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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의 꿈 -조신설화
15-09-15 19:08

調信說話
 조신설화;조신의 꿈
 [주]조신설화를 확대재생산한 것이 춘원 이광수의 <꿈>이다.
 
昔, 新羅爲京師時,
 옛날 신라(서라벌)가 서울이었을 때
 
有世逵寺(今興敎寺也)之莊舍, 在溟州㮈李郡
 세규사(寺)의 농장 집이 명주 날리군에 있었는데
 
(按『地理志』, 溟州無㮈李郡, 唯有㮈城郡, 本㮈生郡, 今寧越. 又牛首州領縣有㮈靈郡, 本㮈已郡, 今剛州. 牛首州今春州, 今言㮈李郡, 未知孰是),
 
本寺遺僧調信爲知莊.
 본사에서 중 조신을 보내어 장원을 맡아 관리하도록 했다.
 
信到莊, 上悅□守金昕公之女, 惑之深,
 조신이 장원에 와서 김혼공의 딸을 좋아하여 그녀에게 아주 반했다.
 
屢就洛山大悲前, 潛祈得幸,
 그는 여러 번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그녀와 살게 해달라고 남몰래 기도했다.
 
方數年間, 其女已有配矣.
 바야흐로 수년 사이에 그녀에게 이미 배필이 생겼다.
 
又往堂前怨大悲之不遂己,
 이에 그는 또 불당에 나가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哀泣至日暮, 情思倦憊, 俄成假寢,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지쳐서 잠깐 새에 잠이 들었다.
 
忽夢金氏娘, 容豫入門, 粲然啓齒而謂曰:
 꿈 속에서 문득 김씨 낭자가 기쁜 얼굴로 문에 들어와 입을 활짝 벌리고 웃음 지으며 말했다.
 
「兒早識上人於半面,
 "저도 일찍이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되어
 
心乎愛矣, 未嘗暫忘,
 마음 속으로 사랑하며 잠시도 잊지 못했습니다.
 
迫於父母之命, 强從人矣.
 그러나 부모님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 갔었습니다.
 
今願爲同穴之友, 故來爾.」
 이제 동혈지우(同穴之友-부부)가 되고자 하여 왔사옵니다."
 
信乃顚喜, 同歸鄕里,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하며 그녀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計活四十餘霜, 有兒息五,
 그녀와 40여년간 같이 살며 자녀 다섯을 두었다.
 
家徒四壁, 藜藿不給,
 집은 단지 네 벽뿐인데 거친 음식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遂乃落魄扶攜, 糊其口於四方.
 마침내 영락하여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如是十年, 周流草野,
 이렇게 10년 동안 초야를 두루 헤매이니
 
懸鶉百結, 亦不掩體.
 갈갈이 찢어진 옷은 몸뚱이도 가리지 못했다.
 
適過溟州蟹縣嶺,
 때마침 명주 해현령을 지날 때
 
大兒十五歲者忽餧死, 痛哭收瘞於道,
 15세 되는 큰 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으매 통곡하며 길가에 묻었다.
 
從率餘四口, 到羽曲縣(今羽縣也), 結茅於路傍而舍.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에 이르러 길 가에 모옥을 짓고 살았다.
 
夫婦老且病, 飢不能興,
 그들 부부는 늙고 병들었으며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十歲女兒巡乞,
 10세된 계집아이가 이릉 보다 못해 밥을 얻으러 다니다가
 
乃爲里獒所噬, 號痛臥於前.
 마을 개에게 물려 아픔을 부르짖으며 앞에 와서 눕자
 
父母爲之歔欷, 泣下數行,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婦乃□澁拭涕, 倉卒而語曰:
 부인은 눈물을 씻으며 창졸히 말했다.
 
「予之始遇君也,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色美年芳, 衣袴稠鮮,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습니다.
 
一味之甘, 得與子分之,
 한가지 음식이라도 당신과 나누어 먹었으며,
 
數尺之煖, 得與子共之, 出處五十年,
 작은 의복이나마 당신과 나누어 입으면서 함께 살아온 것이 어언 50년입니다.
 
情鍾莫逆, 恩愛綢繆, 可謂厚緣.
 그동안 정은 깊어졌고, 사랑도 굳게 얽혔으니 참으로 두터운 인연이라 하겟습니다.
 
自比年來, 衰病日益深, 飢寒日益迫,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쇠약하여 생기는 병이 날로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가 날로 더욱 심해지니
 
傍舍壺漿, 人不容乞,
 남의 집 곁방살이나 보잘것 없는 음식조차도 빌어 얻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千門之恥, 重似丘山.
 천문 만호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은 무겁기가 산더미 같습니다.
 
兒寒兒飢, 未遑計補,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이것도 미처 돌보지 못하였는데,
 
何暇有愛悅夫婦之心哉,
 어느 겨를에 부부의 정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紅顔巧笑, 草上之露,
 꽃다운 얼굴과 어여쁜 웃음도 풀잎에 이슬이요,
 
約束芝蘭, 柳絮飄風.
 지란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이제 당신은 내가 있어 누가 되고 내게는 그대를 위하여 더욱 근심합니다.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조용히 옛날의 기쁨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君乎予乎, 奚至此極,
 당신과 내가 어찌하여 이런 지경에까지 왔을까요?
 
與其衆鳥之同餧, 焉知隻鸞之有鏡,
 뭇 새가 다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이 낫습니다.
 
寒棄炎附, 情所不堪,
 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친하는 것은 인정에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然而行止非人,
 행하고 그침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離合有數, 請從此辭.」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가 있습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헤어지기로 합시다."
 
 
 
 
信聞之大喜, 各分二兒將行,
 조신이 이말을 듣자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 나누어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니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부인이 말했다."저는 고향으로 가겠으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方分手進途而形開,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여 길을 떠나려 하는데 꿈에서 깨었다.
 
殘燈翳吐, 夜色將闌.
 타다 남은 등잔불은 하늘거리고 어느덧 희뿌옇게 날이 밝기 시작했다.
 
及旦鬚髮盡白,
 아침이 되어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하얗게 세고
 
惘惘然殊無人世意,
 망연히 세상일에 뜻이 없어졌다.
 
已厭勞生, 如飫百年苦,
 이미 괴롭게 살아감도 싫어지고,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고 난 듯하여
 
貪染之心, 洒然氷釋.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 깨끗이 사라졌다.
 
於是, 慚對聖容, 懺滌無已.
 이에 관음보살의 상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도 누를 길이 없었다.
 
歸撥蟹峴所埋兒, 乃石彌勒也.
 그는 돌아와 해현에 묻는 아이를 파보았더니 그것은 바로 석미륵이었다.
 
灌洗奉安于隣寺, 還京師, 免莊任,
 물로 씻어서 근처의 절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서 장원을 맡은 소임을 내놓고
 
傾私財, 創淨土寺, 懃修白業,
 사재를 기울여 정토사를 세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後莫知所終.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는 알 수 없다.
 
議曰:
 사론(史論)해 보건대,
 
讀此『傳』, 掩卷而追繹之,
 '이 전기를 읽고서 책을 덮고 지나간 일을 생각하니
 
何必信師之夢爲然!
 어찌 조신사의 꿈만 그렇겠느냐?
 
今皆知其人世之爲樂, 欣欣然役役然,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속세의 즐거움만을 알고서 기뻐하며 애쓰고 있으나
 
特未覺爾.
 이것은 단지 깨닫지 못한 까닭이다.'
 
乃作詞誡之曰:
 이에 시를 지어 경계한다.
   
 快滴須臾意已閑, 잠시 즐거운 일 마음에 맞아 한가롭더니
 暗從愁裏老蒼顔. 근심 속에 어느덧 남 모르게 늙어졌네
 不須更待黃粱熟, 모름지기 황량이 다 익길 기다릴 새도 없이
 方悟勞生一夢間. 인생이 한바탕 꿈임을 깨달을 것을
 治身臧否先誠意, 修身의 잘잘못은 먼저 성의에 달린 것
 鰥夢蛾眉賊夢藏. 홀아비는 미인을, 도둑은 창고를 꿈꾸네
 何以秋來淸夜夢, 어찌하여 가을날 밤 맑은 꿈으로
 時時合眼到淸凉. 때때로 눈감아 청량경(이상향)에 이를거나?
 
 調信說話.
 
(최남선본 삼국유사,p.159)
조신 설화(調信說話), 조신지몽(調信之夢) -
(우리말 해설)
  
옛날 서라벌이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世逵寺)의 장원(莊園)이 명주(溟洲) 날리군(捺李郡)에 있었는데, 본사(本寺)에서 중 조신(調信)을 보내서 장원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김흔공의 딸을 좋아해서 아주 반하게 되었다. 여러 번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가서 남몰래 그 여인과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는 또 불당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다.
 
꿈 속에 김씨 낭자가 기쁜 낯빛을 하고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되어 마음 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으나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 시집갔다가 이제 부부가 되기를 원해서 왔습니다."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하여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와 40여 년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좋지 못한 음식마저도 계속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10년 동안 초야로 두루 다니니 옷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져 몸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침 명주 해현령(蟹縣嶺)을 지나는데 15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굶어죽자 통고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羽曲縣)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다. 이제 내외는 늙고 병들었다.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10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픈 것을 부르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을 흘렸다.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한다.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습니다. 한 가지 맛있는 음식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옷 한 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 지 50년 동안에 정이 맺어져 친밀해졌고 사랑도 굳어졌으니 가위 두터운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쇠약한 병이 날로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해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에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어, 수많은 문전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이 산과도 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 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초(芝草)와 난초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서 더 누(累)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기쁘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뭇 새가 다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잃은 난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친하는 것은 인정에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나아가고 그치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이 말을 따라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 씩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는데 여인이 말한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려 하다가 꿈에서 깨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한다. 아침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졌고 망연히 세상 일에 뜻이 없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싫어졌고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에 관음보살의 상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다.
 
그는 돌아와서 꿈에 해현에 묻은 아이를 파 보니 그것은 바로 석미륵(石彌勒)이다. 물로 씻어서 근처에 있는 절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 장원을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私財)를 털어서 정토사(淨土寺)를 세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다.
 
논평해 말한다. "이 전기(傳記)를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보니, 어찌 조신 스님의 꿈만이 그렇겠느냐. 지금 모두가 속세의 즐거운 것만 알아 기뻐하기도 하고 서두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다만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이에 사(詞)를 지어 경계한다.
잠시 쾌활한 일 마음에 맞아 한가롭더니, 근심 속에 남모르게 젊은 얼굴 늙어졌네.
모름지기 황량(黃粱)이 다 익기를 기다리지 말고, 인생이 한 꿈과 같음을 깨달을 것을.
몸 닦는 것 잘못됨은 먼저 성의에 달린 것, 홀아비는 미인 꿈꾸고 도둑은 재물 꿈꾸네.
어찌 가을날 하룻밤 꿈만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淸凉)의 세상에 이르리.
 
<삼국유사 권3 탑상 제4 조신>
출처 : 새로쓰는사랑이야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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