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가물치
가지
간재미
갈근
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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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
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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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황
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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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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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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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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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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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녹용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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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다래
다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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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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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대구
대나무
대발
대추
더덕
더덕주
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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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
도자기
돈육
돈차
돌미역
돔배기
동래파전
동백기름
동충하초
돚자리
돼지
된장
두꺼비
두릅
두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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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마늘
마뿌리
만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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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둥어
매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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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
머루
머루주
메밀차
멸치
명란젓
명설차
명태
모과
모란
모래무지
모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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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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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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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미역
민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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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잎차
백렴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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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자
백조어
백하수오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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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어
벼루
병어
법주
보골지
보리
복령
복분자
복숭아
복어
부들
부자
부채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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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비빔밥
비자
뽕나무
사과
사슴
산나물
산삼
삼림욕
산수유
살구
삼릉
삼배
삼치
상합
상황버섯
새우
새우젓
생강
석결명
석곡
석류
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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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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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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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
송이버섯
송화가루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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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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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채
숭어
승검초
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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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
오골계
오정주
오죽
오징어
옥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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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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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
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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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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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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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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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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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직녀설화
15-10-23 11:37

직녀(織女)는 천제(天帝)의 손녀라고도 전해지며, 서왕모(西王母)의 외손녀라고도 전해진다. 직녀는 은하(銀河)의 동쪽에 살면서 베틀 앞에 앉아 신기한 실로 층층이 아름다운 구름을 수놓은 아름다운 베를 짰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시간과 계절이 바뀜에 따라 색깔이 달라져 '천의(天衣)'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늘을 위해 만든 의상이었다. 하늘도 인간처럼 옷을 입어야 하는데, 비록 씻은 듯이 깨끗한 푸른 여섯 명의 젊은 선녀들이 이러한 일들을 맡아 하고 있었다. 이 여섯 선녀들은 모두 직녀의 자매들로, 하늘 나라에서 뛰어난 길쌈 솜씨를 지니고 있었지만, 직녀가 그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하였다.

 티 없이 맑고 야트막한 은하(銀河)를 사이에 두고 인간 세계가 있었다. 그곳에는 견우(牽牛)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형수의 모진 학대를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형수에게 쫓겨나다시피 하여 분가(分家)를 하였는데, 받은 것이라곤 고작 늙은 소 한 마리 뿐이었다.

 견우는 늙은 소 한 마리를 의지하여 가시밭 황무지를 일구어 농사를 짓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한두 해가 지나자 조그만 집도 마련되고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식구라고 해야 말할 줄 모르는 늙은 소를 제외하면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집에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하루 하루 지내기가 여간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늙은 소가 갑자기 말문이 트여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소는, 직녀와 다른 선녀들이 은하에 목욕하러 올 터이니 목욕하는 틈을 노려 직녀의 옷을 감춰 두면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 견우는 늙은 소가 말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소가 일러 준 대로 따르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은밀히 은하로 다가가 갈대가 우거진 숲 속에 숨어 직녀와 다른 선녀들이 목욕하러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직녀와 다른 선녀들이 목욕하기 위해 은하에 모습을 나타냈다. 선녀들은 구름처럼 가벼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는 이내 맑은 은하의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 순간 파란 수면은 하얀 연꽃들이 만발한 듯 아름다웠다. 이때 견우는 갈대 숲에서 뛰쳐나와 파란 풀로 뒤덮여 있는 강가에 벗어 놓은 옷더미 중에서 직녀의 옷을 몰래 집어 왔다. 그 바람에 놀란 선녀들은 황망히 자신들의 옷을 추슬러 입고는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이제 은하에는 옷이 없어 달아날 수 없는 직녀만이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이때 견우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 아내가 되어 준다고 약조하면 옷을 돌려 주겠소."

 직녀는 부끄러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가슴을 기다란 머리카락으로 가리며 고개를 떨군 채 머리를 끄덕였다.

 비록 무모하고 거칠게 나오긴 했지만 매우 용감하게 구애를 한 이 젊은이에게 마음이 끌려 함빡 반하고 만 것이리라. 그리하여 직녀는 늙은 소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견우의 아내가 되었다.

 둘은 결혼을 하여 어엿한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아내는 집안에서 열심히 베를 짜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얼마 후 두 부부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百年偕老)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았으랴. 뜻하지 않게 지상의 견우가 하늘 나라의 직녀와 함께 부부가 되어 산다는 소식은 천제(天帝)와 서왕모(西王母)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천제와 서왕모는 몹시 진노하였다. 즉시 천신(天神)을 보내 죄를 추궁하기 위해 직녀를 하늘 나라로 잡아들이도록 엄명을 내렸다. 서왕모는 혹시나 천신(天神)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 두려운 나머지 그녀 자신이 직접 내려와 동정을 낱낱이 살폈다.

 직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지상에 남겨 두고 찢어지는 아픔을 이기지 못한 채 천신에게 이끌려 하늘 나라로 붙잡혀 가야만 했다. 견우는 또 어떠한가. 사랑하는 아내와 느닷없이 생이별을 해야 하는 비통함을 그 어디에다 비길 수 있을까. 그는 즉시 두 어린 아들과 딸을 바구니에 담고 밤새도록 아내가 사라진 쪽을 향해 달렸다. 이제 그의 앞에는 그지없이 맑고 야트막한 은하가 있을 뿐이었다. 이 은하를 건너기만 하면 사랑하는 직녀가 끌려간 하늘 나라에 당도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 지상과 하늘 나라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은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은하는 어느 새 파란 창공(蒼空)에 높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은하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정황을 살피고 있던 서왕모가 신통력을 써서 인간 세계와 하늘 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그지없이 맑고 야트막하여 누구든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이 은하를 하늘 높이 걷어 올려 버렸던 것이다.

 견우는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쳤다. 어린 두 아들과 견우 셋은 목놓아 슬피 울었다. 그때 외양간에 매여 있던 늙은 소가 다시 말문을 열고 말을 하였다.

 "견우, 견우! 나는 이제 곧 죽게 될 거예요. 내가 죽거든 가죽을 벗겨 그것을 걸치십시오. 그러면 하늘 나라[천당(天堂)]에 갈 수 있을 거예요."

 늙은 소는 말을 마치자 이내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견우는 늙은 소의 말대로 가죽을 벗겨 몸에 걸친 후 두 아들 딸을 멜대에 메고 하늘 나라로 떠났다. 멜대의 양쪽 끝에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두 아이들의 무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거름을 퍼 내는 바가지를 넣었다.

견우는 하늘로 올라 영롱하게 빛나는 뭇 별들 사이를 마치 바람처럼 누비고 다녔다. 은하가 저 멀리 바라보였다. 은하 저 건너편에 있는 직녀가 금세라도 눈앞에 보일 것만 같았다. 견우는 기쁨에 들떠 있었고, 어린 아이들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흔들며 기뻐 연방 외쳤다.

"엄마, 엄마!"

 견우가 은하에 다다라 은하를 막 건너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높은 하늘 위에서 여인의 커다란 손이 불쑥 내려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왕모의 손이었다. 그녀는 다급하여 머리에 꽂은 비녀를 얼른 뽑아 은하를 따라 금을 홱 그었다. 그러자 맑고 야트막하던 은하는 거센 물결이 넘실대는 깊은 강인 천하(天河)가 되고 말았다.

 견우와 아이들은 이렇게 깊은 강을 대하게 되니 비오듯 눈물을 흘릴 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아빠, 거름을 퍼 내는 이 바가지로 은하[銀河]의 물을 모두 퍼내 버려요."

 천진스런 어린 딸이 눈물을 훔치며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은하[銀河]의 강물을 모두 퍼내자."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견우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바가지를 들고 은하[銀河]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견우가 퍼내다 지치면 어린 두 아들과 딸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버지를 도왔다. 이렇게 끈질기게 깊은 애정은 마침내 위엄으로 가득 찬 천제(天帝)와 서왕모(西王母)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음을 녹이게 되었다. 그래서 매년 음력 7월 7일 칠석날에 한 차례씩 둘이 상봉(相逢)하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견우와 직녀가 상봉할 때에는 수많은 까치들이 날아와 깊은 강물 위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 이들 부부는 까치들이 놓은 다리[鵲橋] 위에서 만나 서로의 애틋한 정을 나누게 되었다. 직녀는 견우를 보는 순간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대지 위에는 가랑비가 내리곤 하였다. 그러면 부녀자들은, '직녀 아가씨가 또 재회의 눈물을 흘리는 게로구먼."하고 입을 모아 이를 동정하였다.

 하늘 나라 임금에게 딸 하나가 있었다 마음씨 곱고 얼굴도 훤하게 생긴 그의 이름은 직녀였다. 직녀는 베를 튼튼하게 잘 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임금님은 자기 딸의 사윗감을 골라주려고 자기네 별뿐 아니라 다른 별나라에도 배필을 구한다고 널리 알렸다. 그런 끝에 임금님의 마음에도 들고 직녀의 마음에도 드는 신랑감이 나타났다. 소 치는 사람인 견우였다. 결혼한 견우와 직녀는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임금님은 처음엔 이 둘을 무척 사랑했으나 점점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직녀는 베짜기도 잊은 채 견우를 따라다니며 놀기에 바빴고 견우도 빈둥빈둥 놀며 소를 몰고 대궐 꽃밭을 돌아다녔다. 혼인한 이들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잊고 게을러지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으나 둘은 행복에 취한 나머지 다시 게을러지곤 하였다. 마침내 옥황상제는 분노하여 이들을 영원히 떼어놓을 결심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임금님의 화가 폭발했다.
 "너희들 꼴도 보기 싫다. 이 대궐에서 썩 나가라. 견우는 동쪽으로 가고 직녀는 서쪽으로 가라. 너희는 서로 헤어져 살아라. 단 1년에 한번 7월 7일이면 서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볼 수는 있다."
 이렇게 해서 견우와 직녀는 1년 동안 서로 그리워하다가 7월 7일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은빛 강물은 너무 깊고 멀었다. 가슴에 찬 이야기도 나눌 수 없어 둘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그러다 보니 땅 위에 홍수가 나서 짐승들이 살 수 없을 정도였다.
 땅 위의  짐승들은 모여 의논을 했다.
 "자,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지 못해 울기 때문에 홍수가 난다. 이들을 만나게 해주어야 비도 안 오겠지. 날개가 튼튼하고 높이 날 수 있는 새들이 올라가 두 사람이 은하수를 건널 수 있게 해주자."
 이렇게 해서 땅 위의 모든 까치와 까마귀는 칠석날 은하수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자기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가 만나도록 했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가 건너는 다리를 오작교라고 한다. 이후 칠월칠석에 큰 비가  오지는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이 반가워 흘리는 눈물 때문에 비가 조금씩 내렸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요점 정리

이완근 갈래 : 설화(중국과 한국의 설화)

이완근 작가 : 미상

이완근 연대 : 미상 

이완근 성격 : 유래담(由來談), 서사적

이완근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기 - 직녀와 견우에 얽힌 이야기

   승 - 옷감 짜는 여신인 직녀

   전 - 견우와 직녀의 혼인

   결 - 견우와 직녀의 이별과 만남

이완근 설화의 구조 : 지상의 주인공들은 대개 천상의 인물들과 일정한 관련을 맺을 때 설화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동물인 소가 인간의 말을 하는 것도 천상적인 것을 그 안에 투영시킨 결과이다. 소는 대개의 경우 천상으로 향하는 길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즉 그것은 ‘도(道)’ 의 상징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소의 안내로 인해 견우는 직녀를 만나고, 나중에는 그녀가 있는 천상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이완근 제재 : 견우와 직녀의 사랑, 별 자리 이야기

이완근 주제 : 칠월 칠석에 대한 유래,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이완근 작품 개관 : ‘견우와 직녀’ 는 중국과 한국에 널리 퍼져 있는 설화이다. 이 설화는 농경민의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를 치는 남성과 베를 짜는 여성의 역할 분담은 바로 그러한 농경 생활을 배경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이완근 특징 : 농경 민족 문화의 설화로 '소'와 '베'라는 생활 수단이 소재로 드러난다는 점과 대개의 설화가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환상적인 요소가 서사를 이끌어 가는 중심 역할을 한다. 고대 설화는 대부분 이 땅의 일들이 하늘의 일과 관련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궁극적인 창조적 실체와 영원한 존재의 입김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설화나 고전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완근 줄거리 : 옛날 옥황 상제의 따님인 직녀와 소를 치는목동인 견우는 첫눈에 반해 혼인을 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나머지 자신의 일에 소홀하여 옥황 상제의 분노를 사게 된 견우는 은하수 밖으로 추방된다. 옥황 상제는 1년에 딱 한 번 음력 7월 7일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게 해주었는데, 이 때 까치가 날아와 하늘의 다리(오작교)를 만들어 주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내용 연구

직녀(織女)는 천제(天帝)의 손녀라고도 전해지며, 서왕모(西王母 : 중국의 산해경에 따르면, 그녀는 서쪽 지방의 곤륜산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람 얼굴에 호랑이 이빨, 표범의 꼬리를 신인이다.)의 외손녀라고도 전해진다. 직녀는 은하(銀河)의 동쪽에 살면서 베틀 앞에 앉아 신기한 실로 층층이 아름다운 구름을 수놓은 아름다운 베를 짰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시간과 계절이 바뀜에 따라 색깔이 달라져 '천의(天衣)'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늘을 위해 만든 의상이었다. 하늘도 인간처럼 옷을 입어야 하는데, 비록 씻은 듯이 깨끗한 푸른 여섯 명의 젊은 선녀들이 이러한 일들을 맡아 하고 있었다. 이 여섯 선녀들은 모두 직녀의 자매들로, 하늘 나라에서 뛰어난 길쌈(자연 섬유를 원료로 하여 피륙을 짜는 일) 솜씨를 지니고 있었지만, 직녀가 그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하였다.

티 없이 맑고 야트막한 은하(銀河)를 사이에 두고 인간 세계가 있었다.(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서로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신의 세계의 이상에 다가서고자 한 고대인들의 사고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곳에는 견우(牽牛)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형수의 모진 학대를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형수에게 쫓겨나다시피 하여 분가(分家)를 하였는데, 받은 것이라곤 고작 늙은 소 한 마리 뿐이었다.

견우는 늙은 소 한 마리를 의지하여 가시밭 황무지를 일구어 농사를 짓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한두 해가 지나자 조그만 집도 마련되고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식구라고 해야 말할 줄 모르는 늙은 소를 제외하면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집에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하루 하루 지내기가 여간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늙은 소(견우와 직녀의 인연을 맺게 하고 문제를 해결해 줌)가 갑자기 말문이 트여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아닌가(전기적이고 동화적인 요소). 소는, 직녀와 다른 선녀들이 은하에 목욕하러 올 터이니 목욕하는 틈을 노려 직녀의 옷을 감춰 두면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 견우는 늙은 소가 말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소가 일러 준 대로 따르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은밀히 은하로 다가가 갈대가 우거진 숲 속에 숨어 직녀와 다른 선녀들이 목욕하러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직녀와 다른 선녀들이 목욕하기 위해 은하에 모습을 나타냈다. 선녀들은 구름처럼 가벼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는 이내 맑은 은하의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 순간 파란 수면은 하얀 연꽃들이 만발한 듯 아름다웠다. 이때 견우는 갈대 숲에서 뛰쳐나와 파란 풀로 뒤덮여 있는 강가에 벗어 놓은 옷더미 중에서 직녀의 옷을 몰래 집어 왔다. 그 바람에 놀란 선녀들은 황망히 자신들의 옷을 추슬러 입고는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이제 은하에는 옷이 없어 달아날 수 없는 직녀만이 오도카니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남아 있었다. 이때 견우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 아내가 되어 준다고 약조하면 옷을 돌려 주겠소."(남성우위 사회의 사고 방식)

직녀는 부끄러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가슴을 기다란 머리카락으로 가리며 고개를 떨군 채 머리를 끄덕였다.

비록 무모하고 거칠게 나오긴 했지만 매우 용감하게 구애를 한 이 젊은이에게 마음이 끌려 함빡 반하고 만 것이리라. 그리하여 직녀는 늙은 소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견우의 아내가 되었다.

둘은 결혼을 하여 어엿한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아내는 집안에서 열심히 베를 짜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얼마 후 두 부부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百年偕老)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았으랴. 뜻하지 않게 지상의 견우가 하늘 나라의 직녀와 함께 부부가 되어 산다는 소식은 천제(天帝)와 서왕모(西王母)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천제와 서왕모는 몹시 진노하였다. 즉시 천신(天神)을 보내 죄를 추궁하기 위해 직녀를 하늘 나라로 잡아들이도록 엄명을 내렸다(견우의 첫 번째 시련). 서왕모는 혹시나 천신(天神)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 두려운 나머지 그녀 자신이 직접 내려와 동정을 낱낱이 살폈다.

직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지상에 남겨 두고 찢어지는 아픔을 이기지 못한 채 천신에게 이끌려 하늘 나라로 붙잡혀 가야만 했다. 견우는 또 어떠한가. 사랑하는 아내와 느닷없이 생이별을 해야 하는 비통함을 그 어디에다 비길 수 있을까. 그는 즉시 두 어린 아들과 딸을 바구니에 담고 밤새도록 아내가 사라진 쪽을 향해 달렸다. 이제 그의 앞에는 그지없이 맑고 야트막한 은하가 있을 뿐이었다. 이 은하를 건너기만 하면 사랑하는 직녀가 끌려간 하늘 나라에 당도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 지상과 하늘 나라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은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은하는 어느 새 파란 창공(蒼空)에 높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견우의 두 번째 시련). 이제 은하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다.(신은 자신의 세계에 들어오려는 인간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말) 정황을 살피고 있던 서왕모가 신통력을 써서 인간 세계와 하늘 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그지없이 맑고 야트막하여 누구든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이 은하를 하늘 높이 걷어 올려 버렸던 것이다.

견우는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쳤다. 어린 두 아들과 견우 셋은 목놓아 슬피 울었다. 그때 외양간에 매여 있던 늙은 소가 다시 말문을 열고 말을 하였다.

"견우, 견우! 나는 이제 곧 죽게 될 거예요. 내가 죽거든 가죽을 벗겨 그것을 걸치십시오. 그러면 하늘 나라[천당(天堂)]에 갈 수 있을 거예요."

늙은 소는 말을 마치자 이내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소'는 인간의 능력으로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이루기 위한 상상력의 결과로 등장했으며, 서사적 이야기의 해결을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견우는 늙은 소의 말대로 가죽을 벗겨 몸에 걸친 후 두 아들 딸을 멜대에 메고 하늘 나라로 떠났다. 멜대의 양쪽 끝에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두 아이들의 무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거름을 퍼 내는 바가지를 넣었다.

견우는 하늘로 올라 영롱하게 빛나는 뭇 별들 사이를 마치 바람처럼 누비고 다녔다. 은하가 저 멀리 바라보였다. 은하 저 건너편에 있는 직녀가 금세라도 눈앞에 보일 것만 같았다. 견우는 기쁨에 들떠 있었고, 어린 아이들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흔들며 기뻐 연방 외쳤다.

"엄마, 엄마!"

견우가 은하에 다다라 은하를 막 건너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높은 하늘 위에서 여인의 커다란 손이 불쑥 내려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왕모의 손이었다. 그녀는 다급하여 머리에 꽂은 비녀를 얼른 뽑아 은하를 따라 금을 홱 그었다. 그러자 맑고 야트막하던 은하는 거센 물결이 넘실대는 깊은 강인 천하(天河)가 되고 말았다.(견우의 마지막 시련)

견우와 아이들은 이렇게 깊은 강을 대하게 되니 비오듯 눈물을 흘릴 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아빠, 거름을 퍼 내는 이 바가지로 은하[銀河]의 물을 모두 퍼내 버려요."

천진스런 어린 딸이 눈물을 훔치며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은하[銀河]의 강물을 모두 퍼내자."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견우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바가지를 들고 은하[銀河]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견우가 퍼내다 지치면 어린 두 아들과 딸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버지를 도왔다.[우공이산(愚公移山) :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 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의 비유로 마부작침[磨斧作針(鍼)], 수적천석(水適穿石), 적토성산(積土成山) 등의 유사어가 있다.] 이렇게 끈질기게 깊은 애정은 마침내 위엄으로 가득 찬 천제(天帝)와 서왕모(西王母)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음을 녹이게 되었다[인간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지성감천(至誠感天 : 지극한 정성으로 어려운 일도 이루어지고 풀림.)]. 그래서 매년 음력 7월 7일 칠석날에 한 차례씩 둘이 상봉(相逢)하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견우와 직녀가 상봉할 때에는 수많은 까치들이 날아와 깊은 강물 위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까치와 같은 동물도 견우와 직녀의 상봉에 호응하였음을 말함) 이들 부부는 까치들이 놓은 다리[鵲橋] 위에서 만나 서로의 애틋한 정을 나누게 되었다. 직녀는 견우를 보는 순간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대지 위에는 가랑비가 내리곤 하였다. 그러면 부녀자들은, '직녀 아가씨가 또 재회의 눈물을 흘리는 게로구먼."하고 입을 모아 이를 동정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우공이산(愚公移山) :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 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의 비유. [출전]《列子》〈湯問篇〉愚 : 어리석을 우. 公 : 귀 공. 移 : 옮길 이. 山 : 메 산. [유사어] 마부작침[磨斧作針(鍼)], 수적천석(水適穿石), 적토성산(積土成山). 춘추 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 : 이름은 어구(禦寇)]의 문인들이 열자의 철학 사상을 기술한《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큰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너희들이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 거요."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知未)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녕'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 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에는 현재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지도 방법


· 신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 설화는 신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한 사람의 작가가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창조해 낸 작품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신화적인 세계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이쪽 언덕과 반대편의 언덕, 그리고 둘 사이에 가로놓인 강이 등장한다. ‘견우와 직녀’ 설화의 경우, 견우가 어떤 조력자에 의하여 반대편 언덕에 닿는데, 이것은 단순히 직녀라는 한 여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은하를 하늘 높이 던져버릴 수 있는 무서운 서왕모가 살고 있는 세계, 신비하고 성스러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찾아볼 수는 없지만 내면에서 꿈꾸고 있는 세계를 상징하면서 작품을 이해하도록 한다.


·같은 자연현상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해 보도록 한다.


 이 설화는 작품 속의 신화적인 상상력이 명백한 ‘사실’ 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칠월칠석 날 견우성과 직녀성 두 별이 만나고 비가 오는 것이 ‘사실’ 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다르게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문학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도한다.


학습 활동 풀이


1 이 설화의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견우와 직녀의 사랑에 대해 각자가 느낀 생각을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오늘날 학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직녀는 옷이 없어져서 견우와 강제로 결혼한 것이고, 견우는 외로워서 직녀를 잡아 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설화가 보여 주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이 과정을 통해 견우와 직녀의 관계에 현대적인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연애 에피소드가 첨가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납치 사건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도 있다.


예시답안 :


 견우와 직녀는 티없이 순수한 사랑을 이룬 남녀 한 쌍이다. 하지만 이 설화는 사랑을 이루게 된 과정이나 필연성이 충분히 제시되어 있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하다.


(2) 오늘날 현대적인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설화의 사랑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신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1)에서와 같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현대적인 관점으로 설화의 내용을 너무 쉽게 평가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이 활동을 통하여 설화 속의 사랑과 현대적인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도록 한다.


예시답안 :


 현대적인 사랑에는 상대방의 어떤 점에 매혹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렬한 요인이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설화에는 그러한 점이 설명되어 있지 않다. 현대적인 사랑이 서로 간의 관능적, 혹은 정신적인 어떤 부분의 강렬한 매혹에 초점이 놓이는 것은, 개인의 자아를 독립적으로 용인하는 조건에서이다. 우리는 설화 속의 견우와 직녀를 이러한 관점에서 재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견우는 농촌 총각으로, 직녀는 궁중의 귀족이나 왕족쯤으로 말이다. 그들은 이러한 외적 제약과 조건을 뛰어 넘어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면서 서로 매혹된 것이다.


2. 소치는 견우와 베짜는 직녀 이야기에는 농경 민족의 생활 양식이 들어 있다. 이 이야기 틀을 그대로 현대 도시 생활 속으로 옮겨 와서 단편 소설로 꾸며 본다고 할 때, 견우와 직녀를 어떠한 인물로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임금의 역할도 현대 사회에 맞게 바꾸어 패러디해 보자.


이끌어 주기 : 견우와 직녀의 직업이 농경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학생들의 삶에 적용해 보도록 하는 활동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좀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서왕모나 임금, 심지어 직녀와 목욕하던 자매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시킨다. 이러한 시점의 변화에 따라 생기는 다양한 변화를 통하여 글쓰기의 묘미, 자신만의 문학을 만들어 가는 재미, 패러디의 유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한다.

 천제와 서왕모는 ‘금지하는 아버지’를 상징하는데, 이처럼 학생들이 금지하는 사람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 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여자 친구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법이나 정부, 경찰, 혹은 교사가 될 수도 있다.


예시답안 :


 견우는 가난한 샐러리맨으로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에 지쳐 있다. 어느 날 견우는 길에서 우연히 교통 사고를 목격한다. 검은색 자가용 하나가 여자를 치고 달아난 것이다. 견우는 쓰러진 여자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엉겁결에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된다. 여자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외상은 없었지만 기억 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자기가 누구이며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이 여자는 견우만을 의지하여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견우와 직녀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견우의 도움으로 어렵게 가족을 찾게 된 직녀. 그런데 알고 보니 직녀는 견우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 딸이었다. 직녀의 아버지는 직녀를 견우와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직녀는 이미 견우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3. 이 설화를 현대 희곡으로 바꾸어 연극으로 꾸며 보자. 이번에는 배역들을 그대로 두고, 대사만 현대적으로 바꾸어 보자.


이끌어 주기 :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갈래를 희곡으로 바꿀 때, 특히 강조되는 것은 인물의 성격과 인물들 간의 갈등이다. 우선 학생들이 견우와 직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신비롭지만 수동적인 인물인 직녀를 자신의 입장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비판해 볼 수 있도록 한다. 학생들이 각각의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배역 안에 자신의 입장이 충분히 녹아 있을 때, 상투적인 어투를 버릴 수 있고 이때부터 자연스러운 현대어 대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예시답안 :


 

견우가 소를 이끌고 풀밭을 걸어가다가 잠깐 멈추어 선다.

견우 : (소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황무지를 일구느라 힘들었지? 네 덕분에 집도 마련하고 먹고 사는 시름은 놓았구나. 네 덕분에 혼자 사는 것도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았어. 정말 고맙구나.

소 : (고개를 흔들며) 음메, 아아·····, 주인님.

견우,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소 : (어눌한 소리로) 아, 아. 이제야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물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챙겨 주시고, 저를 가족처럼 정성스럽게 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제게 사람처럼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말을 배워 사람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견우 : (여전히 놀란 모습)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이해와 감상

 견우와 직녀가 한 해에 한 번 만나게 된다는 칠월칠석의 유래설화. 시기적으로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두 별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그 위치가 매우 가까워지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로부터 설화가 생겨났다.

 이 설화의 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후한(後漢) 때에 만들어진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에 있는 화상석(怜像石 : 장식으로 신선, 새, 짐승 따위를 새긴 돌)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전한(前漢)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이 설화의 가장 오래된 예는 진(晉)나라 종름(宗侖)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 408년(광개토왕 18)에 축조된 대안 덕흥리(大安德興里 :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 고구려고분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사≫ 공민왕조에 왕이 몽고인 왕후와 더불어 안뜰에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낸 기사가 처음 보인다. 이 설화는 신앙과 함께 우리 나라 전국에 전승되어 있다.

 원래 직녀는 하느님〔天帝〕의 손녀로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했으므로, 하느님이 매우 사랑하여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매우 게을러졌으므로 하느님은 크게 노하여 그들을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다시 떨어져 살게 하고, 한 해에 한 번 칠월칠석날만 같이 지내도록 했다.

 은하수 때문에 칠월칠석날도 서로 만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지상의 까막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다리를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즉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칠석이 지나면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져 돌아온다고 한다.

또한, 이날 오는 비는 '칠석우(七夕雨)'라 하여, 그들이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며, 그 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전한다.

 견우직녀설화는 예로부터 동양권에서 무수히 많은 문인들의 시문의 주제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일찍이 고려 때 이인로(李仁老)의 〈칠석우〉, 이제현(李齊賢)의 〈칠석〉, 이곡(李穀)의 〈칠석소작 七夕小酌〉, 조선시대 정철(鄭澈)의 〈차광한루운 次廣寒樓韻〉, 김정희의 〈칠석칠률 七夕七律〉, 여류 시인들의 것으로 이옥봉(李玉峯)의 〈칠석가〉, 삼의당(三宜堂)의 〈칠월칠석〉, 운초(雲楚)의 〈강루칠석 江樓七夕〉, 정일헌(貞一軒)의 〈칠석〉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춘향전〉을 비롯한 여러 고전소설, 〈규원가 閨怨歌〉·〈해조가 諧嘲歌〉·〈과부가〉·〈농가월령가〉·〈화조가〉·〈사미인곡〉과 같은 가사, 또는 시조·민요들에도 견우직녀설화가 주제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이 설화는 칠월칠석의 민속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야기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荊楚歲時記, 朝鮮常識問答-風俗篇-(崔南善, 東明社, 1947), 牽牛織女聚會說話의 文學的展開(金錫夏, 국어국문학 49·50, 1970).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이 설화는 칠월 칠석에 관한 유래 설화이다. 음력 칠월 칠석이 가까워오면 낮은 곳에 머물러있던 독수리자리의 견우성(牽牛星)이 하늘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초여름부터 떠있어 청초하게 빛나던 거문고자리의 직녀성(織女星)과 함께 아름답게 빛나게 된다. 이러한 별의 움직임을 보고 상상하여 만든 이야기가 바로 [견우와 직녀]라고 할 수 있다. 이 설화의 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후한(後漢) 때에 만들어진 효당산의 석실(石室) 속에 있는 화상석(畵像石)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전한(前漢)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409년에 축조된 평양 부근의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으며, [고려사(高麗史)] 공민왕(恭愍王)조에 왕이 몽고인 왕후와 함께 안뜰에서 견우와 직녀의 제사를 지낸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설화는 중국에서 발생하여 고구려 이전에 우리 나라로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래 직녀는 하느님의 손녀로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했으므로, 하느님이 매우 사랑하여 은하수 건너편에 사는 목동 견우(牽牛)와 혼인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매우 게을러졌으므로 하느님은 크게 노하여 그들을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다시 떨어져 살게 하고, 한 해에 한 번 칠월 칠석날만 같이 지내도록 했다. 은하수 때문에 칠월 칠석날도 서로 만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지상의 까막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 다리를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즉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칠석이 지나면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져 돌아온다고 한다. 또한, 이 날 오는 비는 '칠석우(七夕雨)'라 하여, 그들이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며, 그 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전한다.

 견우 직녀 설화는 동양권에서 많은 문인들이 시문(詩文)의 주제로 사용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견우직녀(牽牛織女)

 중국의 신화전설 속에 나오는 남녀 1쌍의 신. 추측컨대 원래는 견우가 남자일인 농경을, 직녀가 여자일인 양잠방직을 상징하여, 신화적 우주관 속의 이원구조를 이루는 1쌍의 신격이었던 것이 성좌에도 반영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별이름은 견우가 알타이르(Altair), 직녀가 베가(Vega)이다. 견우성과 직녀성의 만남을 노래한 예는 이미 《시경(詩經)》의 <소아(小雅)> <대동편(大東篇)>에도 보이는데, 그 배후에 어떠한 전승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대(漢代)의 <고시(古詩) 19수(十九首)>에도 견우와 직녀의 노래가 나오는데, 당시 이미 양자 사이에 연애와 이별 이야기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3∼6세기)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나 소설잡기류(小設雜記類)》 속에도 칠석 행사와 관련된 견우직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대략의 내용은, 그들은 천제(天帝)의 주선으로 결혼했는데, 사이좋게만 지내고 일을 게을리하였기 때문에 천제의 노여움을 사서, 서로 떨어져 천한(天漢;은하수) 양안에 있게 되었고, 1년에 한 번, 칠석날 밤에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날 때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걸어 준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은하수를 넘는다고 되어 있다. 견우직녀 설화는 예로부터 동양권에서 수많은 문인들의 시문의 주제로 사용되어 왔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칠석날

 시기적으로 칠월 칠석이 되면 두 별(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위치가 매우 가까워지는데 이로부터 설화가 생겨났다. 설화 발생은 중국 후한(後漢)때 만든 효당산(孝堂山)석실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인다. 따라서 전한(前漢)이전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양 덕흥리 고구려 고분 벽화에 견우 직녀가 그려져 있다 한다. 죄를 지어 칠월 칠석 하루밖에 만나지 못하는 견우 직녀를 불쌍히 여긴 까막 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 주었는데 이를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칠석이 지나면 까막 까치의 머리가 모두 벗겨진 채 돌아온다고 한다. 또 이 날 오는 비는 칠석우(七夕雨)라 하여 그들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며 그 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한다. 칠석날에 부르는 노래를 칠석요(七夕謠)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칠월칠석 오늘밤은 은하수 오작교에 / 견우직녀 일년만에 서로반겨 만날세라 / 애야애야 애야좋네 칠석놀이 좀더좋네 / (후렴) /  /닭아닭아 우지말아 네가울면 날이새고 / 날이새면 임은간다 이제다시 이별하면 / 일년 삼백 육십일에 임그리워 어이살지 / 우지마라 우지마라 / 원수로다 원수로다 은하수가 원수로다” 이와 같이 애틋한 사랑 애기의 정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유만공원 저, 임기중 해설, ‘우리 세시 풍속의 노래’)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견우직녀 설화(牽牛織女說話)

 견우성과 직녀성에 얽힌 설화로 칠월칠석(七月七夕)에 견우와 직녀가 1년에 1번 만나게 된다는 설화로서, 칠월칠석이 되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가까워지는 자연현상의 관찰에서 생긴 듯하다. 동양에 널리 알려진 설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기록된 설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양(梁)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409년 축조된 평양 덕흥리(德興里) 고구려 고분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직녀가 그려져 있다. 직녀는 옥황상제의 손녀로 목동인 견우와 혼인했다. 그러나 이들은 혼인한 뒤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다. 옥황상제는 그 벌로 두 사람을 떨어져 살게 하고 1년에 1번만 만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은하수가 그들을 가로막아 만날 수 없게 되자, 까마귀와 까치들이 머리를 맞대어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 다리를 까마귀와 까치가 이었다 해서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이날 오는 비, 곧 칠석우(七夕雨)는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 한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견우와 직녀

  옛날, 하늘 나라에 직녀라는 하늘 나라 임금님의 딸이 있었습니다. 직녀는 마음씨가 비단결같을 뿐 아니라 얼굴도 아주 예쁘게 생겼습니다. "찰그락, 찰그락" 직녀의 베 짜는 솜씨는 따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날마다 열심히 베를 짰습니다. 너무 베를 잘 싸서 사람들은 직녀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베만 잘 짜는 것이 아니고, 음식 솜씨도 뛰어나 하늘 나라 궁궐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공주님이었습니다.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베를 짜던 직녀는 향기로운 봄빛 향내에 취하여 베틀에서 일어섰습니다. 

 "참 좋은 날씨로구나. 나와 함께 나들이를 하지 않겠느냐?" "예, 공주님." 직녀는 선녀들과 궁궐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디선가 봄빛 향기가 코를 찌르고 새들은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넓은 들판에 이르렀을 때, 소를 몰고 나온 한 청년과 마주쳤습니다.  몸집이 당당하고, 아주 잘생긴 젊은이었습니다. '저토록 멋진 남자는 처음 보았다. 도대체 어디 사는 누구일까?' 직녀는 이렇게 감탄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젊은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바로 견우였습니다. 견우란 이름은 소를 모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견우도 또한 직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두 젊은이는 서로 한눈에 반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뒤, 견우와 직녀는 남몰래 만나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드디어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하늘 나라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자, 임금님은 펄쩍 뛰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뭐라구, 하늘 나라 공주가 소몰이와 결혼을 해! 하필이면 천한 사내와 그런 약속을 하다니, 안 된다." 직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너는 이 나라의 귀한 공주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끝내 내 말을 거역하려면 차라리 이 궁궐을 떠나거라. 꼴도 보기 싫다." 하고 임금님은 한바탕 호통을 쳤습니다.

 그 뒤, 임금님은 직녀를 불러 여러 번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직녀의 가슴에는 견우의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베 짜는 일도 그만두고  하루종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늘 나라 궁궐 안은 먹구름이 낀 듯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여봐라. 당장 견우를 잡아오너라.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으리라."

 얼마 뒤에 신하들은 견우를 임금님 앞에 꿇어 앉혔습니다. "너처럼 천한 몸이 어떻게 공주를 사랑하느냐? 마음을 바꾸도록 하여라!" 임금님은 매우 노한 목소리로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견우는 뜨거운 눈물만 흘릴 뿐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에잇! 고얀지고……." 화가 난 임금님은 대뜸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견우와 직녀를 멀리 귀양을 보내어라. 견우는 동쪽으로 9만리, 직녀는 서쪽으로 9만리 떨어진 곳으로 각각 떠나게 하라!" 임금님은 두 사람이 영원히 만날 수 없게 할 속셈이었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이별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견우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직녀의 손을 잡고 맹세를 했습니다. "직녀! 우리가 다시 못 만나게 되어도 직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오." "저도요." 직녀도 흐느껴 울며 대답했습니다.

 견우는 소를 몰고 서쪽을 향해 9만 리 길을 떠났습니다. 직녀도 정든 하늘 나라 궁궐을 떠나 외로운 발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가슴은 찢어질 둣이 아팠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은하수라는 깊고 깊은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견우는 강가에 나와 사랑하는 직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고 불렀습니다.

 "직녀……."  견우의 애타는 목소리는 강 건너 직녀의 귀에까지 가늘게 들려왔습니다.

 "아! 견우님이다." 직녀는 미친 듯이 강가로 달려갔습니다.

 너무 멀어서 견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견우가 직녀를 부르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견우님……." 직녀도 목이 터져라 견우를 부르다 그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날이 7월 7일, 그러니까 칠월 칠석날 밤이었습니다. 날이 새면 또 각기 동쪽과 서쪽으로 헤어져야 하는 슬픈 운명이었습니다.

 해마다, 이때 흘린 견우와 직녀의 눈물은 엄청나게 많아 땅 나라에서는 홍수가 났습니다.

 그러면 집과 곡식들이 떠내려가고 동물들도 먹이가 없어서 굶어 죽어 갔습니다.

 하루는 온 동물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해마다 홍수를 겪으니 괴로워서 못살겠소. 무슨 대책을 세웁시다." "견우님과 직녀님을 만나도록 해 줍시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오." 이 때, 까치가 날개를 퍼득거리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우리 까치와 까마귀가 날갯짓을 하며 줄지어 있는 동안, 견우님과 직녀님이 우리들 머리 위를 걸어가게 해서 만나게 합시다."

 "훌륭한 생각이오!" 모든 동물들은 대찬성을 하였습니다. 이윽고 칠석날이 다가왔습니다.

 땅 나라의 까치와 까마귀들이 은하수 강가로 날아들었습니다. 서로 날개를 맞대어 길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일 년 동안 애타게 그리워하던 견우와 직녀는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 놓은 다리를 건너 얼싸안았습니다.  "직녀!" "견우님!" 두 사람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맺혀 반짝였습니다.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먼동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곧 헤어져야 했습니다.  "직녀. 일 년이 지나야 또 만나겠구려. 이대로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견우님, 까치와 까마귀들의 도움으로 해마다 한 번씩 만나는 것도 다행한 일이어요." "그렇소." 견우와 직녀는 까치와 까마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였습니다.  "자, 부디 몸조심하시오." "그럼, 안녕히 가셔요." 견우와 직녀는 아쉬운 듯 이별을 하였습니다. 서로 등을 돌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두 사람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칠석날에는 홍수가 나지 않고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칠석날이 지나면 까치와 까마귀들의 머리털이 빠지곤 합니다.  이것은 견우와 직녀가 머리를 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답니다.[출처 : 재미있는 고전여행 中(견우와 직녀 - 기획출판 남광 - 송명호 - 1994)]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견우성과 직녀성

거문고자리의 직녀성과 독수리 자리의 견우성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 하늘의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다. 직녀는 옷감 짜는 여신으로 온종일 베틀에 앉아 옷감에다 별자리, 태양, 빛, 그림자 등을 짜 넣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하늘을 도는 별들도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 위해 멈추어 서곤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직녀는 자주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때때로 그녀는 베틀의 북을 내려놓고 창가에 서서 성벽 아래로 넘실거리는 하늘의 강을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 그녀는 강둑을 따라 궁중의 양과 소떼를 몰고 가는 한 목동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아주 잘생긴 젊은이였는데 그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직녀는 그가 자신의 남편감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직녀는 자신의 마음을 아버지인 옥황상제에게 이야기하고 그 목동과 결혼시켜 줄 것을 부탁하였다. 옥황 상제는 견우란 이름의 이 젊은 목동이 영리하고 친절하며 하늘의 소를 잘 돌본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딸의 선택에 반대하지 않고 이들을 혼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혼인한 이들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자신들의 일을 잊고 게을러지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이들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지만 둘만의 행복에 심취된 이들은 곧 다시 게을러지곤하였다. 마침내 옥황상제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들을 영원히 떼어 놓을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견우는 은하수 건너편으로 쫓겨났고, 직녀는 그의 성에 쓸쓸히 남아서 베틀을 돌려야 했다. 옥황 상제는 일 년에 단 한 번, 즉 일곱 번째 달 일곱 번 째 날 밤에만 이들을 강을 건너 만날 수 있게 허락하였다. 이들은 음력으로 7월 7일이 되면 '칠월'이라는 배를 타고 하늘의 강을 건너 만나게 되는데, 비가 내리면 강물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강 언덕에서 직녀가 울고 있으면 많은 까치가 날아와 그들의 날개로 하늘의 다리(오작교)를 만들어 이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혼인한 - 게을러지고 말았다 : 보통의 설화는 혼인하기까지의 갈등과 위기가 있는데, 이 설화는 특이하게도 결혼하고 나서의 위기와 갈등을 설정하고 있다.

이들은 음력으로 - 배가 뜨지 못하게 된다 : 7월 7일이라는 날짜와 연관된 칠석의 유래가 담긴 내용이다.

직녀가 울고 있으면 - 만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 설화에 있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화소에 해당된다. 견우는 까마귀라는 어떤 조력자에 의하여 반대편 언덕에 닿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견우와 직녀

 하늘 나라 임금에게 딸 하나가 있었다 마음씨 곱고 얼굴도 훤하게 생긴 그의 이름은 직녀였다. 직녀는 베를 튼튼하게 잘 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임금님은 자기 딸의 사윗감을 골라주려고 자기네 별뿐 아니라 다른 별나라에도 배필을 구한다고 널리 알렸다. 그런 끝에 임금님의 마음에도 들고 직녀의 마음에도 드는 신랑감이 나타났다. 소 치는 사람인 견우였다. 결혼한 견우와 직녀는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임금님은 처음엔 이 둘을 무척 사랑했으나 점점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직녀는 베짜기도 잊은 채 견우를 따라다니며 놀기에 바빴고 견우도 빈둥빈둥 놀며 소를 몰고 대궐 꽃밭을 돌아다녔다. 혼인한 이들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잊고 게을러지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으나 둘은 행복에 취한 나머지 다시 게을러지곤 하였다. 마침내 옥황상제는 분노하여 이들을 영원히 떼어놓을 결심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임금님의 화가 폭발했다.

 "너희들 꼴도 보기 싫다. 이 대궐에서 썩 나가라. 견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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