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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양반가의 기품이 넘치는 신경섭 가옥
15-09-12 16:26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688에 소재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1신경섭 가옥(申慶燮 家屋)’ 조선 후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이 집은 사랑채 중간에 마루를 두어서 대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무의 결과 단청의 색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집이다. 대문채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며, 신석붕의 효자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경섭 가옥을 들려온 것은 꽤 나 시간이 지났다. 은행의 열매가 떨어져 냄새가 코를 진동할 때였으니. 문화재 답사를 마치면 바로 글을 써야 감을 잊지 않지만, 한꺼번에 많은 문화재를 답사하고 나면, 그렇게 바로 글을 적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면 가끔 이렇게 철지난 글을 적어야할 때가 있다.
 
 
자 형의 사랑채가 돋보이는 집
 
신경섭 가옥을 찾았을 때 후원 담장 한편이 트여있다. 앞으로 돌아가니 대문인 듯 효자정려가 걸려있는 문은 잠겨 있다. 담 밖을 돌면서 집을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저 편으로 돌면 문이 열려 있으니, 그쪽으로 돌아가 보라고 하신다. 그럴 때면 정말 안내를 해 준 분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신경섭 가옥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집으로 자 형의 사랑채와 안채가 -자 형으로 자리를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자 형으로 구성이 된 충청도의 양반가옥이다. 이 가옥은 안채에 안방, 건넌방, 대청, 고방, 부엌을 들였고, 사랑채의 상량문에는 승정기원후사계묘라고 적고 있어, 1842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의 한편 끝에는 높임 누마루 방을 두어 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 곁으로 돌아가니 후원 앞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 누마루 정자 방에서 바라보는 후원을 바라보는 정취가 일품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랑채와 안채 중간에는 돌우물이 자리하고 있어, 자칫 무료한 안마당의 멋을 더해주고 있다.
 
양반가옥의 기품을 지키는 집
 
효자정려가 걸려있는 대문은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동선을 마련한 듯하다. 열려있는 또 한편의 문은 들어가면서 좌측에 4칸의 광채를 달아냈고, 우측으로는 5칸의 안채가 있다. 안채는 부엌과 안방, 대청, 건넌방의 순으로 조성을 했는데, 건넌방의 앞에는 높임마루를 두었다.
 
 
안채 부엌의 앞에로는 돌우물을 마련해, 부엌을 사용하는 주부들의 이용에 편리할 수 있도록 동선에 신경을 쓴 듯하다. 안채 뒤편에는 장독대를 두었으며, 마당 가운데에는 작은 화원을 마련하였다. 집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양반가옥의 기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집이다. 신경섭 가옥을 찾았던 날이 106일 보령시 답사 때였으니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 쪽문으로 출입을 했을까?
 
집안을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와 굴뚝을 찍고 있는데, 곁에 작은 쪽문 하나가 보인다. 마침 문이 열려있기에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또 하나의 쪽문이 있다. 문에는 모정문(母情門)’이라고 쓴 작은 나무패가 걸려있다. 어머니의 정을 그리는 문일까? 그 문으로 들어가면 사랑채가 되는데, 왜 이렇게 문의 명칭을 정한 것일까?
 
 
이렇게 작은 문 하나에는 많은 사연이 있을 듯도 한데, 물을 사람이 없으니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그 모정문 밖에 효자정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문으로 사랑채로 드나들면서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택을 찾아다니면서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기만 하다. 그래서 더 많은 곳을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출처 : http://rja4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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