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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조선의 무역 아이콘, 홍삼(2) - 역사 속 인삼이야기
15-08-13 14:33

 


사 속 인삼이야기 그 22번째 <심이야기>는 지난시간에 이어 개항기 조선시대 무역과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지난시간 '서양 무명'과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무역의 아이콘은 '홍삼'이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유철'과 교환의 대상이 되었던 무역의 아이콘, 홍삼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홍삼, 유철 교환체제
개항기 조선의 무역 아이콘, 홍삼(2) - 역사 속 인삼이야기 #22

서양 물건들이 조선 시장을 잠식하자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였습니다. 프랑스 선교사 처형으로 프랑스 군대의 침입이 예견되던 1866년 영의정 김병학(金炳學)은 “서양 물품은 국가 재정을 거덜 내고 백성들의 마음을 헤치며 서양 상선들이 통상을 요구하는 빌미가 된다”는 이유를 들어 서양 물품 수입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요. 고종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김병학이 염두에 두었던 서양 물품은 다름 아닌 서양 무명이었습니다.
 
이윽고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서양 물품의 수입 및 사용을 금지하라는 여론이 더욱 들끓었습니다. 기정진(奇正鎭)은 서양 물품이나 면제품을 서양이 침략하려는 조짐으로 파악하여 기존 서양 물품들을 모두 수괄하여 없애고 이후로도 수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개항기 조선의 무역 아이콘, 홍삼(2) - 역사 속 인삼이야기 #22

이항로(李恒老)도 서양의 물건들은 모두 기묘하고 음란한 것에 불과하다며 서양 물건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조선의 농산품과 서양의 공산품이 교역될 경우 조선이 경제적으로 더욱 곤궁해 질것이라는 예리한 분석을 펼쳤는데요. 이는 모두 조선의 실상을 반영한 주장이었지만 서양 물품의 수입이 자칫 서양의 군사적 침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에 일시적으로 서양 상품에 대한 수입이 전면 금지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홍삼-서양 무명 교환체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서양 무명을 홍삼 무역의 결재 수단으로 삼았던 중국 상인에게는 해법이 필요했습니다. 홍삼세를 새로운 재정 원천으로 활용해 온 조선 정부 역시 활로를 찾아야만 했는데요. 특히 1864년(고종 1)부터 홍삼세는 거의 예외 없이 대원군의 군비증강 정책에 활용되어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진무영(鎭撫營)이었는데요.

개항기 조선의 무역 아이콘, 홍삼(2) - 역사 속 인삼이야기 #22

진무영은 서울로 들어오는 방비를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군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대원군은 의주부 관세청(管稅廳)에서 거두는 홍삼세 중 10만 냥 정도를 매년 진무영 경비로 활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진무영 전체 예산이 12만 냥 정도였으므로, 진무영 경비의 약 83% 정도를 홍삼 무역세에서 충당한 셈입니다. 홍삼세는 강화뿐만 아니라 개성과 옹진의 군비 확충을 위해서도 활용되었는데, 이를 위해 조선 정부는 홍삼 무역량을 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의주부 관세청에서 거두는 홍삼세는 동래부, 충청도 수영, 군기시(軍器寺) 등에도 투입되었고, 각 지방의 군비 확충에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서양 침략의 구실이 되는 서양 물품의 수입을 금지하여 외세에 대항한다는 정책은 서양의 침략을 막기 위한 군사력 증강의 중요한 재정기반을 무너뜨리는 자기모순을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개항기 조선의 무역 아이콘, 홍삼(2) - 역사 속 인삼이야기 #22

그러나 대원군 집권기에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요. 이는 서양무명을 대신하는 공식 무역결재 수단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청나라 동전 곧 청전(淸錢)이었습니다. 조선 정부는 홍삼 무역을 담당하는 상인에게 홍삼세로 청나라 돈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유철세(鍮鐵稅)라고 인식했던 것입니다. 유철은 구리에 아연을 10%~45% 넣어 만든 합금인데 청나라에서는 이를 양철편(洋鐵片)이라는 명목으로 판매하였습니다. 청전을 두고 조선은 유철, 청나라는 양철편이라는 명목으로 받아들이면서 두 나라 상인간의 무역을 묵인, 성사시킨 것인데요.

개항기 조선의 무역 아이콘, 홍삼(2) - 역사 속 인삼이야기 #22

이에 ‘홍삼-서양 무명 교환체제’는 1867년(고종 4)부터 1874년(고종 11)년까지 ‘홍삼-유철 교환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조선 정부는 청나라 돈을 금속으로 들여와 무게에 따라 수세한 이후 국내에서는 명목가치대로 유통시키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결국 이 청전유통으로 조선은 화폐 유통구조의 문란, 물가상승, 민심 혼란 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면서 민생안정을 위해 청나라 돈의 통용을 금지시킨 이유는 이러한 사정에 연유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재정 보완책이 없는 정책은 또다시 혼란만을 낳는 악순환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홍삼이 조선 부동의 대표적 무역품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였습니다. 

이번시간 역사 속 심 이야기에서는 조선에서 가장 인기있던 서양 무명의 수입이 금지되어도 홍삼이 조선의 대표적인 무역품으로 유철과 거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다음시간에는 각종 신문에 보도된 개항기 조선의 무역행태와 금지되었던 수출 목록이 된 홍삼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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