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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신화 - 신라 시조 혁거세왕
15-10-23 22:34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元年) 임자(壬子) 3월 초하루에 육부의 조상들이 각각 젊은이들을 거느리고 알천 언덕 위에 모여서 의논하기를, "우리들에게는 위로 뭇 백성들을 다스리는 임금이 없으므로 백성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니 덕이 있는 분을 찾아 내 임금으로 삼아서 나라도 세우고 도읍을 차려야 할 것이 아니냐?"  라고 하였다.
 이에 그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아래 나정(蘿井) 옆에 번갯빛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으로 드리웠는데,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서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곧 뒤져 보니 자줏빛 나는 알 한 개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소리를 뽑아 울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 보니 사내아이가 있는데,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랍고 이상해서 동천(東泉)에서 목욕을 시키었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모두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이를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고 이름을 짓고 직위의 칭호로는 거슬감(居瑟邯)이라고 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다투어 가면서 치하하기를  "이제 천자(天子)가 내려오셨으니 곧 마땅히 덕이 있는 황후를 찾아 내어 배필을 정해야 하겠다."
 고 하였다. 이 날 사량리 알영 우물에서 계룡(鷄龍)이 나타나더니 왼쪽 옆구리로 계집아이를 낳았다. 얼굴이 아주 고우나 입술이 마치 닭의 주둥이와 같았는데, 월성(月城) 뒷내물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켰더니 그 주둥이가 뽑혀져서 떨어졌다. 그래서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고 부른다.
 남산 서쪽 기슭에 궁실(宮室)을 짓고 거룩한 두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는 알로 나왔으니 알은 박[瓠]과 같았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박을 '박(朴)'이라고 하기 때문에 성을 박씨라고 하였으며, 여자는 자기가 난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 13세에 이르러 오봉(五鳳) 원년(元年) 갑자(甲子)에 사내가 임금이 되면서 여자를 왕후로 삼았다. 나라 이름은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이라고 하고 혹은 사라(斯羅) 또는 사로(斯盧)라고도 이른다. 또, 맨 처음 왕이 계정에서 난 까닭에 계림국(鷄林國)이라고도 하니 계룡이 상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기를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었는데, 그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다 해서 나라 이름을 계림이라고 고치었다가 후세에 와서 드디어 신라란 칭호로 정하였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이레 후에야 유해가 흩어져서 땅 위로 떨어졌다. 왕후 역시 왕을 따라 작고(作故)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합해서 장사를 지내려고 하였더니, 큰 뱀이 쫓아다니면서 이를 방해하므로 다섯 부분을 다 각각 장사 지내어 다섯 능(陵)으로 만들었다. 이를 사릉(蛇陵)이라고 부르니 담엄사(曇嚴寺) 뒤에 왕릉이 바로 그것이다. 태자 남해왕(南解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미상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신화(건국 신화. 창건 시조 신화) - 난생(卵生) 설화의 성격을 띰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신성, 신이적, 집단적, 초월적, 원시적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체 : 설화체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재 : 혁거세와 알영의 탄생과 내력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상 : 태양 숭배 사상을 나타냄. 천부지모(天父地母). 동물 숭배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박혁거세의 신성함, 신라 시조의 신이한 탄생과 신라의 건국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특징 : 북방 민족이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한 시기에 형성되었고, 투쟁적인 북방계의 신화에 비해 평화로운 남방계 신화의 특징이 드러남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남방계 신화의 대표작임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삼국유사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줄거리 :  진한 땅 여섯 마을의 우두머리들이 왕을 모시기 위해 높은곳에 올라갔다. 남쪽을 보니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흰말이 엎드려 있었다. 가까이 가자 말은 붉은 알 하나를 두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알을 깨어보니 단정하고 잘생긴남자아이가 나왔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빛이 나고, 새와 짐승이춤을 추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빛났다. 이로 인해 세상을 밝힌다는 뜻에서 '혁거세 왕'이라 이름했고, 박처럼 생긴 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박씨라 했다. 사람들이모두 왕으로 받들며 배필을 구하려고 했는데,그날 ' 알영'(閼英)이라는 우물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닭부리 같았다. 월성의 북천(北川)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태어난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하고 남산기슭에 세운 궁에서 혁거세와 함께 봉양되다가 13세 때혁거세와 혼인해 왕후가 되었다. 혁거세는6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죽었는데 그 주검이 5체(五體)로 분리되어 땅에 떨어지더니 왕후도 따라 죽었다. 분리된 5체를 한데 묻으려 했으나 큰 뱀이나타나 방해하므로 5체를 다섯 능에 묻고 '사릉'(蛇陵)이라고 불렀다.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元年) 임자(壬子)[고본(古本)에서 건호(建虎) 원년(元年)이라고도 하고, 또 건원(建元) 삼 년(三年)이라고도 한 것 등은 모두 잘못임 ] 3월 초하루에 육부의 조상들[신라가 6부족의 연합체임을 알 수 있음]이 각각 젊은이들을 거느리고 알천 언덕 위에 모여서 의논하기를,
 "우리들에게는 위로 뭇 백성들을 다스리는 임금이 없으므로 백성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니 덕[지도자의 덕목]이 있는 분을 찾아 내 임금으로 삼아서 나라도 세우고 도읍을 차려야 할 것이 아니냐?"
 라고 하였다.
 이에 그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아래 나정(蘿井)[우물] 옆에 번갯빛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으로 드리웠는데[나정(蘿井) 옆에 - 땅에 드리웠는데, : 우물이 등장한 것은 이 부족이 농경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신이(神異)한 전기적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흰 말[백마는 강우(降雨)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백마의 등장은 나정과 동일하게 농경 생활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마리가 꿇어앉아서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곧 뒤져 보니 자줏빛 나는 알 한 개[(혹은 푸른 빛깔의 큰 알이라고도 함)]가 있고[이 언급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는 태양신의 후손이라는 관념이 내재되어 있다. ]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소리를 뽑아 울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 보니 사내아이가 있는데,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랍고 이상해서 동천(東泉)에서 목욕을 시키었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모두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이를 혁거세왕(赫居世王)[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 하는데, '불구내'는 광명하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임 ]이라고 이름을 짓고 직위의 칭호[위호(位號) : 왕위를 가리키는 말임]로는 거슬감(居瑟邯)[임금, 왕이라는 뜻.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함]이라고 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다투어 가면서 치하하기를
  "이제 천자(天子)가 내려오셨으니 곧 마땅히 덕이 있는 황후를 찾아 내어 배필을 정해야 하겠다."
 고 하였다.
 이 날 사량리 알영 우물[달리 아리영(娥利英) 우물이라고도 함]에서 계룡(鷄龍)[머리와 발이 닭의 모양과 같은 용]이 나타나더니 왼쪽 옆구리로 계집아이를 낳았다. 얼굴이 아주 고우나 입술이 마치 닭의 주둥이와 같았는데, 월성(月城) 뒷냇물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켰더니 그 주둥이가 뽑혀져서 떨어졌다[월성(月城) 뒷내물에 - 주둥이가 뽑혀져서 떨어졌다. :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여자들이 성년식을 치르는 모습의 형상화일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말해서 알영이 태어났을 때 입술이닭부리처럼 뾰족했다가 목욕 후 떨어졌다는 모티프는 동명왕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있는 것으로 미루어 '여성의통과제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고 부른다.
 남산 서쪽 기슭에 궁실(宮室)을 짓고 거룩한 두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는 알로 나왔으니 알은 박[瓠 : 표주박 호]과 같았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박을 '박(朴)'이라고 하기 때문에 성을 박씨라고 하였으며[동음이의어, 소리의 유사성], 여자는 자기가 난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 13세에 이르러 오봉(五鳳) 원년(元年) 갑자(甲子)에 사내가 임금이 되면서 여자를 왕후로 삼았다. 나라 이름은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지금 '경(京)'자를 '서울 경'이라 함은 서벌(徐伐)에서 유래된 것임]이라고 하고 혹은 사라(斯羅) 또는 사로(斯盧)라고도 이른다. 또, 맨 처음 왕이 계정에서 난 까닭에 계림국(鷄林國)이라고도 하니 계룡이 상서[복스럽고 길한 징조]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기를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었는데, 그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다 해서 나라 이름을 계림이라고 고치었다가 후세에 와서 드디어 신라란 칭호로 정하였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이레 후에야 유해가 흩어져서 땅 위로 떨어졌다.[나라를 다스린 지 - 유해가 흩어져서 땅 위로 떨어졌다. : 이런 신화는 사망과 부활을 파종과 재생으로 비유하는 농경 사회에서 나타난다. 반고가 죽어 그 시체를 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만물이 되었다는 중국의 창조 신화가 이와 성격이 같다. 반고는 중국 도교의 천지창조 설화에 나오는 주요인물로 최초의 인간인 반고는 2개의 뿔, 2개의 어금니, 많은 털을 가진 몸으로 혼돈을 의미하는 알속에서 튀어나왔다고 한다. 어떤 전설에 의하면, 그가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해·달·별·행성을 제자리에 배치하고 바다를 넷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는 골짜기를새기고 산을 쌓아올려 땅의 모습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음양(陰陽)의 원리, 즉 만물이 갖고 있는피할 수 없는 이중성의 원리에 관한 반고의 지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전설에의하면 반고의 거대한 시체에서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한다. 그의 눈은 해와 달이되었고, 피는 강을 이루었으며, 머리는 자라서 나무와 식물이 되었다. 그의 땀은 강물로변했으며, 살은 흙이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반고의 몸에 들끓었던 기생충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왕후 역시 왕을 따라 작고(作故)하였다[알영 왕후도 따라 죽었다는 것은 순장 풍습이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나라 사람들이 합해서 장사를 지내려고 하였더니, 큰 뱀이 쫓아다니면서 이를 방해하므로 다섯 부분을 다 각각 장사 지내어 다섯 능(陵)으로 만들었다. 이를 사릉(蛇陵)이라고 부르니 담엄사(曇嚴寺) 뒤에 왕릉이 바로 그것이다. 태자 남해왕(南解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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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땅에 옛날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그 첫째의 것이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이니, 남쪽의 지금 담엄사 일대에 위치했었다.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알평(謁平), 그는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왔다. 이 알천 양산촌의 우두머리 알평이 급량부(及梁部) 이씨(李氏)의 조상이 되었다.
그 둘째 것이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이다.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소벌도리(蘇伐都利). 그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왔다. 이 돌산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도리는 사량부(沙梁部)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이 사량부를 지금은 남산부라고 하며 구량벌, 마등오, 도북, 회덕 등의 남쪽에 있는 마을들이 이에 속한다.
그 셋째의 것은 무산 대수촌(茂山大樹村)이다.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구례마(俱禮馬: '俱'자 대신에 '仇"자를 쓰기도 함)인데, 그는 하늘에서 이산(伊山: 계비산이라고도 함)으로 내려왔다. 이 무산 대수촌의 우두머리 구례마는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장복부(長福)라고 하여 박곡촌 등의 서쪽에있는 마을들이 이에 속한다.
그 넷째의 것은 취산 진지촌(嘴山珍支村)이다.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지백호(智伯虎)다. 그는 하늘에서 화산(花山)으로 내려왔다. 이 취산 진지촌의 우두머리 지백호는 본피부 최씨(崔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통선부라 하여 시파 등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들이 이에 속한다. 최치원이 바로 본피부의 사람이었다. 지금도 황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있어 그것이 문창후(文昌候) 최치원의 옛날 살던 집터라고들 말하고 있으니 거의 틀림이 없다.
그 다섯째의 것은 금산 가리촌(金山加里村)23)이다. 이 금산 가리촌의 우두머리 지타('祗陀'로도 씀) 한기부(韓岐部) 배씨(裵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가덕부라고 하여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의 동쪽에 있는 마을들이 이에 속한다.
그 여섯째의 것은 명활산 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다.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호진(虎珍), 그는 하늘에서 금강산24)으로 내려왔다. 이 명활산 고야촌의 우두머리 호진은 습비부(習比部) 설씨 (薛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임천부라 하여 물이촌 ·잉구미촌 ·궐곡('葛谷'이라고도 씀) 등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들이 이에 속한다. 이상 6촌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그들 6부의 조상이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 같다. 노례왕25) 즉위 9년에 비로소 6촌을 6부로 개정하여 그 명칭을 고치고, 그리고 여섯 가지 성을 각각 내려 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그곳 풍속에 중흥부를 어미라 하고, 장복부를 아비, 임천부를 아들, 가덕부를 딸이라고 하는데26) 그 연유는 자세하지 않다.
 
23) 금강산 백률사의 북산 일대다. 여기 금강산은 경주 북쪽에 있는 산을 가리킴
24) 역시 경주 북쪽의 금강산을 가리킨다.
25)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儒理泥師今)'으로 되어 있다. 그 즉위 9년은 A.D.32년이다
26) 이것은 혹시 '두레'의 조직에 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 전한의 선제 (宣帝) 5년27)(B.C. 69) 3월 초하룻날에 있었던 일이다.
6부의 조상, 즉 6촌의 우두머리들은 각기 그 자제들을 데리고 알천가 언덕에 모였다. 회의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우리에겐 위에 군림하여 백성을 다스려 갈 군주가 없다. 때문에 백성들은 각자 제 마음 내키는 대로들 행동하여 질서가 잡혀지지 않고있다. 어찌 덕 있는 분을 찾아내어 군주로 맞이하지 않겠으며, 나라를 세우고 도성을 갖추지 않을까보냐?"
그때다. 회의장소인 알천가 언덕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양산 기슭에 이상한 기운이 보였다. 그들은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바라보았다. 양산 기슭의 나정(蘿井) 곁, 그 신비스러운 기운은 땅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전광과 같았다. 그리고 그 서기가 드리워진 곳엔 흰 말 한 마리가 꿇어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흰 말이 절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그 흰 말 앞에는 자줏빛 알(혹은 푸른 빛깔의 큰 알이라고도 함)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소리쳐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갈라 보았다. 알에선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모두들 놀라고 신기해했다. 아이를 동천(동천사는사뇌야(詞腦野) 북쪽에 있다)에 데리고 가서 몸을 씻겼다. 아이의 몸에선 광채가 났다. 새와 짐승들이 덩달아 춤을 추었다. 하늘과 땅이 울렁이고 해와 달의 빛이 더욱 청명해졌다.
그래서 혁거세왕(赫居世王)28)이라 이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직위에 대한 칭호는 거슬한(居瑟邯)29)이라고 했다.
6촌 사람들은 하늘이 자기들의 임금님을 내려 준 이 경사를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다.
"이제 천자님은 이미 강림하셨다. 그렇다면 또 덕 있는 아가씨를 찾아 왕후로 짝을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역시 이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 우물가에서 한 마리 계룡이 나타나더니 그 왼편 옆구리로 한 계집아이를 탄생시켰다.30) 그 자태가 유달리 고왔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처럼 생겼었다. 곧 월성 북쪽에 있는 시내로 데리고 가서 씻겼더니 그 부리가 빠지면서 예쁘장한 사람의 입술이 나타났다. 부리가 빠졌다고 해서 그 시내의 이름을 발천(潑川 )이라 했다.
남산 서쪽 비탈(지금의 창림사터임)에다 궁실을 짓고서 두 신성한 아이들을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태어났고, 그 알이 마치 박 같았으므로 박(朴)이라 성을 지었다. 그리고 계집아이는 그가 나왔던 우물의 이름 알영 (閼英)을 따서 이름으로 했다. 성남아(聖黑兒)와 성녀아(聖女兒), 이 둘이 자라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즉 한의 선제 17년(B.C. 57)에 성남아 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었고 성녀아 알영은 왕후가 되었다. 그리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이라 일컬었다. 혹은 '사라'·'사로'라고도 했다. 처음 왕이 계정(鷄井)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국호를 '계림국(鷄林國)이라 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계림이 상서로움을 나타낸 때문이었다. 한편 다른 얘기로는 탈해왕 시대에 김알지(金閼智)를 얻게 될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다고 해서 국호를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신라'란 국호를 정한 것은 후대의 일이다.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뒤 7일 만에 왕의 유체(遺體)가 흩어져 땅으로 떨어지며 알영 왕후도 따라 돌아가셨다고 한다. 서라벌 사람들이 그 흩어져 내린 왕의 유체를 한자리에 모아 장사지내려 했더니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사람들을 쫓아내며 그렇게 못하게 했다. 하는 수 없어 다섯 부분으로 흩어져 놓인 그대로 각기 따로 능을 모았다. 다섯 개의 능, 그래서 오릉이라 했다. 한편 구렁이에 관련된 능이기 때문에 사능이라고도 했다. 담엄사 북쪽에 있는 능이 그것이다.
태자 남해(南解)가 왕위를 계승했다.

 
27) 고본에는 건무 원년이라 하고, 또는 건원 3년 등이라고 하나 모두 잘못이다 여기서 건무는 후한 광무제의 연호로 그 원년은 AD. 25년, 건원은 전한의 무제 연호로 그 3년은 B.C. 138년이 된다.
28) '혁거세'란 아마 향언(鄕言)일 것이다 혹은 '불구내왕(弗?內王)'이라고도 하니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29) 혹은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최초로 입을 열 때 스스로 일컫기를 '알지 거서간 한번 일어나다'고 했으므로 그 말에 따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거서간'은 왕자의 존칭이 되었다.
30) 흑은 용이 나타나 죽기에 그 배를 갈라 동녀를 얻었다고 한다. (출처 : 『삼국유사』 권1 기이, 신라 시조 혁거세왕 )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이 신화(神話)는 『삼국사기』권1에 있는 '신라본기 혁거세 거서간 (赫居世居西干)'조에도 전한다. 이때 '거서간'은 왕이라는 뜻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그리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이 신화는 천강 난생(天降卵生) 신화이다 이런 유형에는 「김수로왕 신화」가 있다. 천제 (天帝)가 직접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빛과 같은 신비스러운 서기(瑞氣)가 땅으로 드리워져 있었다든지, 백마가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든지 하는 것 등으로 혁거세의 본향이 하늘임을 시사하고 있다. 혁거세는 또 「선도산 성모 이야기」에 보면 선도산 성모(聖母)가 낳았다고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신화는 고구려나 부여의 신화처럼 시련이나 투쟁의 과정이 없이 아기 때부터 숭앙을 받았다는 점이 그들 신화와는 다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은 천마(天馬)로서 천신족의 권위의 상징이며,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신화와의 관계는 「단군신화」,「동명왕신화」, 「김수로왕신화」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편 우리 현행 교과서에서는 다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으나 과거 개화기부터 1950년대까지는 초등용 국어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실려있어 그 중요성을 짐작하게 한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1
 
 상고대 왕국에 관한 건국신화의 하나. 신라의 창건시조 신화로 수록되어 있는 문헌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이다. <제왕운기>에는 조금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는 합리주의 사관에 터전을 두고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는 합리주의 사관에 터전을 두고 있는 만큼 이 신화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헌은 아무래도 <삼국유사>를 으뜸으로 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진한 땅의 여섯 마을 우두머리들이 알천상류에 모여 군왕을 정하여 만들고자 하여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양산 기슭의 나정 우물가에 번개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진 흰 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찾아가서 그곳을 살폈더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깨뜨리자 사내아이가 나오매, 경이롭게 여기면서 동천 샘에 목욕시키니 온 봄에서 빛살을 뽑는 것이었다. 이때 새와 짐승이 더불어 춤추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혁거세왕이라 이름 짓고 위호는 거슬한이라고 하였다.
 그즈음에 사람들은 다투어 치하 드리며 배필을 구하라고 하였다. 같은 날에 사량리 알영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 그 왼쪽 겨드랑이로 딸아이를 낳으니 그 용모가 수려하였으나 꼭 입술이 닭부리와 같았다. 이내 월성의 북천에서 미역을 감기자 입부리가 떨어졌다. 궁실을 남산서쪽 기슭에 세우고 두 신성스런 아이를 봉양하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태어났으되, 알이 박과 같으므로 그성을 박씨로 삼았다. 딸아이는 그녀가 태어난 우물 이름을 따서 그 이름으로 삼았다. 그들 나이 열셋이 되매 각기 왕과 왕후로 삼고 나라이름을 서라벌?서벌?사라 혹은 사로라고 일컬었다. 왕이 계정에서 태어났으며 더러 계림국이라고도 하였으나 뒤에 신라로 고쳐서 전하였다. 혁거세왕은 예순한 해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 하늘에 올랐는데 칠일 뒤에 주검이 땅에 떨어져 흩어졌다. 왕후 또한 죽으매, 나라 사람들이 합쳐서 묻고자 하였으나 큰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쫓으면서 방해하였다. 따라서 5체를 다섯 능에 묻고 사릉이라고 이름지었다.
 이상은 <삼국유사>에 따른 것이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보다 훨씬 간략하다. 하지만 줄거리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두드러진 차이라면 전자가 알영을 계룡 왼쪽 겨드랑이에서 탄생하였다고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후자에서는 겨드랑이 바른쪽으로 되어 있는 정도다. 이같은 겨드랑이 밑 애기 탄생은 불교설화를 연상시키고 있으나 다만 왼쪽과 바른쪽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지 여부를 판별하기는 힘들다.
혁거세신화도 다른 건국신화 내지 건국시조신화와 마찬가지로 ‘천신’이 강림하여 나라의 첫 기틀을 잡았다. ‘는 것을 그 기본적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체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고, 그 주체가 성취하는 객체는 건국이란 점에서 다른 건국신화와 다르지 않다.
 그밖에 그 주체가 탄생 내지 출현하기 이전에 전형적인 신비체험의 징후들, 예컨대, 하늘이 내리뻗은 번갯불 같은 이상한 기운, 백마, 자줏빛, 천지의 진동, 일월의 청명 등이 나타나고 있다든지 혹은 그 주체가 알에서 부화한다든지 하는 모티프에 있어서도 다른 건국신화와 마찬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전자의 모티프는 신라왕권을 신성화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있다.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고조선의 시조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혁거세신화 자체의 특색으로는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 신화는 씨족사회가 연합되어 하나의 왕국으로 뭉쳐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혁거세신화는 이미 하늘에서 강림한 여섯 촌장 위에 새로이 군림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통치자를 부각시키고 있다.
둘째, 천신이 강림하되 다른 신화 같이 묏봉우리가 아닌 우물에강림한 점이 특이하다.
신라 시조 탄생의 성역이 산기슭의 우물이란 것은 신라의 종교에 있어 우물이 성역이었음을 뜻하고 있다.
셋째, 동명왕이나 수로왕과 마찬가지로 다 같은 난생인데, 혁거세의 알이 박에견주어져 있는 점이 이 신화의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같은 알과 박 사이의 뒤섞임은 혁거세가 ‘불거네’ 내지 ‘ 내’로 얽혀지면서 그 불 또는 ?이 박과 비슷한 소리였다는 데서 생겨났음직한 것이다. 그렇다고 박이 알과 마찬가지로 ‘신령의 집’ 또는 ‘넋의 그릇’이 될 수있음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넷째, 두 거룩한 아이가 같은날에 신비롭게 태어나 배필로서 짝지워졌다는 저도 혁거세신화임을 생각할 때, 별신굿에서 남녀신령의 강림과 그 짝지어짐이 일어나는 사례를 연상시켜주고 있다.
별신굿의 그 짝어짐이 이른바 신성혼 또는 신들의 혼례라면 그 가장 오래 된 선례를 혁거세신화에서 찾게되는 것이다.
 오늘날에까지 전해진 별신굿에서도 신내림에 수반된 신들의 혼례가 굿의 진행에 있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다섯째, 알영이 탄생할 때 입술이 닭부리처럼 길었다가 뒤늦게 떨어진다는 모티프는 동명왕신화에 등장하는 유화를 연상시키고 있어 매우 흥미롭고, 그만큼 이 신화의 특색있는 부분을 이루고 있다.
 알영의 경우는 계룡탄생의 모티프와 대응되는 것이지만, 동명왕신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있는 것으로 보아 ‘여성의 입사식’ 절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혁거세 주검의 산락은 괴기하다고 할만큼, 다른 건국신화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신화의 특색이다. 해석하기 대단히 어려우나, 이 부분은 시베리아샤머니즘의 성무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체분리의 모티프와 대응된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는데, 앞으로 좀더 자세히 고증해 볼 필요가 있다. (자료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대표적인 남방계 난생(卵生) 신화로 혁거세는 하늘이 낸 알에서 탄생한 신성한 존재로서 6부를 통합하여 새로운 국가(신라)의 임금이 되었으며 그의 왕비 알영도 신성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혁거세와 알영의 출생 과정이 대응되는 내용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혁거세와 알영이 탄생한 곳이 우물가라는 점이 같고, 인간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점이 같고, 목욕을 시킨 후에는 성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태어난 우물가나 목욕을 시킨 시내는 모두 물과 관계가 깊은 지역이다. 예부터 물은 원형적으로 재생(再生), 신생(新生)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세례 의식도 이런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 이 신화를 일종의 상징으로 보고 역사적으로 해석할 때, 이 신화는 천강족(天降族)인 북방 민족이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한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6부의 조상인 6촌장이 모두 단군 신화의 환웅과 같이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다는 점이 이것을 말해 준다. 또 6부의 지도자들이 모여 왕을 추대할 것을 의논한 것으로 보아 이 신화는 부족 사회 내지 부족 연합 사회 형성기의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였다고 논해진다. 그리고 이 신화를 단군과 주몽의 신화적 일대기를 기록한 북방계 신화와 비교할 때, 평화로운 기상이 드러나 있다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즉, 주몽이나 단군은 주체적 활동의 결과로 나라를 세우고 지배자가 되었는 데 비해 혁거세는 방자해진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임무를 띠고 타의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것이다. 이렇게 덕치(德治)를 통해 민심 통합과 사회의 안정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북방계 신화와 달리 투쟁보다는 평화를 중시하는 남방계 신화의 특성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3
 
 이 신화는 다른 건국 신화와 마찬가지로 '천신(天神)의 강림(降臨)에 의한 건국'이라는 것을 그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체(主體)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天神)이고, 그 주체가 성취하는 객체(客體)는 건국이라는 점에서 다른 건국 신화와 다를 바 없다. 그 밖에 탄생 이전에 보이는 신비한 징표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내리 뻗은 이상한 기운, 백마(白馬), 자줏빛, 천지의 진동 등이 나타나고 있다든지, 알에서 부화한다든지 하는 것은 다른 신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혁거세 신화의 특성은 이 신화가 씨족 사회가 연합되어 하나의 왕국으로 뭉쳐 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천신(天神)의 강림(降臨)이 우물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혁거세의 알이 박에 견주어 묘사되고 있다는 점, 신성한 두 아이가 같은 날 태어나 부부로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 알에서의 탄생이 동명왕 신화와 유사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박혁거세신화(朴赫居世神話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 상고대 왕국에 관한 건국신화의 하나이다. 이 신화가 수록되어 있는 문헌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이다. ≪제왕운기≫에는 조금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는 합리주의 사관에 터전을 두고 있는 만큼 이 신화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헌은 아무래도 ≪삼국유사≫를 으뜸으로 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진한(辰韓) 땅의 여섯 마을 우두머리들이 알천 상류에 모여 군왕을 정하여 받들고자 하여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양산 기슭에 있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 번개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진 흰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찾아가서 그곳을 살폈더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깨뜨리자 사내아이가 나오매, 경이롭게 여기면서 동천 샘에 목욕시키니 온몸에서 빛살을 뿜는 것이었다. 이때 새와 짐승이 더불어 춤추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혁거세왕이라 이름을 짓고 위호(位號 : 벼슬의 등급 및 그 이름)는 거슬한(居瑟邯)이라고 하였다.
  그즈음에 사람들은 다투어 치하드리며 배필을 구하라고 하였다. 같은 날에 사량리 알영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 그 왼쪽 겨드랑이로 딸아이를 낳으니 그 용모가 수려하였으나 입술이 꼭 닭의 부리와 같았다.
  이내 월성의 북천에서 미역을 감기자 입부리가 떨어졌다. 궁실을 남산 서쪽 기슭에 세우고 두 신성스러운 아이를 봉양하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태어났으되, 알이 박과 같으므로 그 성을 박씨로 삼았다.
  딸아이는 그녀가 태어난 우물 이름을 따서 그 이름으로 삼았다. 그들 나이 열셋이 되매 각기 왕과 왕후로 삼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서벌·사라 혹은 사로라고 일컬었다. 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으므로 더러 계림국이라고도 하였으나 뒤에 신라로 고쳐서 전하였다.
혁거세왕은 예순한 해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 하늘에 올랐는데 칠 일 뒤에 그 주검이 땅에 떨어져 흩어졌다. 왕후 또한 죽으매, 나라 사람들이 합쳐서 묻고자 하였으나 큰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쫓으면서 방해하였다. 따라서 5체(五體)를 다섯 능에 묻고 사릉(蛇陵)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상은 ≪삼국유사≫에 따른 것이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보다 훨씬 간략하다. 하지만 줄거리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두드러진 차이라면 전자가 알영을 계룡의 왼쪽 겨드랑이에서 탄생하였다고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후자에서는 겨드랑이 바른쪽으로 되어 있는 정도이다.
  이 같은 겨드랑이 밑 애기 탄생은 불교설화를 연상시키고 있으나 다만 왼쪽과 바른쪽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지 여부를 판별하기는 힘들다.
혁거세신화도 다른 건국신화 내지 건국시조신화와 마찬가지로 ‘천신(天神)이 강림하여 나라의 첫 기틀을 잡았다.’는 것을 그 기본적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체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고, 그 주체가 성취하는 객체는 건국이란 점에서 다른 건국신화와 다르지 않다. 그 밖에 그 주체가 탄생 내지 출현하기 이전에 전형적인 신비 체험의 징후들, 예컨대, 하늘이 내리뻗은 번갯불 같은 이상한 기운, 백마, 자줏빛, 천지의 진동, 일월의 청명 등이 나타나고 있다든지 혹은 그 주체가 알에서 부화한다든지 하는 모티프에 있어서도 다른 건국신화와 마찬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전자의 모티프는 신라 왕권을 신성화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점은 혁거세라는 이름 자체가 ‘불거내(弗矩內)’ 곧 ‘세상 밝힘’을 의미하였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고조선의 시조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의 것으로 보인다.
  혁거세신화 자체의 특색으로는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 신화는 씨족 사회가 연합되어 하나의 왕국으로 뭉쳐져 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혁거세신화는 이미 하늘에서 강림한 여섯 촌장 위에 새로이 군림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통치자를 부각시키고 있다.
둘째, 천신이 강림하되 다른 신화와 같이 멧부리가 아닌 우물에 강림한 점이 특이하다. 신라 시조 탄생의 성역이 산기슭의 우물이란 것은 신라의 종교에 있어 우물이 성역이었음을 뜻하고 있다.
셋째, 동명왕이나 수로왕과 마찬가지로 다 같은 난생(卵生)인데, 혁거세의 알이 박에 견주어져 있는 점이 이 신화의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 같은 알과 박 사이의 뒤섞임은 혁거세가 ‘불거내’ 내지 ‘冠내’로 읽혀지면서 그 불 또는 冠이 박(朴)과 비슷한 소리였다는 데서 생겨났음직한 것이다. 그렇다고 박이 알과 마찬가지로 ‘신령의 집’ 또는 ‘넋의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넷째, 두 거룩한 아이가 같은 날에 신비롭게 태어나 배필로서 짝이 지워졌다는 점도 혁거세신화의 특색이다. 이것은 후대의 별신굿의 원류가 상고대 신화임을 생각할 때, 별신굿에서 남녀 신령의 강림과 그 짝 지워짐이 일어나는 사례를 연상시켜 주고 있다.
별신굿의 그 짝 지워짐이 이른바 신성혼(神聖婚) 또는 신들의 혼례라면 그 가장 오래된 선례를 혁거세신화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까지 전해진 별신굿에서도 신내림에 수반된 신들의 혼례가 굿의 진행에 있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다섯째, 알영이 탄생할 때 입술이 닭의 부리처럼 길었다가 뒤늦게 떨어진다는 모티프는 동명왕신화에 등장하는 유화를 연상시키고 있어 매우 흥미롭고, 그만큼 이 신화의 특색 있는 부분을 이루고 있다.
  알영의 경우는 계룡 탄생의 모티프와 대응되는 것이지만, 동명왕신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성의 입사식(入社式)’ 절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혁거세 주검의 산락(散落 :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짐.)은 괴기하다고 할 만큼, 다른 건국신화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신화의 특색이다.
  해석하기 대단히 어려우나, 이 부분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성무식(成巫式)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체 분리의 모티프와 대응된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는데, 좀 더 자세한 고증이 요망된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帝王韻紀, 韓國의 神話(장주근, 成文閣, 1961), 韓國巫俗과 神話硏究(金烈圭, 一潮閣, 1977), 韓國民俗大觀 6-口碑傳承·其他-(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
서기전 69∼서기 4(혁거세거서간 61). 신라의 건국시조. 재위 서기전 57∼서기 4. 신라 박씨(朴氏)의 시조이다. 일반적으로 박혁거세로 지칭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건국설화가 있다.
서기전 69년 3월 1일 당시 사로 6촌(斯盧六村)의 촌장(村長)들이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였다. 그들은 임금을 모시어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할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때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근처에 신기한 빛이 하늘에서 땅에 닿도록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흰말〔白馬〕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커다란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이 하늘로 날아가자 사내아이가 알을 깨고 나왔다. 그런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었다. 이 아이가 박혁거세이다.
알의 크기가 박[瓠]과 같아 성을 박(朴)이라 하였다. 또한, 그 광채로 인해 이름을 혁거세 혹은 불구내(弗矩內)라고 하였다. 고허촌(高墟村) 촌장인 소벌공(蘇伐公, 혹은 蘇伐都利)이 데리고 가 길렀다.
6촌의 촌장들은 신비롭고 기이하게 여겨 존경하였다. 나이 13세가 되자 이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 때 왕의 칭호는 거서간 또는 거슬한(居瑟邯)이라 하였다.
또한, 나라이름을 서나벌(徐那伐)·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 혹은 사라(斯羅)·사로(斯盧)라 하였다. 그리고 서기전 53년(혁거세거서간 5) 알영(閼英)을 비(妃)로 맞아들였다.
이 건국설화는 성읍국가(城邑國家) 단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즉, 6촌장이란 이미 신라의 개국 이전에 나뉘어 살았던 고조선의 유민들이었다. 따라서, 토착 세력을 압도한 유이민(流移民) 박씨 집단을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말〔馬〕 및 천신하강(天神下降)의 모티프로 볼 때, 이들은 말을 토템으로 하는 천신족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혁거세·불구내 등이 광명을 의미한다는 데서도 그들의 태양 숭배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이미 개국연대 이전부터 경주 지역에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개국연대가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前漢 孝宣帝 五鳳 元年 甲子, 서기전 57)라는 설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삼국사기≫가 신라중심의 관점에서 신라의 건국을 고구려나 백제보다 먼저 잡은 것이 그러하다. 둘째, 갑자년이라는 간지(干支)가 참위설(讖緯說)의 갑자혁명설(甲子革命說)에 입각한 듯하기 때문이다.
혁거세는 서기전 37년 경주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또한, 서기전 32년에는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이 단계의 사로국은 대체로 경주평야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서기전 28년 낙랑이 침범해 왔다.
그러나 국경에 있는 백성들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으며 곡식더미가 들에 즐비한 것을 보고 ‘도덕(道德)의 나라’라 하고 스스로 물러갔다. 서기전 20년 마한 왕이 공물(貢物)을 보내지 않는다고 노하자, 그 해에 호공(瓠公)을 마한에 사신으로 보냈다.
서기전 19년 마한왕이 죽자 사신을 보내어 조위(弔慰)하였다. 서기전 5년에는 동옥저에서 보낸 사신이 와서 말 20필을 바치기도 하였다. 승하한 뒤 사릉(蛇陵)에 장사지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韓國古代社會硏究(金哲埈, 知識産業社, 1975), 新羅上代王位繼承硏究(李鍾旭, 嶺南大學校出版部, 1980), 韓國史講座-古代篇-(李基白·李基東 共著, 一潮閣, 1982), 新羅史硏究(今西龍, 國書刊行會, 1933), 新羅史の諸間題(末松保和, 東洋文庫, 1954), 神話と文化史(三品彰英論文集, 平凡社, 1971).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박혁거세 신화의 특성

① 이 신화는 씨족 사회가 연합되어 하나의 왕국으로 뭉쳐 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혁거세 신화는 이미 하늘에서 강림한 여섯 촌장 위에 새로이 군림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통치자를 부각시키고 있다.
② 천신(天神)이 강림하되 다른 신화와 같이 못봉우리가 아닌 우물에 강림한 점이 특이하다. 신라 시조 탄생의 성역이 산기슭의 우물이란 것은 신라의 종교에 있어 우물이 성역이었음을 뜻하고 있다.
③ 동명왕이나 수로왕과 마찬가지로 다 같은 난생(卵生)인데, 혁거세의 알이 박에 견주어져 있는 점이 이 신화의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다.
④ 두 거룩한 어린이가 같은 날에 신비롭게 태어나 배필로서 짝지어졌다는 점도 혁거세 신화의 특색이다. 이것은 후대의 별신(別神)굿의 원류가 상고대 신화임을 생각할 때, 별신굿에서 남녀 신령의 강림과 그 짝지어짐이 일어나는 사례를 연상시켜 주고 있다.
⑤ 혁거세의 주검이 흩어져 떨어진 것은 괴기하다고 할 만큼 다른 건국 신화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신화의 특색이다.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난생(卵生) 신화
 시조신(始祖神)이 알이나 난형(卵形)의 것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신화. 우리 나라 시조신들의 탄생신화 중 가장 많은 형태이다. 동명왕·탈해왕·박혁거세·수로왕 등의 신화가 여기에 속한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와 해모수(解慕漱)가 신이로운 혼인을 한 뒤에 낳은 커다란 알에서 탄생하였으며, 탈해왕도 그의 어머니가 7년간 기도한 끝에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 반면에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줏빛 알에서 태어났다.
또한 수로왕도 구지봉에 내려온 황금 알에서 태어났다. 이와 같은 난생신화는 동남아시아지역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으나 우리 나라의 신화처럼 구체적이지 못하고 또한 원형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난생신화는 시조신들이 모두 알에서 태어나지만 그 원천은 하늘에 두고 있다. 다만, 알의 탄생이 인간에 의한 것이냐 하늘로부터 스스로 내려온 것이냐에 따라, 그 모티프를 자연 천생란적(自然天生卵的)인 것과 인위 인생란적(人爲人生卵的)인 난생 모티프로 나눌 수 있다.
자연 천생란적인 난생 모티프는 박혁거세신화와 김수로왕신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알 속에서 영아로 태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생산력을 가지고 아이를 탄생시키는 알이 성스러운 빛과 더불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곧 이들이 보통 아이가 아니고 천신(天神)의 아들이거나 또는 태양의 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화에서는 인간 생명의 근원을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처음부터 신성시되고 있다. 천생(天生), 그 자체가 신이로운 징후인 것이다.
인위 인생란적인 난생 모티프에 속하는 신화로는, 동명왕신화와 탈해왕신화가 있다. 이 계열의 신화는 시조신들이 인간을 거쳐 알로 탄생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박혁거세나 김수로는 하늘에서 직접 땅으로 내려온 알에서 탄생되지만, 인위 인생적인 난생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동명왕이나 탈해왕은 인간의 몸에서 알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 남녀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 다음 그들의 몸에서 나온 알은 일단 버려진다. 그러나 신이한 징후들에 의하여 그 알은 신성시되고 재수용된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태어난 인물은 곧 결혼과 더불어 왕위에 오르게 되고 죽은 뒤에는 이적을 베푸는 것으로 신화적인 인물의 생애는 공식화되었다.
  이와 같은 난생신화는 모두 건국신화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왔으나, 오랜 신화의 누적적 변화의 최종적인 형태라고 짐작된다. 난생신화의 주인공들은 신이면서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성격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하느님이나 어떠한 절대자의 자손이라고는 하지만 지상에서 투쟁이나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영웅의 면모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들이 신으로 태어났지만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은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韓國의 神話(張籌根, 成文閣, 1962), 檀君神話의 新硏究(金載元, 探求堂, 1976), 韓國의 神話(金烈圭, 一潮閣, 1977), 韓國人의 神話(韓相壽, 文音社,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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