라는 옛날 부터 오래된 전통으로 작은 손재주가 참 많았는데요 그 중에서 전통부채를 제작하는 장인분들도 대단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부채는 옛날부터 귀한 손님이 왔을때 왕이 드리는 하사품과 하례품이였다고 합니다.     귀한 외국인 추천 선물로 아주 좋은 한국 전통 부채입니다. 오죽선과 합죽선의 차이는 대나무 종류의 차이입니다. 특히 한국 전통 부채는 옛날부터 오죽선 부채라고 불리울 만큼 옛날부터 고급스러운 부채를 칭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현재가 되어 더욱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게 다양한 부채에 다양한 문양이 들어가 있습니다. 보통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사군자 그림이며 화려한 색감이 들어가 있는 한국 전통부채도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많이 있습니다.     공예명가에서는 외국인들 혹은 어른들에게 선물 드리기 때문에 대부분은 선물포장으로 배송이 됩니다. 귀한 분들에게 선물해도 손색없는 한국 전통부채 오죽선 친필화입니다.     특히 더워진 요즘 한국전통부채 중 막선부채와 오죽선 친필화 부채가 가장 인기가 많이 있습니다. 상품의 고급스러움에 비해 저렴하고 고급스러운 상품을 받아보실 수 있고 절대 후회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오죽선 친필화 그림은 섬세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더욱 멋스럽고 의미까지 생각되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전통 부채 오죽선 친필화입니다.     공예명가에 검색하시면 오죽선 친필화 부채를 종류별로 만나보실 수 있어요 부채 앞 부분에 로고 정도는 인쇄도 가능합니다만 인쇄는 고객님 별도 부담금액이 발생되어 이 부분은 참고 바랍니다 ^^   왠만큼 좋지 않으면 이렇게 추천도 안하는 저인데요 정말 섬세한 포장과 믿음직 스러운 제품이 공예명가를 이용해주시는 고객들은 늘 재구매를 하시는 고객님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네이버에 검색하시면 공예명가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공예명가는 많은 기업들과도 거래하기 때문에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은 1:1 문의 및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언제든지 친절한 상담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부분 저역시도 한국 전통 부채라고 하면 고가라고 생각되는데 12000원이라는 저렴한 금액으로 고급스러운 선물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이벤트로 진행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마감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자세한 사항은 공예명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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