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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12호 '김좌근 고택'
15-09-12 15:23
99칸의 대갓집. 그러나 후손들이 관리를 하기가 어렵다고 신흥재벌에게 사랑채와 행랑채를 팔았다고 한다. 원래는 99칸의 커다란 대갓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남은 집으로만 보아도 그 규모를 어림잡아 짐작할 수가 있다. 도대체 이 집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222-14에 소재한 경기도 기념물 제12호 '김좌근 고택'을 찾아갔다.

이 김좌근 고택은 벌써 올들어 두번이나 찾아가보았다. 갈 때마다 복원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7월 23일 그 무더운 더위를 피해 찾아간 백사면 내촌리. 아직 주변은 정리가 끝나지 않았지만, 반듯하게 복원이 끝나가는 집은 그 규모가 엄청났음을 알 수가 있다.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위해 지은집

김좌근 고택은 이천 백사면 내촌리 소일마을 상단인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뒤로는 얕은 산자락을 배산으로 남향으로 지어진 이 집은, 전통 한옥으로 지은 99칸의 집이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있는 집의 치목이나 석재를 사용한 것을 보아도, 이 집의 과거 위세를 알 수가 있을 정도이다. 지금은 담장과 행랑채는 사라지고 안채와 별채인 사랑채만 남아있다.

이 집은 영의정 김좌근의 아들이며 고종 때 어영대장과 이조판서를 지낸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위한 별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솟을대문과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남아있었다는 김좌근 고택은 사랑채와 행랑채가 두 겹으로 안채를 싸안고 있는 규모있는 대갓집의 모습을 지켜왔다고 한다. 그런 집이 지금은 사랑채와 안채만이 남아있다.
 





관리가 힘들어 팔아버린 집

집이 워낙  크고 관리가 힘들어지자, 후손들이 신흥재벌하게 이 집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랑채 등을 옮겨가는 도중에 그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나마 이건을 중단하는 바람에 지금의 모습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의 많은 고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원래 김좌근 고택은 대문과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조가 되었다. 안채는 ㄷ자 형으로 중문과 연결된 사랑채가 있었으며, 바깥문은 대문과 연결된 행랑채가 ㄱ 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안채와 별채인 사랑채가 안채로 통하는 중문과 안채의 담으로 가로막혀 두 동의 건물이 서로 독립된 형태로 서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두 개의 건물 사이에도 가로막힌 건물이 있었으며, 뒤편으로는 널마루로 짠 회랑을 달아내어 서로 왕래를 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회라잉 없어졌으나, 과거에는 이 회랑을 이용해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도 이동을 할 수 있는 동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닥터 진'의 김병기가 지은 집, 옛 풍취는 그대로 남아

복원 공사를 마친 집을 돌아본다. 사랑채의 한편을 잘 다듬은 장초석으로 주초를 삼고, 그 위에 누마루를 올려 누정을 삼았다. 집은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으로 마련하고, 치목과 치석이 모두 제대로 된 장인의 솜씨를 마련한 듯하다.
 




꽃담을 아름답게 조성한 안채는 지금 난 중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가 있다. 아직은 주변 정리가 끝나지 않아 잡초가 수북히 쌓여있기는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문에 붙여 방을 드렸다. T 자 형으로 조성한 안채는 툇마루를 길게 놓았다. 이 안채가 특이한 것은 중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곳이 앞쪽이지만, 그 뒤편의 형태도 똑 같이 조성을 했다는 것이다.

안채는 서쪽으로 부터 다락과 3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이다. 부엌은 세칸 규모로 문을 들어서면 토를 달아 내었다. 그 오른쪽에도 다락을 드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만 보아도 당시 이 집의 위세를 알만하다. 일부가 사라져버려 제대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제대로 모습을 갖추었다면 그 어느 집보다 뒤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좌근 고택을 돌아보면서 새삼스럽게 세상을 배운다. 요즈음 드라마 '닥터 진'에서 보이는 김씨들의 세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졌음을. 하기에 영원한 세도는 없는 것인가 보다. 하긴 닥터진에서 대원군과 권력다툼을 하는 좌의정 김병기의 구성은 역사와는 많이 다르게 표현이 되었지만 말이다. 
출처 : http://rja4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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