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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 올 때 아도 또는 아두라는 중이 왕녀의 병을 고친 다음, 불법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아도전
15-10-24 10:14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불교 설화의 하나.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 올 때 아도 또는 아두라는 중이 왕녀의 병을 고친 다음, 불법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박인량의 수이전에 실려 있다고 하나, 설화의 앞뒤가 없어지고 현재 각훈의 '해동고승전'에 중간 부분이 실려 전한다.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도
생몰년 미상. 고구려의 승려. 아도(我道)·아두(阿頭)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의 〈아도본비 我道本碑〉에 의하면, 고구려인인 어머니 고도령(高道寧)과 정시연중(正始年中, 240∼248)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曺魏人) 아굴마(我堀摩) 사이에서 태어났다.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 보고, 현창화상(玄彰和尙)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하였다.

5이때 어머니가 신라로 갈 것을 권하면서, “이 나라는 지금까지 불법을 모르고 있으나 이후 3,000여 월이 되면
계림(鷄林)에 성왕이 나와서 크게 불교를 일으킬 것이다. 그 나라 서울 안에 7개소의 가람터가 있으니, 1은 금교(金橋) 동쪽 천경림(天鏡林), 2는 삼천기(三川咎), 3은 용궁(龍宮) 남쪽, 4는 용궁 북쪽, 5는 사천 끝, 6은 신유림(神遊林
), 7은 서청전(淚請田)이니 모두 전불(前佛:석가모니 출현 이전의 과거불) 때의 가람터요 불법이 길이 유행하던 땅이다. 네가 그곳으로 가서 대교 (大敎)를 전파하면 석사(釋祀)가 동으로 향하리라.”라고 하였다.

아도는 263년(미추왕 2)에 신라로 가서 왕성의 서리(西里)에 머물렀다. 아도가 대궐에 들어가서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라 하여 꺼려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에 일선현(一善縣)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다.264년에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들어 무당과 의원이 치료를 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의사를 구하였다. 아도가 대궐로 들어가 병을 치료하여 나았으므로 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그의 소원을 물었다.
 
그가 천경림에 절을 세워 불교를 크게 일으켜 방가(邦家:나라)의 복을 비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으므로, 왕이 허락하였다. 띠로 집을 덮고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한 뒤 그곳에서 불법을 강연하였으며, 모례의 누이인 사씨(史氏)도 이때 여승이 되어 삼천기에 절을 짓고 영흥사(永興寺)라 하였다.

얼마 뒤 미추왕이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이 다시 그를 해하려 하였으므로, 다시 모례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든 다음 문을 닫고 들어가서 자절(自絶)하여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과 ≪삼국사기≫에는 아도가 신라 소지왕 때 시자 3인을 데리고 일선군 모례의 집에 와서 있다가 몇 년 뒤 병 없이 죽었고, 그의 시자 3인이 경률(經律)을 강독하여 가끔 믿는 이가 있었다고 하였다.이 밖에 아도에 대해서는 여러 책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에는 서축(西竺) 사람이라고도 하고, 오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海東高僧傳(覺訓), 東師列傳(覺岸).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형식 : 설화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불법 부흥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내용 연구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 올 때 아도 또는 아두라는 중이 왕녀의 병을 고친 다음, 불법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1215년(고종 2) 고려 때의 승려 각훈 ( 覺訓 )이 우리 나라 고승들의 전기를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 2권 1책. 필사본.
찬술 연대는 이 책의 본문 중 “순도(順道)가 고구려에 들어올 때로부터 지금까지 844년이 지났다.”고 한 기록을 토대로 역산한 연대이다. 현존본은 완본이 아니며, ≪삼국유사≫에는 ‘승전(僧傳)’·‘해동승전(海東僧傳)’·‘고승전(高僧傳)’ 등의 서명으로 여러 군데 인용되고 있다.
중국 고승전이 10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도 10편으로 분류하여 엮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 고승전에 수록된 인물의 하한이 찬술한 당대까지 와 있으므로, 이 책도 불교 전래 초부터 각훈의 찬술시대인 고려 고종 때까지 약 9세기 동안의 고승을 망라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통편(流通篇) 중 논에 대각국사(大覺國師)의 구법(求法)에 관한 언록이 있고, 최자 ( 崔滋 )가 ≪해동고승전≫에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려고 묵행자전(默行者傳)을 썼던 기록에서, 이 고승전의 내용이 삼국의 고승만이 아니라 고려의 고승까지 망라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존본은 유통편 1의 1인 권1과 1의 2인 권2만이 남아 있는데, 유통편도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현존 유통편에는 삼국시대까지의 고승에 관한 기록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편 1의 1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와 그 수용에 대한 기록이고, 1의 2는 구법승(求法僧)에 관한 전기이다.
구법승전 가운데 각덕(覺德)에서 안함 ( 安含 )까지는 중국에서 구법한 승려들의 기록이고,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에서 마지막 현태(玄太)에 이르기까지는 인도로 구법의 길을 떠났던 승려들의 기록이다.
2권에 수록되어 있는 고승은 정전(正傳)에 18명, 방전(傍傳)에 17명 등 모두 35명이다. 즉, 순도·망명(亡名)· 의연 ( 義淵 )·담시(曇始)·마라난타(摩羅難陀)· 아도 ( 阿道 )·법공(法空)·법운(法雲)·각덕·지명(智明)· 원광 ( 圓光 )·아리야발마· 혜업 ( 慧業 )·혜륜(慧輪)· 현각 ( 玄恪 )· 현유 ( 玄遊 )·현태 등의 정전과, 묵호자(墨胡子)·원표(元表)·현창(玄彰)·명관(明觀)· 원안 ( 圓安 )·담화(曇和) 및 인도 승려 2인, 한나라 승려 3인, 현조 ( 玄照 ), 망명(亡名) 2인, 승철(僧哲) 등의 방전이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참고하고 인용한 문헌과 전거(典據)를 일일이 밝혔다. ≪국사 國史≫·≪기로기 耆老記≫·≪수이전 殊異傳≫·≪화랑세기 花郎世紀≫ 등 우리 나라 문헌, ≪송고승전 宋高僧傳≫·≪속고승전 續高僧傳≫·≪신라국기 新羅國記≫ 등 중국 문헌, 아도비(阿道碑)·난랑비(鸞郎碑)·안함비명(安含碑銘) 등의 비문과 최치원 ( 崔致遠 )이 찬한 〈의상전 義湘傳〉 등이다.
한편, ≪삼국유사≫와 ≪법화영험전≫ 등에 ≪해동고승전≫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1637년(인조 15)에 김휴(金烋)가 지은 ≪해동문헌총록 海東文獻總錄≫에도 ≪해동고승전≫의 책명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한동안 실전(失傳)되어 오다가 1910년대에 그 일부가 다시 발견되었다. 그 뒤 옮겨 베낀 부분이 일본으로 유입되어 ≪대일본불교전서 大日本佛敎全書≫의 〈유방전총서 遊方傳叢書〉 제2(1917)와 ≪대정신수대장경 大正新修大藏經≫ 제50권 사전부(史傳部)에 편입, 간행되었다.
현존 ≪해동고승전≫은 완전한 것이 아니고 일부분만이라는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헌적 가치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중요한 불교사서일 뿐 아니라 우리 나라 일반 전적 ( 典籍 ) 중에서도 오래 전에 찬술된 것이며, 고대불교사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이설(異說)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나라 고승전의 효시는 신라 김대문 ( 金大問 )의 ≪고승전 高僧傳≫이나 전해지지 않으며, ≪삼국유사≫는 중요한 불교사서이나 순수한 승전은 아니다. 승전류로는 조선시대의 ≪동국승니록 東國僧尼錄≫·≪동사열전 東師列傳≫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전적들과 비교할 때 ≪해동고승전≫은 오래된 승전이고 중요한 역사적 자료일 뿐 아니라, 이 책을 통하여 이미 잃어버린 ≪수이전≫·≪서기≫·≪기로기≫ 속의 일문(逸文)을 찾아낼 수 있다.
그 밖에도 고구려에 왔던 순도와 아도의 국적, 불멸(佛滅)의 연대, 신라불교 전래설 등 우리 나라 불교사에서 문제가 되는 귀중한 기록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승려 일연 ( 一然 )은 ≪삼국유사≫에서 이 고승전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당시의 사람을 많이 미혹시켰다.”, “뒷사람들이 의심하고 잘못 알게 하였으니, 얼마나 무망(誣妄)한 짓인가?”라고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일연이 지적한 부분 외에도 이 책에는 몇 군데 더 문제점이 있다.
당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던 각훈은 이 책을 서술하면서 사료에 대한 검토나 비판 또는 선별보다는 다분히 문학적인 표현이나 윤문에 치우친 점이 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안함의 비명에서 읽을 수 있듯이, 객관적인 사료를 제시했다기보다는 다분히 주관적으로 서술한 흔적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補閑集, 法華靈驗傳, 海東文獻總錄, 海東高僧傳解題(崔南善, 佛敎 37, 1927.7.), 覺訓의 海東高僧傳(安啓賢, 韓國의 古典百選, 新東亞 1969.1. 부록), 海東高僧傳(閔丙河, 韓國의 名著, 玄岩社, 1969), 海東高僧傳 解題(李炳薰, 海東高僧傳, 乙酉文化社, 1975), 海東高僧傳의 史學史的性格(金相鉉, 史學志 15, 1981).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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